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자 문제: 말레이, 일본, 미안마를 중심으로

2012년 8월 24일

무국적자 문제 (Statelessness): 말레이지아, 일본 그리고 미안마 사례를 중심으로

(제4회 아시아태평양난민인권회의 워크숍 6의 후기)

<일본 무국적자네트워크(Stateless Network) 안내 책자 사진>

  비비엔 츄(Vivien Chew) 말레이시아 아동자원기관(Malaysian Child Resource Institute) 소속 프로젝트 컨설턴트(project consultant) 겸 변호사께서는 말레이시아의 아동 무국적자 문제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말레이시아 연방 헌법(Malaysian Federal Constitution)에 따르면, 1) 다른 시민권 없이 2) 말레이시아 영토 내에서 3) 부모 중 한 명이 말레이시아 국민인 가운데 태어나야만 말레이시아 시민권(citizenship, 시티즌십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사오나 여기선 편의상 시민권으로 번역합니다.)을 제공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출생신고서(birth registration)와 신분증명서(identity document)가 필요한데, 이러한 필요 서류(document requirement)들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해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매우 많다고 합니다.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건 바로 무국적자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불법이주민(illegal immigrant)로 즉각 분류하여 억압하는 정책 기조입니다. 억압은 완화되지 않는 와중에 출생신고서 부재 사례 증가, 유기당한 고아(children abandoned) 수 증가, 결혼에 대한 제재 증가, 영사관(consulate)에서의 각종 등록 거부 등의 4가지 주요 요인들로 인하여 무국적자 혹은 그리 될 위험에 처한 자들의 수가 이미 매우 늘어난 형국입니다. 동 말레이시아(East Malaysia)에서는 이들의 규모나 지정학적 위치가 제대로 집계 및 정리되지 않아 불명확한 것을 고려하면 그 실제 규모는 현재 추산되는 규모보다도 클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아야네 오다가와 무국적자네트워크(Stateless network) 소속 변호사께서는 일본의 무국적자 문제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일본의 무국적자네트워크는 2009년 1월에 라라 첸 티엔 시(Lara CHEN Tien Shi) 부교수(associate professor)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무국적자네트워크는 국적이 없는 무국적자들이 국적 없이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일본은 1951년 난민협약엔 가입하였으나 1954년 무국적자 협약과 1961년 무국적자 협약 두 가지 모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현재 무국적자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공식 정의도 내리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무국적자 상태임을 승인하고 또 그들을 보호하는 업무를 수행할 어떠한 특정 기관도 존재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 인도적 체류 자격이나 난민 지위를 승인받지 못한 무국적자들은 장기 혹은 무한한 기간 동안의 구금, 전무한 복지체계, 신분증명체계 부재 등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습니다. 특히 아동 무국적자들의 경우, 위의 문제점들에 더하여 예방접종을 받을 수 없다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방접종을 으레 받는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예방접종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실상 엄청난 생명의 위험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많은 무국적자 아동들의 잠재적인 질병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임신, 출산 시에도 많은 무국적자 산모들이 고통 받습니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무국적자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무국적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무국적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강연을 제공하고 무국적자 카페(Stateless Cafe)를 열기도 했습니다. 2010년 9월 5일에 요코하마에서 열렸던 무국적자 카페에서 무국적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나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심각한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태국에서 태어난 베트남 난민 2세들의 일부가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데, 태국, 베트남, 일본 3 나라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실정입니다. 이들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는 날이 일본에 찾아오길 희망합니다.

  크리스 루와(Chris Lewa) 아라칸 프로젝트(Arakan Project) 디렉터 겸 미얀마 내 로힝기야 소수민족 전문가께서는 현재 미얀마 내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인 로힝기야(Rohingya) 소수민족의 사실상 무국적 문제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어필 블로그에도 로힝기야 소수민족들의 고초와 관련된 포스팅이 업로드 되어 있습니다. http://www.apil.or.kr/1127] 미얀마 내 아라칸 주(Arakan State)에서 빚어지는 로힝기야-미얀마 족 간의 민족 및 종교 분쟁(ethno-religious conflict) 문제는 해마다 심각해져 왔습니다.

  국제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미얀마에만 무려 80만 명의 로힝가 무슬림들이 살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엔 25만 명이 살고 있으며, 십여 만 명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주로 중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휴먼라이츠와치와 여타 인권옹호단체들은 입을 모아 로힝가 무슬림들은 일상적으로 차별받는다고 말합니다. 미얀마에서 로힝가 무슬림들은 일반적으로 군부가 강요하는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라킨 주 불교도들은 받지 않는 각종 모멸을 견뎌야만 한다고 루와가 덧붙였습니다.

