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누가 이들을 바다에 붙잡았나 – 어선원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집담회

2020년 1월 10일

 

 
2020년 1월 7일, 새해를 맞아 어필이 속한 선원이주노동자 네트워크는 ‘누가 이들을 바다에 붙잡았나: 어선원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모니터링 집담회‘를 열었습니다. 집담회는 어선원 이주노동자의 인권 침해가 단순 2011년, 2012년, 혹은 2016년에나 발생한 ‘옛날 얘기’가 아니라 ‘아직도 지속하는 문제‘라는 점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발제 1> 
 
첫 번째 발제자인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는 2018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선원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어선원 이주노동자는 아직도 모집과 이전 단계에서의 취약성, 고용단계에서의 착취, 학대, 차별을 겪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전라도의 한 섬에서 선원 6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거의 70%의 선원 이주노동자가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했고, 휴일은 없다고 한 사람이 대부분(92%)이었습니다. 또한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액의 이탈보증금을 받거나 임금체납을 고의로 하거나 신분증·통장을 압수하는 수법이 아직도 흔하게 쓰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영 변호사는 이같이 외국인 선원들이 겪고 있는 취약함은 제도적인 원인이 가장 크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장시간 노동을 예로 들면 어선원은 육지 노동자와는 달리 근로시간, 유급휴가 등 규정된 최소한의 노동조건의 적용에서 제외됩니다. 즉, 어선원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은 법적으로 허용되고 암묵적으로 장려되고 있는 셈입니다. 
 
최저임금 또한 한국인 어선원과는 달리 20t 이상의 어선원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초과수당은 법으로 보장되지 않고 해당 선원노동단체와 선발소유자단체 간의 단체협약에 의해 결정됩니다. 법의 보호가 없는 상태에서 어선원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선원과의 최저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ILO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노동 착취의 목적으로 사기·기만·권한 남용·취약한 지위 이용 등의 수단으로 사람을 모집하거나 운송, 이동하는 행위를 인신매매라고 합니다. 정신영 변호사는 이런 부분에서 볼 때 제도의 부족함과 무관심으로 인해 발생한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는 결국 인신매매의 합법화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발제 2> 
 
두 번째 발제자인 순천이주민지원센터의 마리 솔리나 수녀는 섬, 특히 무인도가 많은 전라남도 도서 지역에서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보이지 않는 구금‘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전라남도에 소속된 섬 중 85%(1,596개)는 무인도입니다. 이런 무인도에는 근무시간이 끝나면 떨궈지고 근무시간이 시작되기 전에야 픽업되는, 완전고립된 상태로 혼자 살고 있는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무인도에는 여객선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고용주 허락 없이는 섬에서 나올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보건소 하나만 있는 섬이 많아 업무강도가 높은 어선원들이 부상을 당해도 마땅히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마리 솔리나 수녀는 무인도에 몇 달째 혼자 남겨진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들어오는 상담 요청이 많다며 상담이 들어와도 그 무인도에 본인이 갈 방법이 없다며 난감함을 표했습니다. 외부인이 쉽게 갈 수 없어 이주노동자가 도움을 요청해도 달리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가 허다합니다. 이 같은 철저한 고립은 바지선 위 컨테이너에서 숙박하는 이주노동자 또한 같습니다. 
 
마리 솔리나 수녀는 유인도에서 숙박한다 해도 섬 주민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 고용주이거나 혹은 고용주와 친분이나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또한 보이지 않는 구금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1,500여 개가 넘는 무인도 중에 개발 가능한 무인도가 157개입니다. 마리 솔리나 수녀는 개발이 시작되면 숙소가 들어설 수 있기 때문에 이 수많은 개발 가능한 무인도는 결국 진행 가능한 보이지 않는 구금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지도에 표기된 수많은 섬 중 그 어떤 섬에 구금된 이주노동자가 있을지 모른다며 관심을 두길 부탁했습니다. 
 
 
<토론 1> 
 
첫 번째 토론자인 경주이주노동자센터 오세용 소장은 센터에서 접한 상담사례를 근거로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이 송출금 및 수수료, 최저임금 및 퇴직금, 그리고 재해보상 방면에서 겪고 있는 부당함에 대해 생생하게 발표했습니다. 
 
오세용 소장은 해양수산부가 선원 이주노동자의 고용 및 관리 대책을 민간에 맡기면서 ‘해수부 – 수협 – 국내 송입업체 – 현지 송출업체’ 사이의 다단계 위탁구조가 형성되었다며 이 같은 구조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양의 수수료를 발생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송출업체가 이주노동자에게 막대한 송출금과 수수료를 요구하면 일부는 국내 송입업체에게 가는 구조입니다. 오세용 소장은 이러한 다단계 구조 속에서 가장 피해 보는 사람은 결국 이주노동자라고 강조했습니다. 
 
