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GP의 국내 이행을 위한 아시아 태평양 회의 참가기

2014년 4월 12일

UNGP의 국내 이행을 위한 아시아 태평양 회의 참가기

스릴 돋는 참가 과정

기업과 인권에 관해 여러 가지 국제적인 규범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2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다국적 기업에 관한 OECD 가이드라인’과 ‘유엔 기업과 인권 지도 원칙’(그 동안 Guiding Principle을 ‘이행 지침’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이행지침 이행이라고 하면 rhyme이 맞지 않아 여기서는 ‘지도 원칙’으로 번역하고, 이하에서는 UNGP로 줄여서 표시합니다)을 들 수 있습니다.

 

UNGP은 2011년 유엔 인권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이를 이행하기 위한 유엔에 ‘워킹그룹’까지 만들어졌지만, 어떻게 각 국가가 그 지도 원칙을 이행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영국이 UNGP를 이행하기 위한 National Action Plan(국가행동계획, 이하에서는 NAP라고 줄여서 부르겠습니다)을 처음 만들었죠.

한국도 NAP가 있습니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라고 부르는데, 2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국가인권정책실무협의회에 의해 2012년에 세워져 2016년까지 시행될 예정입니다. 2013년 말에 2012 NAP이행 평가를 했고, 2014년 초에는 2 NAP가 수정이 된바 있습니다. 그런데 제2차 NAP에 기업과 인권에 관한 규정을 찾아보니 3줄 정도 밖에 안 나옵니다. 한국기업이 해외 진출 시 아동인권 존중하도록 하는 교육하고, OECD 다국적기업에 관한 가이드라인 홍보, 교육, 이행 기관인 국가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 NCP) 관련 규정개정하고 이해관계자와 협력 강화하며, 한국표준협회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 가이드라인 제정 및 보급하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UNGP이라는 말은 아예 있지도 않네요. 2011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만장 일치로 UNGP을 승인할 때 분명히 한국도 유엔인권이사국으로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요.

저도 2013년 하반기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으로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실태조사 및 제도 개선 방안 연구’를 하면서, 영국 NAP에 주목을 하게 되었고, 위 연구 보고서 결론 부분에도 영국 NAP와 같은 UNGP을 이행하기 위한 NAP를 우리도 만들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NAP를 만든 이후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적으로 UNGP 국내 이행 방법의 일환으로 NAP 만들자는 논의가 많이 진행이 되었더라 구요. 그 가운에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National Action Plan Project인데, 그 프로젝트는 덴마크 국가인권기구와 미국 워싱턴에 근거를 둔 International Corporate Accountability Roundtable(ICAR)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오기 거의 1주일 전에 아시아 태평양 국가인권기구들의 연합인 APF(Asia pacific Forum) 뉴스레터를 보고 알게 되어 ICAR에 참가하겠다고 연락을 하고 4일 전에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 비자와 항공료였습니다. 숙식은 주최측에서 해결해준다고 했지만 항공료는 스스로 부담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자가 없으면 인도를 방문 할 수 없는데, 하필이면 가기로 한 3일 전에 인도 대사관이 휴무였던 것입니다. 가기 하루 전에 비자를 신청하고, ‘법조공익법조모임 나우’가 역량강화지원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박연정 변호사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많은 기대를 하지 않은 채 항공료를 지원해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법조공익모임 나우’ 이사회에서 항공료를 지원하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첫번째 수혜자로 선정해주신 ‘나우’와 박연정 변호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떠나는 날 오후 비자를 받고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인도 델리 공항에 새벽 1시에 도착했습니다. 한 마디로 스릴 돋는 참가 과정이었습니다.

