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쿤 주최 ‘인종주의’ 강연 참석 후기 (박경태 교수님)

2013년 10월 7일

   2013년 9월 14일 14:00부터 어필의 공간 사이다에서는 (사)유엔인권정책센터(Korea Center for United Nations Human Rights Policy : 약칭 ‘KOCUN’, ‘코쿤’) 주최로 인종주의에 관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이신 박경태 교수님을 모시고 인종주의에 대한 강연이 열렸습니다. 어필에서는 6기 김신홍 인턴이 참석해서 그 내용을 꼼꼼히 정리하였는데요! 인종주의란 개념에 대한 명쾌한 개관! 한번 같이 들어 보실까요?   

강연자: 박경태 교수님(성공회대 사회과학부교수)

 

인종주의

우리는 인종주의라는 문제를 백인 사회에서 유색인종이 섞여사는 나라에서만 발생하는 일로 생각하거나 과거에나 있었던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날 개인의 사고방식에서부터 국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문제이다. 즉,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종주의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종주의란 무엇인가

인종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종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인종은 ‘사람을 생물학적 차이 즉, 신체적 특징에 따라서 구분한 것’ 또는 ‘신체상의 유전학적, 신체적 특징에 따라 구분된 인간집단이 인종이라는 규정인데, 이런 정의 만으로는 인종주의를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머리가 곱슬인 사람을 곱슬 인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금발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금발 인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신체적 특징 중에서 어떤 것은 집단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어떤 것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준은 자의적이고 때에 따라 선택되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의 사전적 정의는 달라져야한다. 정확하게 인종을 정의하자면, ‘신체적 특성에 기초해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집단’이다. 여기에서 ‘사회적’이라는 표현은 규정하는 사람에따라, 또는 그 사회에 따라 인종의 정의가 달라질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종주의는 인종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의 능력을 결정한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이 믿음안에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인종 간 불평등은 어쩔 수 었거나 당연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인종주의는 인종사이에 유전적 우열이 있다고 보아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는 인간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인간을 멸시하고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이런 합리화로 인간인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문명화를 빙자한 식민화라는 비인간적인 지배구조, 학살과 살육이 일어났다. 인종주의는 근대에 서구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즉 근대에 들어사면서 서구가 비서구 지역을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백인을 가장 높은 곳에, 흑인을 가장 낮으 곳에 두는 인종주의가 시작되었다.

인종주의와 관계된 개념들(인종주의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

 -편견-

우리말의 편견은 ‘치우쳐서 본다’는 뜻으로 공정하지 않거나 중립적이지 않는 시각을 의미하고, 영어에서 편견(prejudice)은 ‘지식이나 경험 이전에 이뤄진 판단’을 의미한다. 치우쳐 보거나 성급하게 내린 판단을 의미하던 이 단어는 사회심리학에서 ‘충분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또는 ‘잘못된 일반화에 근거한 반감’을 의미하게 되었다.

편견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는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편견이 생기고 유지되는지를 살펴보아야한다.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보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지배집단은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가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배 집단은 피지배 집단이 원래 열등하고 현재의 관계가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이 때 동원한 놀리 중 하나가 인종주의다. 지배 집단은 인종주의를 내세원 피지배 집단은 지배 집단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지배와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끊임 없이 주입하고, 이런 논리는 사회화를 통해 전승된다.

-사회화-

사회화란 새로 성원이 된 사람이 그 사회의 문화를 습득하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사회화는 편견이 전승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사회화 과정에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사회의 규칙과 규범을 학습하며 자기 자신을 사회에 적응시키며 맞춰간다. 바로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얻으며 그것을 통해 차이와 다름을 배운다. 오늘날 인종과 민족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사회화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중의 하나는 대중매체이다. 특히 전 세계의 대중매체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 대중매체의 시각이다. 미국 대중매체의 시각은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편견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흑인을 주류 사회에서 실패자 또는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약자로 묘사하는 경우와 특히 아랍권에 대해 미개하거나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식의 편향된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차별-

