바다에서의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

2021년 8월 9일

초밥, 회, 통조림, 국물……우리 밥상에서 해산물을 찾는 것은 더이상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선은 주로 마트에 가면 손쉽게 사올 수 있는 것이지만 사실 물고기는 저 먼 바다에서 헤엄치던 중 긴 낚싯줄 혹은 커다란 그물을 내린 어선에 잡혀 식탁까지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선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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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없는 책임감 있는 조업? /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

태평양과 같은 세계 바다의 주요 어장에는 지역수산기구(Regional Fisheries Management Organization, RFMO)가 있어 관할수역 내의 어류 자원 관리를 합니다. 그 중 하나인 태평양의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estern and Central Pacific Fisheries Commission, WCPFC)는 특히 남획과 혼획으로부터 참치종을 보호하기 위한 기국(flag state)과 인근 항만국(port state) 등의 협의체입니다. WCPFC는 매년 회의에서 태평양 ‘참치 자원의 장기간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국가별 조업권을 분배하고 보존관리조치 논의 및 준수 상황 점검을 합니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 회의에서는 참치뿐만 아니라 참치를 잡는 사람들, 선원들이 화두에 올랐습니다.

2020년 4월 한국 시민단체들의 옹호활동으로 중국 어선 롱싱 629호에서 발생한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및 불법어업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어선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이 거세짐에 따라 작년 WCPFC 정례 회의에서 관할 수역 내 선원들의 노동 기준을 수립하자는 보호관리조치를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WCPFC는 참치를 관리하기 위한 수산기구이니 노동기준은 그 관할권 밖에 있다는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어선에서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인권 문제와 WCPFC의 규제 대상인 불법 어업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 앓다가 결국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바다에 수장된 롱싱 629호 사건에서도 그러한 점이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상어를 잡아 산 채로 지느러미만 자르고 나머지 몸통은 다시 바다에 버리는 불법적인 지느러미 채취(shark finning)를 한 롱싱 629호는 관리 감독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항구에 돌아가지 않았고, 그 결과 20여 명의 선원들은 도움을 청할 길 없이 13개월 동안 선상에서 착취당하였습니다. 샥스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입항을 꺼리지만 않았다면 선원들은 제 때 치료받고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해상체류시간이 길어지면 선원들은 착취에 더욱 취약해지며, 과도한 장시간의 노동과 저임금은 어류의 남획을 용이하게 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과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은 2020년 12월 정례회의에서 작년 발생한 중국어선에서의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및 불법어업 문제를 문제제기하고 인도네시아가 제안한 보호관리조치를 회기간 작업반에서 계속 논의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참치 조업을 규제하려면 참치와 어선, 어구뿐만 아니라 그 배를 타서 어구를 사용해 참치를 잡는 사람들의 노동조건 또한 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난 7월 열린 작업반 회의에서도 발언하여 WCPFC는 책임감있는 조업을 위한 국제적 기준을 수립할 의무가 있으며, 책임감 있는 조업을 위하는 일에 노동기준 수립이 빠질 수는 없다는 점과 보호관리조치가 실질적이고 구속력 있게 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올해 WCPFC 정례회의는 11월 29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에 앞서 기술이행위원회(Technical and Compliance Committee, TCC)가 9월에 열려 회기간 작업반에서 협의한 보호관리조치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두 회의에서 보호관리조치가 무사히 통과된다면 지역수산기구가 노동문제를 그의 관할 책임으로 인정한 첫 사례가 될 것입니다. WCPFC에서 이러한 선례가 만들어진다면 다른 지역수산기구에서도 선원 노동조건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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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보조하는 바다에서의 강제노동 / 세계무역기구

201.07.01 “우리의 세금으로 바다를 파괴하지 마라” 유해수산보조금 금지 협상 타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

바다에서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지역수산기구뿐만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에서는 남획으로 바다의 생태계를 망가뜨리는데 일조하는 수산보조금을 폐지하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약 20년간 협상을 해오고 있습니다. 유류비 지원 등 정부가 제공하는 수산보조금이 남획을 보조하는 꼴이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수산자원 고갈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획과 혼획 등 불법어업에 흘러들어가는 ‘나쁜’ 수산보조금을 폐지하기 위한 이 협상의 최종결정이 올해 2021년 예정되어 있어 더욱 박차를 가하는 중 지난 7월 미국이 강제노동 관련 내용을 추가하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미국은 바다에서의 강제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1) 투명성 정보 공개 의무 조항에 강제노동 관련 내용을 추가하고, 2) 수산보조금 금지 범위에 불법어업을 지원하는 “어업 관련 활동”을 추가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미국의 제안은 내용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일지라도 수산업 관련 분야에서 인권과 노동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기대됩니다. 특히 불법어업과 강제노동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정부가 제공하는 수산보조금으로 지탱되는 바다에서의 강제노동을 없애기 위한 기반을 다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렇듯 수산업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강제노동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수산물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생산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WCPFC에서도 한국은 관할 수역 내에서 가장 조업을 많이 하는 아시아 주요 기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큰 무게가 실립니다. 환경 문제와 인권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전환점과도 같은 이 시기에 한국 정부가 바다에서의 인권도 육지에서의 인권만큼이나 존엄하다는 것을 확고히 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책임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이주어선원 캠페이너 조진서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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