 

탐색 하는 첫째 날

고갱의 그림에서나 나올 법한 새 소리에 잠을 깬 후 회의 장소인 진달국제대학교(Gindal Global University) 캠퍼스로 갔습니다. 캠퍼스가 참 아름답습니다. 모던 하면서도 ‘인도’스럽네요. 오늘은 기업과 인권의 지형, 특히 관련된 제도와 이행이 어느 정도 발전되었는지 하는 것을 국제적, 지역적(여기서 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말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각 살펴보았습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각 나라의 국가인권기구에서 왔고(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한 분이 오셨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지역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또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과 유엔 기업과 인권 워킹 그룹 스탭들도 왔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기업 측에서는 4명만이 참석했고 각 국 정부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최측(덴마크 인권위원회와 ICAR)은 이미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이와 비슷한 회의를 했고 이번 회의를 마지막으로 그 동안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2014년 6월경 UNGP국내 이행을 위한 NAP 개발을 위한 도구(toolkit)를 만들려고 하는 거 같은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NAP를 만들고 시행해야 할 정부측 사람들이 하나도 오지 않았네요ㅜㅜ

 

이 회의는 덴마크 국가인권위원회와 ICAR가 시작한 NAP Project의 일환이고, NAP Project는 UNGP의 국내 이행을 위해서는 NAP를 만들자는 것으로 각국에서 NAP를 잘 만들기 위한 도구(toolkit)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ICAR는 위 도구를 3가지로 구성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하나는 NAP를 만들기 위한 기초 평가를 하는 도구이고, 둘은 모델 NAP를 제시하는 등 NAP 자체를 만들기 위한 도구이고, 셋은 NAP가 얼마나 UNGP 이행을 잘하고 있는지 평가를 하는 도구입니다.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 심각해 지자 UN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규범들을 만들려고 시도를 했습니다. 기업에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규범을 만들려는 기획도 있었지만, 역시 기업들과 정부의 로비 때문에 좌초되고, 결국 자발주의에 기초한 규범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UNGP입니다. 2005년 존 러기(John Ruggie)라는 사람이 UN 사무총장에 의해 특별 대표로 임명이 되어 3년간의 연구 끝에 기업과 인권에 관한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국가의 인권보호의무, 기업의 인권존중책임, 구제에의 접근이라는 3가지 기둥입니다. 그 후 다시 3년간 임기가 연장되어 이번에는 위 프레임워크를 기초로 지도원칙을 만드는데 그것이 UNGP입니다.

UNGP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1년 UN인권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승인을 했는데, UNGP이 이렇게 나올 때만 해도 많은 국가에서 환영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에 대해서, 특히 상당주의의무라고 번역하는 Due Diligence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자료가 나왔는데, 국가의 인권존중의무에 대해서는 거의 잠잠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3년 9월 영국에서 기업과 인권에 관한 NAP가 나온 것입니다

 

영국 NAP는 크게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명시적으로 UNGP 이행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 점입니다. 둘은 적용이 포괄적이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모두 정부 기관에 적용되고, 영국에 사무소가 있는 기업이라면 국내에 있는 기업이든 외국에 있는 기업이든 모두 NAP가 적용됩니다. 셋은 영국 상황에 맞춤형 NAP라는 점입니다. 미안마 투자에 관한 내용이라든지 사설경비업에 관한 내용도 영국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영국 NAP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촉매가 된 것이 2011년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서 2011년 발간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백서였습니다. 이 백서에서 유럽 위원회는 모든 EU회원국이 UNGP이행을 위한 NAP를 2012년 말까지 개발하라고 초대하였고, 어떤 CSR 활동을 할 것인지 리스트를 개발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요청에 부응하여 2012년에는 사이프러스가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덴마크가 CSR에 대한(UNGP에 대한 내용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NAP만들었습니다.