편견이 태도,감정,신념의 차원이라면 차별은 구체적인 행위에 해당한다. 차별의 영어사전적 의미는 ‘현상들 사이에서 차이를 인식하는 것’ 또는 ‘선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개념이 발전해서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차별은 지배 집단의 성원이나 대리인이 피지배 집단 성원들에게 행하는 해롭거나 부정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차별의 의미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행하는 개별 행동으로만 본다면 이것은 좁은 해석이 된다. 차별은 고립된 채 이뤄지는 개별 행위가 아니라 집단 간에 불평등을 낳는 사회적 관계에서 이뤄진다.

차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차별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중요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정신적인 보상을 해준다. 예를 들면 현실에서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백인 이라 할지라도 흑인 보다 자기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런 차별을 통하여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유를 둔다는 것이다.

-외부인 혐오증-

외부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본래 최근에 알게 된 이방인이나 새로운 이민자에 대해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역사를 보면 오래도록 알고 지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이미 내부인이 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외부인 혐오증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인종적, 민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내부인이 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증은 그들을 외부에서 온 사람들로 몰라 추방해버리거나 심지어는 학살하는 데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우리는 외부인 혐오증을 단순히 사회생물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된다 훨씬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추가 되어야한다. 

-서구 중심주의-

서구 중심주의는 서구 문화가 세계 역사를 만들어온 원천이고 주류고 미래이므로 서구에 속하지 않는 나라들은 하루 빨리 서구를 따라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또 서구는 역사를 만들어 왔지만 비서구는 서구를 만나기 전에는 아예 역사가 없었거나 있더라도 무의미한 역사만 있던 것으로 여긴다. 즉 서구는 중심이지만 비서구는 주변이나 변두리일 뿐이며, 서구는 변화를 이끌어온 주체이자 근대를 개척한 장본인이지만 비서구는 변화의 대상이고 아직도 전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서구 중심주의의 내용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서구 중심주의는 서구 문화가 가장 진보한 것일 뿐만 아니라 비서구가 서구를 보고 배워 전근대와 야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태도를 취한다.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주의의 또 다른 모습은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된다. 동양을 뜻하는 영어 단어 오리엔트에서 나온 오리엔탈리즘은 얼핏 보면 동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주의’ 또는 ‘동양학’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가 명저 ‘오리엔탈리즘’에서 낱낱이 밝힌 것처럼 이는 동양이 서구에 비해 열등하고 비합리적이며 미신과 같은 신비로운 특징이 있다고 여기는 시선을 의미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물질문명의 꽃을 피웠고, 미지의 대륙을 발견하고 개척하여 세상을 정복했으며, 계몽주의나 자본주의 같은 시대정신을 선도하여 인류의 삶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동양을 신비롭게 그리는 오리엔탈리즘의 뒷면에는 동양을 미개한 곳, 물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곳, 깨끗하지 못한 곳, 그래서 서양보다 열등한 곳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신인종주의

-신인종주의 배경-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시장 만능주의와 규제 완화로 사회적 부가 편중되어 양극화가 심화되자,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어도 하층 노동자 중 일부는 만성적인 실업 상태에 놓이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내국인들은 이민자를 자기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극우 정당들이 등장해서 이민자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니 내쫓아야 한다고 선동하자 내국인들은 이에 지지를 보냈다. 신인종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인종주의가 아니라 다만 문화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일 뿐이라고 선전한다. 그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사회집단, 즉 국가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국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각 국가는 고유한 가치와 신앙, 즉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으므로 다른 국가와 ‘다를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특정 국가의 문화와 맞지 않는 사람은 그곳에 살면 안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자기 국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인종이 다르니까 돌아가라’는 얘기가 아니라 각자의 나라에서 ‘자기 문화를 지키며 살자’는 얘기이므로 자기들은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과거의 인종주의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한 채 외형만 바꾸어 입고 21세기에 다시 등한 신인종주의에 불과하다.