오세용 소장의 발표를 들으면서 비록 현행 선원법은 구직 과정에서의 금품 수수를 일절 금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현지 송출업체 (혹은 취업 알선 업체)로부터는 선원들을 보호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세용 소장은 일례로 약정서에 따르면 선원이 일을 그만두면 담보로 잡힌 토지 및 집 문서를 그대로 돌려받아야 하는데 송출업체가 먼저 약정서를 선원 가족에게 가져가 ‘토지 및 집 문서를 돌려받으려면 한화 500만 원을 내라’고 협박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본인과 가족에게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이주하는 어선원 이주노동자에게 퇴직금은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세용 소장은 선원법 제55조 제2항에 ‘1년 퇴직금 정산 후 남은 1년 미만의 근무 기간에 대해서도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고용주가 많고 해수부 자체에서도 지침이 엇갈리게 나와 이주노동자들이 퇴직금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세용 소장은 산재 사고에 관련해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며 많은 고용주가 산업재해보험을 신청하지 않고, 신청하더라도 사고가 나자마자 송출업체가 현지 가족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내 결국 이주노동자는 최저 액수의 보험 급여만 받게 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토론 2>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현재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80년, 90년도에 내국인 선원들이 겪었던 인권침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발표했습니다. 90년도 내국인 선원들이 제기했던 문제를 바탕으로 국내 어선업의 구조가 바뀌어야 했으나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주노동자가 떠오르면서 그 구조가 그대로 보존된 것입니다.  
 
이한숙 소장은 예전에는 하급선원의 노동을 최대한 착취해야, 그리고 하급선원에게 최대한 적게 임금을 줘야 선장과 상급선원들이 수익을 많이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동료가 될 수 없는 구조였다면, 현재는 그 상급선원 대신 내국인 선원들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오늘의 송출, 송입업체들이 예전의 무허가 소개업소들이 하고 있는 역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규제의 부재로 인해 선원들이 겪는 부당함 또한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토론 3> 
 
이주여성인권포럼의 김민정 선생님은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안전한 이주를 준비하는 데에 있는 한계와 극복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김민정 선생님은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가족에게 더 좋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어업에 취직하기 때문에 본인들을 가족을 위해 투쟁하는 존재로 인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SNS상에 존재하는 이주민 네트워크에서도 완전한 정보보다는 긍정적 이미지 중심의 이주 노동 상황이 공유되고, 이주를 준비하는 노동자들은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대안 없이 이주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민정 선생님은 이 장벽을 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주노동자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해하지 않는 표현과 접근 방식의 마련이 시급하다 결론 지었습니다. 이 같은 채널이 만들어지면 자국어 정보 및 노동권 침해 지점을 공유하고 미리 이주노동자들이 요구할 수 있는 ‘대안적 장치’를 제시하는 것이 보다 쉬워질 뿐만 아니라 국가간 정보 파급력도 높여 노동자 스스로 안전한 이주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론 4>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어선원노조 한국대표인 Ari Purboyo 대표가 앞서 토론자들의 발표를 바탕으로 본인과 노조 멤버들이 직접 겪은 노동권 침해 사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2016년에 처음 한국에 어선원으로 이주해 현재까지도 어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Purboyo 대표는 한국 노조가 외국인 선원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인도네시아 어선원노조를 설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Purboyo 대표는 본인이 한국 어선원 취업을 알아봤을 때 40개 정도의 송출업체가 있었는데 이 중 20개 정도가 한국에서 온 업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요즘은 송출업체들이 한화 1,200만 원에서 1,500만 원에 해당하는 송출금을 요구하며 일부는 현지에서 지불하고 나머지는 도착하고 나서 꾸준히 매달 3만 5천 원에서 4만 원액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고용 기간 연장 시에도 송출업체가 100만 원 정도의 상당액을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Purboyo 대표는 송출업체가 모든 것을 본인을 통해 해결해야만 하는 것처럼 포장해 그 대가로 엄청난 수수료를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례로 대사관에 한화 3만 5천원만 내면 신청할 수 있는 여권 연장을 업체가 대신해주겠다고 나서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40만 원까지 요구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체불임금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며 2,500만원 가량의 임금을 아직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를 안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Purboyo 대표는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전에는 본국을 망신시키면 안 된다는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정작 한국에 도착하니 그 문제보다 임금체불, 폭행, 산재 등의 문제가 훨씬 더 크다며 이런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이 불가능하다면 인도네시아 정부 차원에서도 E-10 비자를 닫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후기> 
 
이번 집담회는 우리가 평소 소비하는 수산물이 어떠한 과정과 누구의 노동을 통해 생산되는지 소비자로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혹은 우리가 외면하는 곳에 기본적인 노동권과 인간의 존엄성도 보장받지 못한 채 수익과 소비자를 위해 노동하고 있는 어선원 이주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나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산 및 공급 과정을 통해 결국은 나와 연결된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소비자로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선원 이주노동자가 자국민보다 못하거나 덜 소중한 외국인이 아닌 인권을 가진, 존엄한 ‘사람’으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사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누가 이들을 바다에 붙잡았나?: 한국어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보고서’는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운로드 파일: 누가 이들을 바다에 붙잡았나 한국어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인권실태 보고서

 
(법무실습생 김아영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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