덴마크는 2012년 CSR에 대한 NAP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UNGP에 대한 NAP로 인정 받지 못하고 첫번째 UNGP 이행을 위한 NAP 발간의 영광을 영국에 넘겨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UNGP에서 말하는 기업의 인권존중 의무는 다릅니다. CSR은 그 개념이 정확하지 않은 반면에 UNGP 제13조는 기업의 인권존중책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활동을 통해서 부정적인 인권 영향을 야기하거나 기여하는 것을 ‘회피’하고 그러한 영향이 발생한 경우 그에 대해 ‘대응’할 책임.*

바로 앞에서 유럽 위원회가 2011년 UNGP 이행을 위한 NAP를 만들라고 회원국에 ‘초대’하였다고 했는데, 2012년에는 유럽 이사회(European Council)가 모든 EU 회원국이 2013년 말까지 UNGP이행을 위한 NAP개발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European Commission이 다시 EU차원의 UNGP이행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을 시민사회와 협의를 통해 만들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러한 ‘초대’와 ‘요구’에 가장 먼저 응답한 것이 영국(2013년 9월 4일이 UNGP을 위한 NAP)이었고, 그 뒤에 네델란드(네델란드의 경우 의회가 UNGP 이행을 위한 국가전략을 개발할 것을 정부에 요청한 뒤 바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와 이탈리아 그리고 덴마크(덴마크의 경우 NAP를 만들기 위해 워킹그룹을 가동시켰습니다)가 NAP를 만들었습니다. ICAR의 말에 따르면 현재까지 30여개국에서 NAP를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는데, 스위스 의회도 네델란드와 마찬가지로 UNGP 이행을 위한 NAP를 개발할 것을 요청하였고, 프랑스 국가인권위원회는 UNGP이행 NAP개발을 권고하였으며, 노르웨이와 이탈리아도 NAP개발을 위한 기초작업을 하고 있으며, 스페인은 2013년 이미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를 끝냈고 조만간 NAP를 발간한다고 합니다.

유럽의 UNGP이행을 위한 NAP에서 독특한 것이 모두 외교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경우 인권 일반에 관한 NAP는 법무부(인권국)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유럽 국가들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주된 사무실만 유럽에 등록해 두고 활동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 하므로, UNGP은 주로 외국에 있는 자국 기업들에 더 많이 적용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 일은 외교부에서 맡는 것이 적절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독일은 아직까지 NAP를 담당할 부서를 마련하지 못한 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에도 UNGP 이행을 위한 NAP를 만들려고 할 때 어떤 정부부처를 소관 부서로 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유럽 이외도 UNGP 이행을 위한 NAP를 만들려고 하는 나라들이 있는데, 칠레, 나이지리아, 모잠비크, 콜롬비아 등입니다. 미국의 경우 NAP까지는 아니지만, 미국무부에서 UG government approach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2013년 4월 19일 발행한바 있습니다.

UNGP 자체에서는 사실 NAP에 대해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마는 않습니다. 그런데 UNGP 이행을 위해 NAP가 필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UNGP 이행을 그야 말로 ‘국가’차원의 행동계획으로 가지고 가야 정책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고, NAP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행관계자와 협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할 때 기업들이 어떤 방향으로 UNGP이 이행될 것인지 예측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UN 기업과 인권 워킹 그룹에서도 NAP를 UNGP이행을 하기 위한 전략적인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오늘 다양한 사람들이 발제를 했습니다. ICAR의 Amol Mehra 이라는 양반은 NAP Project에 대해 소개했고, UN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의 John Grova라는 사람은 워킹 그룹에서 NAP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야기 했습니다. 홍콩시 대학의 Surya Deva교수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규범들을 일괄 하였습니다. OHCHR에서는 Ragnhild Handgard가 그 동안 UNGP이 어떤 식으로 다양한 섹터에서 이행이 되었는지 이야기 하면서 에딘버러 ICC회의에서의 국가인권기구의 역할, World Bank의 UNGP를 자신의 투자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킨 것, UNDP에서 UNGP의 상당주의의무 개념을 도입한 것을 소개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온 Delphia Lim는 유일한 아시아 지역의 인권 레짐이라고 할 수 있는 ASEAN에서 NAP와 관련된 가능한 역할을 이야기했고, 프랑스의 Centre de Sciences Humaines(CHS)에서 온 Leila Choukroune는 아시아 국가들을 보면 가장 기본적인 ILO 핵심 협약들을 대부분 가입하지 않은 상태인데, 무슨 UNGP이나 NAP같은 것들을 이야기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첫날 가장 인상적인 발제를 한 사람을 3사람을 꼽으라면 태국의 Mahidol 대학 인권연구소에서 일하는 Matthew Mullen과 스위스의 DCAF라는 단체에서 온 Nelleke Van Amstel, 그리고 일본변호사협회 CSR 프로젝트팀에서 온 Daisuke Takahash였습니다.