-신인종주의의 특성-

노골적으로 인종주의를 드러내는 정책, 제도, 법은 사라졌지만 그 때문에 생겨난 과거 어두운 유산은 사라지지 않고 신인종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고있다. 또한, 드러내놓고 인종을 들먹이지 않는 사람들도 문화를 핑계 삼아 자기와 다른 집단을 비난한다. 신인종주의는 과거의 인종주의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과거의 인종주의는 어떤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보다 더 우수하다는 잘못된 논리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그 논리가 과학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해결되는 문제 였다. (물론 입증하는 과정이 쉬웠다는 말은 아니며 완전히 극복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신인종주의는 신앙이나 비이성적인 신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논리와 과학으로 설득할수 있는 영역에서 아예 벗어나 있다.

인간 이성의 끊임없는 발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인종주의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더욱 교묘하고 새로운 형태의 신인종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콜럼버스 이래 다양한 문화간 교류가 늘어나면서 인종주의가 시작되었음을 고려해볼 때 현재 진행 중인 세계화와 이민 흐름은 더 많은 갈등과 더 심각한 인종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의 인종주의와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의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서구의 인종주의는 한국이 독립한 후에도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족에서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미국 대중문화가 무차별적으로 수입되면서 우리는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데에 길들었다. 아름답다는 것은 백인처럼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고, 흑인은 범죄자가 아니면 마약 중독자로, 이슬람은 테러와 야만의 종교로 인식되었다.

미국과 서구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우리는 백인에 대한 선망을 갖게되었다. 특히 백인을 선호하는 아이들이 ‘얼굴이 하얘서, 머리카락이 노래서, 예뻐서’라는 이유를 댄것은 백인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는 성인의 백인 선망 의식이 아이들에게까지도 깊숙하게 심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 국내 체류외국인 수가 100만명을 돌파하여 전체 인구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비율이 2퍼센트를 넘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국제 결혼비율은 13.6퍼센트로 8명중에 한 명이 외국인 배우자를 맞이했고, 앞으로 그 비율만큼 ‘혼혈’아이들이 태어나게된다. 

즉, 한국에서 다문화 사회란 주제가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학자들의 토론이 이어지고, 지방 자치제 마다 다문화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정부 부처마다 여러가지 다문화 정책을 도입하고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한국의 다문화 주의는 관도주형 다문화주의이다. 관이 주도한다고 해서 다문화주의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안정,질서, 통제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부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다문화주의 정책으로는 이주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가 어렵다.

둘째,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역설적이게도 다문화적이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이뤄지는다문화를 위한 노력은 이주 여성의 적응을 위한 한국어 교육, 김치 담그는 법 배우기, 한국 문화 배우기 등에 그치고 있다. 물론 이런 노력은 이주해 온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배워서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다문화주의 정책이 아니라 한국 문화로의 동화만을 추구하는 단일 문화 정책이 되고 만다. 다문화주의의 핵심은 한 사회나 국가 안에 여러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문화의 고유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셋째,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대상 집단을 차별하는 다문화주의다.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결혼을 해서 이주해 온 사람, 그것도 여성 이주자 및 그 자녀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40만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와 외국 국적 동포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등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주자들이 빠져있다.

넷째, 한국의 다문화 주의는 ‘문화만 있는’ 다문화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주자들이 한국말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권리를 갖고 법으로 규정된 복지 혜택을 받는것도 중요하다. 결혼 이주 여성이 김치 담그기를 배우는 것도 요구하지만, 취업에서 차별받지 않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의 다문화주의 정책에는 이주자들이 이러한 실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빠져있다. 다문화주의를 문화영역에만 국한된 행정조치로 이해한다면 이주자들이 겪는 계층과 계급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다. 현재 한국의 이주민 집단은 지리적으로나 계층적으로 사회의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이주민을 그저 한국말이나 한국문화를 배우고 가끔씩 외국 문화에 등장시키는 소재로전락시킨다면 한국의 다문화주의 미래는 어두울 수 있다.

 

                                                                  (인턴 6기 김효연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