  로힝가 무슬림들은 그들의 마을을 떠나 여행하거나 심지어는 결혼할 때에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명백히 그들의 인구가 증가할 것을 염려하는 예방 조치입니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미 로힝가 무슬림들이 두 명 이상의 자녀를 갖는 것을 금지한 바 있습니다.

  2009년 당시 미얀마의 주 홍콩 총영사직(Myanmar’s consul general in Hong Kong)을 역임하고 있었던 현(現) 미얀마 주 국제연합 대사(U.N. ambassador)는 로힝가 무슬림들의 ‘어두운 갈색 피부’를 토착 미얀마 족 다수의 ‘온유한 피부’와 비교한 대(對)외교관 공개서한(open letter)에서 로힝가 무슬림들을 “괴물 도깨비처럼 추악한” 자들이라 묘사한 바 있습니다. [어필 블로그 포스팅 재인용]

  1982년 [미얀마] 시민권 규정 법안(Citizenship Law)에 따르면 서로 다른 범위의 권리를 부여받는 3가지 카테고리의 시민권이 있습니다. (Full, Associate, and Naturalized) 로힝기야 무슬림들은 자동적으로(automatically) 완전한 시민권(full citizenship) 부여 과정에서 배제됩니다. 이들은 결코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받을 수 없습니다. 미얀마를 구성하는 정부 공인 공식 민족 및 족속(national race)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실정입니다. 귀화를 하려고 해도 미얀마에의 귀화엔 조건이 있는데, 하나는 미얀마 독립 이전부터 실제로 미얀마 영토 내에서 거주해왔으며 또한 해당 거주자들의 자손이라는 증거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가공용어들 가운데 한 가지 이상을 유창하게 말하는 것인지라, 이상의 귀화 조건을 로힝기야 소수민족 출신자가 모두 충족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미얀마 국민들의 로힝기야 무슬림들에 대한 여론도 매우 좋지 않아서, 그들의 로힝기야 무슬림들에 대한 인식은 ‘방글라데시에서 쳐들어 온 불법 이민자들’ 이 이상 이 이하도 아닙니다. 2012년 6월에 미얀마 정부 측의 지원을 받은 폭력(state-sponsored violence)이 로힝기야 소수민족에게 가해졌다는 의혹도 제기되었고 사실로 밝혀진 바 있기도 합니다. 2012년 6월에 라킨(Rakhine) 주(州)에서 발생한 민족-종교 분쟁은 이 문제가 진실로 참혹해질 수 있음을 잘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정부 공권력의 무슬림들에 대한 정책이 참으로 강압적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눈에 보이면 즉각 사살하는 정책(shoot-on-sight policy)으로 무슬림들을 강제로 24시간 통행금지령 및 가내연금에 처하여 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그리고 국제연합과 국제시민사회단체들을 위협하였으며, 또 로힝기야 소수민족들을 보이콧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 대규모 폭력 사태 이후 진상규명위원회(Investigation Committee)가 미얀마 정부에 의해 꾸려졌는데, 문제는 이 위원회에 로힝기야 소수민족들은 단 한 명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와중에 라킨 주의 미얀마 족 급진주의자들로 위원회가 가득 채워졌다는 사실입니다. 편파적일 것이 자명합니다. 방글라데시는 로힝기야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국경의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혹은 최고의 선택인 것이, 만약 방글라데시가 로힝기야 난민들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했다면 분명 로힝기야 민족 대이동이 일어났을 것이고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양국을 무대로 엄청난 대혼란이 벌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말레이시아로의 탈출을 시도하는 로힝기야 난민들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플로어 코멘트 및 질의 시간엔 크리스 루와 씨의 로힝기야 난민들에 대한 발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내놓는 분들이 두 분 계셨습니다. 미얀마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로힝기야 소수민족을 제대로 인정하고 관리해주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표 주제 그 자체가 충분히 논란의 여지 있는 편파성을 지니고 있다는 논지였습니다. 그러니까, 무려 80만 명의 로힝기야 난민들, 소수민족이라 말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많은 수의 로힝기야 사람들에 대한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미얀마 정부에 대해 무작정 비판만 늘어놓는 것은 문제가 있고, 또 로힝기야 소수민족과 다수 미얀마 족이 그간 서로 엮여온 역사적 맥락도 완전히 잘라내 버릴 순 없는 노릇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audi alteram partem, 다른 쪽의 이야기도 들어보라는 라틴어 법언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확실히 미얀마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8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현 실태가 과연 옳은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우리 모두에게 물을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이 뒤를 이었습니다. 우리는 양자택일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하나는 취하고 하나는 버리게 됩니다. 비난받을 것을 선택하고도 비난도 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취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버린 것에 대해 아파하면서도 그것을 함부로 요구하지는 않을 줄 아는 것, 그것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입니다. 국가의 입장은 어른의 그것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기 인턴 강태승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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