Nelleke Van Amstel는 사설경비사업이 계속 발달하면서 관련한 인권침해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스위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이와 관련한 규범들이 잘 발달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서 사설경비업에 관한 국제적인 Initiative인 International Code of Conduct(ICOC)를 소개했습니다. 2010년에 처음 만들어져 2014년에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위 Initiative에 708개의 회사, 35개의 시민단체, 6개국 정부가 가입하였고, 영국 NAP에서는 명시적으로 ICOC에 대한 지지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Matthew Mullen은 NAP가 미안마와 태국 등지에서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NAP로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에 동조하고 있는 사법부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 정치적인 레짐이 바뀌어도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했고, NAP 개발은 추상적으로 어떤 규범을 이행할 것인지 top down 방식으로 진행되기 보다, 구체적인 인권침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bottom up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NAP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아시아 국가에서 NAP를 인권침해에 대한 연막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변호사협회의 Daisuke Takahash는 야쿠자와 기업이 연계되어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자, 일본변호사협회에서 야쿠자근절조항을 만들어서 야쿠자와 연계되어 있는 기업과의 계약은 일방이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번에는 일본변호사협회에서 기업과 사내변호사를 위한 ‘상당주의의무 가이드라인’ 초안을 만들고 있으며, 공급망에서의 CRS 조항도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아시아 국가들 중에 UNGP이행을 위한 NAP를 얼마나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NAP를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UNGP 이행도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고 다국적 기업에 의한 침해될 수 있는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과연 아시아 국가들에게 그 목적을 조금이라도 이루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NAP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가 인권 존중 의무를 해태 하는 상황에서는 NAP가 가능하고 효과적인 선택지이지만, 아시아 많은 나라들처럼 국가가 기업과 함께 혹은 기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인권을 침해하는 상황에서는 NAP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 수 있는 것이죠. 첫날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쳤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 둘째 날

첫째 날은 워낙 수줍음을 타서 말을 별로 못했기 때문에, 둘째 날은 시민사회 그룹끼리 별도의 토론이 예정 되어 있었던 터라,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회의에 오면 크게 두 가지를 반성하게 되는데, 하나는 영어를 못하면 아는 거라도 많아야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데 내가 생각보다 분명히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은 나도 한국 말로 이야기 할 때 내용 없이 너무 말을 많이 했구나 하는 것입니다.

첫째날 인도스럽고 모던한 캠퍼스에 감격을 했는데, 오늘 선주민 운동을 하는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회의를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제가 진달(진달국제대학의 그 진달이다)과 20년 넘께 싸웠거든요. 제철회사인 진달이 인권침해를 많이 했지요. 특히 선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어요. 땅을 빼앗기 위해 주민들을 협박하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1908년 오래 전이기는 해도 선주민들이 사는 땅을 광산으로 개발한다고 1에이커의 땅을 12루피에 사들인 적도 있었답니다” 뜨악~

 

