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후기(6.5기 이지선)

2014년 7월 15일

(6.5기 이지선)

어필 인턴을 시작하기 전에는, 저는 모든게 막막했던 학부 4학년생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인권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막연한 꿈만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평소 페이스북으로 종종 염탐하던 어필 페이지에서 6.5기 인턴 모집을 한다는 포스팅을 접했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어필의 식구로서 받아주셨습니다.

어필은 저에게 법이 얼마나 인권과 밀접한 것인지, 법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조금은 냉철한 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순한 리서치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진행중이신 재판에서 어떤 식으로 인권 협약이 적용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협약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지켜지지 않는지에 대해 감히 모든 것을 알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이 현실이 깊게 와닿았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이렇게 말도 안되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말이 되게 바꾸려는 노력들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턴 기간 동안 배운 것은 냉혹한 현실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현실에 마주하는 어필의 자세였습니다.

6기-6.5기 인턴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바로 어필의 3주년 콘서트입니다. 어필 식구들은 3주년 콘서트의  모토를 크게 두 가지로 잡았는데, 그 첫 번째가 “Raising Awareness” 그리고 그 두 번째가  “Raising People”였습니다. 비단 이 두 가지 방향은 콘서트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필의 두 가지 큰 축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제가 경험했던, 그리고 지금은 저의 일부가 되어버린 어필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Raising Awareness: “우리 모두 어디선가 이방인이다(We Are Strangers Somewhere) 그리고 우리 모두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다(We Have to Live As Strangers)”

콘서트의 주제 그리고 더 나아가, 어필의 가장 큰 모토는 “우리 모두 어디선가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김종철 변호사님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선가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이 사회의 소수자들의 인권에는 무관심한 상태이며 이 사회에 너무 편해진 나머지 대한민국의 병리적인 부분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며,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자각하고 고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인턴 기간 중에3주년 콘서트의 홍보 영상을 제작하였는데,  홍보 영상 주제 또한 이 모토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경험,  한국에서 갑자기 낯선 동네에 갔을 때 느꼈던 이질감 등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길거리에 나가 인터뷰를 하면서, 어필이 말하고 싶었던 이 한 문장이 고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히 모두가 겪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한민국 사회는 이러한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은 사회입니다. 그리고 어필은 이러한 당연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나가고 실천하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어필 식구들은, 제가 여태까지 생각했던 법조인의 모습 즉, “일반인”이 모르는 법적인 용어와 마인드로 자신들만의 성벽을 쌓는 폐쇄적인 Attorneys가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은 이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Advocates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필은 사회 구석구석에 다가가기 위해 다각도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대한민국의 지역재건팀을 돕다가 테러 단체의 표적이 된 통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하여 1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서 서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불가능해보였던 1000이라는 숫자가,  SNS나 워크샵 등을 통해 달성되는 가슴 벅찬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더 나아가, 인권 침해에 연루된 해외 한국 기업에 대한 감시 예컨대, 우즈벡 강제 아동 노동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워크샵이나 기자회견을 갖는 등 의미있는 어필의 행보에 제가 동참한 것만으로도 뿌듯한 경험이었습니다.

Raising People: “너, 나 그리고 우리 Solidarity”

제 인턴 프로필 사진에 위와 같이 “나, 너 그리고 우리 Solidarity”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어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어필은 암담한 현실 때문에 일하는 것마저 암담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여느 카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예쁜 사무실, 즐거운 음악, 변호사님들과 인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책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즐겁게 일하는 가족입니다. 우리가 즐겁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즐겁게 하겠냐던 김종철, 이일, 김세진 변호사님의 말은 비단 어필에서 뿐만 아니라,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항상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던 저의 자세도  바꾸었습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변호사님들이 보여주셨던 협력과 존중의 자세입니다. 정말로 부족한 저의 의견에 항상 경청해주셨고, 무엇보다 흔히 어느 단체에 속하든 인턴이 하는 일인 “커피만 타고 복사만 하는” 직원이 아니라 “어필을 같이 꾸려나가는” 일원으로 받아주셨던 것입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공간 사이다에서 했던 회의는, 업무 보고나 지시와 같은 수직적인 통보가 아니라, 모두가 주어진 과제를 위해서 한 마음으로 뛰어드는 지극히 수평적 관계에서의 집단 지성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과 존중의 자세가 어필이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다가가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어필을 찾는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외면해버린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분들은 언어의 장벽,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장벽 그 자체에 부딪혀 인간답지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섣불리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힘드신 분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어필을 찾는 분들 중 조금은 의심스러운 분도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정말 절박하게 힘들어 보이지만,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김종철 변호사님께 여쭤봤던 적이 있습니다. 난민 신청자 분들 중에 이렇게 진실되지 않은 것 같은 분을 마주한 적이 있었냐고 여쭤봤더니, 변호사님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기 힘들죠. 그렇지만 우리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어요.”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어필을 찾는 사람을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자세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와 아닌 자로 감히 구별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외관 혹은 내가 살아왔던 배경과는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석연치 않다고 마음대로 판단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필은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 “우리”라는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전에는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되며,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말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말을 먼저 들어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어필에서 일하는 두 달동안 한 번도 힘들다거나 지친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어필은 저에게 너무나도 따뜻한 공간이었고, 저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식구와 같은 존재였으며, Solidarity가 무엇인지 몸소 느끼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어필은 저의 일부이며, 비록 인턴은 끝났지만 제 자신 또한 항상 어필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제가 인턴이 끝나던 날, 이제는 더 이상 안국역 어필 사무실에서 일할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 때문에 잠을 못 이루던 새벽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인턴을 하기 전에 나는 4학년이라는 무거운 타이틀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만 치열하게 고민했었던 것 같다. 어필에서 일하면서 분명 “무엇”을 이루어나가는 것에도 보람을 느꼈지만, 나를 가족처럼 생각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무엇”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어필에게 너무너무 감사드린다. (2014년 2월 26일) ”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