오전에는 시민사회, 국가인권기구, 기업측 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했고, 오후에는 각 그룹 중에 한 명이 토론 내용을 공유하면서 토론을 했습니다. 오전에 시민사회 그룹에서 한국 상황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와 토론/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배운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NAP가 UNGP을 이행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모든 컨텍스트에서 NAP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버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NAP를 만드는 것이 전혀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NAP가 UNGP 이행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되는 조건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NAP가 만들어지는 것 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국가가 NAP를 만들어 놓고 기업과 인권과 관련한 국가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국이나 덴마크처럼 기업과 인권에 관한 별도의 NAP를 만들 수도 있지만, 기존에 있는 NAP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양자 모두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점에 대해서 말하자면, 전자는 한마디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NAP에 UNGP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후자의 단점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경우에도 해외 투자가 늘어나게 되어 많은 기업들이 실제로는 개발도상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도 그곳에 많이 발생하는데, 그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NAP를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기업과 인권에 관한 내용을 기존 NAP로 포섭을 할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NAP를 만들 것인지 결정을 한 후에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NAP중에 기업과 인권에 관한 규정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데 그나마 있는 것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권고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보면 UNGP의 이행 수단으로 NAP를 도입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압력이 있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경우에도 유럽 위원회와 유럽 이사회의 요청이 촉매제가 된 것처럼, 유엔이사회 등에서 결의나 권고와 같은 방식으로 UNGP이행 수단으로 각국에 NAP를 제정하라는 요청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NAP를 만든다고 할 때 처음부터 NAP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 정부가 어떤 식으로 관여하고 있는 기업인지 하는 것과 심각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지 입니다. 첫째 기준과 관련된 것은 예를 들어, 정부조달이나 국민연금 투자, 수출입은행, 공기업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기준은 예를 들어 아동노동, 인신매매, 금지된 무기, 분쟁광물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NAP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서이지만 NAP는 반드시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법의 개혁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UNGP자체가 상정한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지도원칙 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는 아니지만, 각국이 그것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법적인 구속력 있는 규범을 만들라고 부담을 회원국에 넘긴 것입니다. 따라서 NAP 자체가 법적인 구속력 있는 규범의 개혁에 대해 전혀 다루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또 다른 가이드라인으로 옮긴 것으로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UNGP의 이행과 관련해서 사법부의 역할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UNGP의 이행 주체는 행정부가 아니라 국가이므로 여기에는 사법부가 당연히 포함됩니다. 그런데 한국 사법부의 특징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은 말할 것도 없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인권규범 조차도 재판에서 원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법부의 관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NAP에 구속력 있는 규범의 개혁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NAP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잘만 만들어지면 UNGP을 이행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규범이든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당국과 이해관계자와 나아가 대중의 인식 제고가 중요한데, 기업과 인권에 관한 NAP가 만들어진다면, UNGP에 대한 인식 제고 측면에서는 많은 유익이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지금은 정부부처든, 기업이든, 아니면 대중이든, 기업과 인권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NAP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각종 협의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부부처간에도 협의를 해야 하고, 정부부처와 시민사회와도 협의를 해야 하고, 특히 시민사회와 기업측도 협의를 해야 하므로, 이러한 협의 과정이 실질적으로 이루어 진다면, UNGP, 나아가 기업과 인권 이슈에 대한 인식은 전반적으로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제2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수정이 되었습니다. 시민사회와 위 개정에 대해 협의를 했다는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NAP가 중간에 수정이 될 수 있다면, 급하게는 UNGP 이행에 관점에서 NAP를 수정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2016년까지는 NAP가 UNGP이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업과 인권에 관한 NAP의 개정은 노총, 기업측 그리고 관련 시민단체와 실질적인 협의를 거쳐야 할 것입니다.

둘째 날 회의를 마치면서 UNGP의 국내 이행 방법으로서의 NAP 제정에 관한 국제적인 논의를 이해하고, 관련 단체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한국에 UNGP이행을 위한 NAP 개정 혹은 제정의 아이디어를 가지게 된 것만 해도 헐래 벌떡 인도로 오게 된 보람은 있는 것 같습니다. 

(김종철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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