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언론에 내재된 인종차별적 시선

2017년 1월 6일

▲ 방송사 SBS 프로그램 스타킹 403회 사진 캡처 후 편집(http://allvod.sbs.co.kr/allvod/vodEndPage.do?mdaId=22000125610)

지난해 연말 대한민국은 미국 대선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트럼프 후보의 다소 기괴한 발언들에 주목하면서, 그의 인종차별적인 시각에 우려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 내 인종차별 분위기의 확산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는 최근 몇 년간 미국 경찰들의 인종에 기반한 과잉대응 사건들을 상기시키며, 우리 사회에서도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gageskidmore/28757430664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미국 경찰의 아프리카계 또는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에 대한 과잉대응, 유력 정치인들의 인종차별 발언, 혐오발언에 대응하는 미국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면서, 종종 인종차별이라는 이슈가 미국사회의 고유하고 특별한 문제인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익숙한 단어가 아닌것일까요.

물론 우리 사회에서는 미국에서와 같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이슈화 된적이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인종차별 청정지역인지 자문해보면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오히려 인종차별적 사고는 미국 사회에서보다 더 은밀하고 깊게 우리의 무의식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이에 국내 주요 언론들의 기사들에 드러난 우리 사회에 내재된 인종차별적 시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종차별이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은 어떠한 구별에 기반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보편적 인권을 향유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제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1948. 12. 10. 국제연합(UN) 총회 채택, 세계인권선언]

이러한 기조에 맞추어 UN 총회는 1966년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를 채택하였고, 현재 세계 197개국 중 177개의 국가가 위 협약을 비준하였습니다[ref]http://indicators.ohchr.org/[/ref]. 대한민국도 1979년 위 협약에 가입하여 당사국이 되었습니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은 보다 자세하게 인종차별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제1조인종차별이라 함은 인종, 피부색, 가문 또는 민족이나 종족의 기원에 근거를 둔 어떠한 구별, 배척, 제한 또는 우선권을 말하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는 기타 어떠한 공공생활의 분야에 있어서든 평등하게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인정, 향유 또는 행사를 무효화시키거나 침해하는 목적 또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1965. 12. 21. 국제연합(UN) 총회 채택,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즉 인종차별이란 ‘모든 사람이 보편적 인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종적 특성에 기반하여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말한다고 할 것입니다.

때때로 인종차별적 표현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등에 업은 큰 저항을 만나기도 합니다. 과연 차별적 표현이라도 표현의 자유의 보호막 아래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제19조1. 사람은 누구나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지닐 권리를 가진다.

2. 사람은 누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3. 제2항에 규정된 권리의 행사에는 특별한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그러므로 이 권리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제한은 법률에 규정되어 있고, 또 다음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

(a) 타인의 권리 또는 평판에 대한 존중

(b) 국가의 안전·공공질서·공중건강 또는 도덕의 보호

[1966. 12. 16. 국제연합(UN) 총회 채택,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표현의 자유의 행사에는 특별한 의무와 책임이 따르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하여 법률이라는 형식으로써 제한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29조3. 이러한 권리와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여 행사될 수 없다.

[1948. 12. 10. 국제연합(UN) 총회 채택, 세계인권선언]

오히려 세계인권선언은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고 있는 권리를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 보호 및 보장이라는 국제연합의 목적에 반하여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때문에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차별, 적대 또는 폭력의 선동을 구성하는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혐오의 주장은 그 자체로서 정당하게 제한될 수 있는 유형의 정보이다”라고 하며[ref]프랭크 라뤼,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보고서, A/HRC/17/27, 2011.5.16.[/ref], 인종차별적 표현이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지 못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역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는 인종적 우월에 관한 견해의 전파 또는 인종적 혐오의 선동을 보호하지 않는다”라고 확인한 바 있습니다[ref]인종차별철폐위원회 최종견해, CERD/C/KOR/CO/15-16, para. 10[/ref].즉, 특정 인종의 우월성을 드러내거나, 특정 인종에 대한 증오 또는 인종차별에 대한 관념을 보급하는 표현은 표현의 자유에 따른 권리의 행사가 아닌, 인종차별철폐협약 제4조가 법에 의하여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범죄행위인 것입니다.      인종차별을 예방하려는 우리의 노력

21세기 들어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방문외국인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특히 중요했고, 때문에 정부와 언론인들은 다양성의 존중을 통해 인종차별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방송이 인종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여서는 안되며, 다양성을 존중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31조방송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특정 인종, 민족, 국가 등에 관한 편견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되며, 특히 타민족이나 타문화 등을 모독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을 다루어서는 아니 된다.

[2012. 12. 6. 개정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는 2011년 인권보도준칙을 제정하면서 이주민과 외국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증진하기 위한 언론의 의무를 밝혔습니다.

이 인권보도준칙은 언론의 의무로 ①특정 국가나 민족, 인종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 ②이주민이 한국 문화에 동화, 흡수되도록 유도하거나 한국의 문화와 가치를 강요하는 미담 중심 보도를 자제할 것, ③이주민을 한국의 관점이나 기준으로 평가하여 구경거리로 만들거나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 ④이주민에 대해 희박한 근거나 부정확한 추측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장하거나 차별하지 않을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각 언론사들은 자체적으로 내부 지침을 마련하여 인권 증진과 다양성 존중을 위한 보도를 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우리 언론은 위와 같은 노력으로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완전하게 걷어낼 수 있었을까요? 아쉽지만 아직도 우리 언론에는 외국인 또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인종차별적인 시선이 존재하는듯 합니다.

과거와 같이 ‘살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푸른눈’, ‘검은 피부’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라는 메세지는 ‘저급 인력이 아닌 고급 인력을 수급해야 한다’라는 메세지로 대체되었을 뿐이었습니다.

 

UN 인종차별특별보고관은 2012년 대한민국을 방문한 뒤, ‘미디어와 인터넷에서의 외국인을 향한 인종주의적 혐오 발언들이 더 광범위하고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언론의 어떤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가 재생산 되고 있을까요?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2015년부터 최근 3년 간의 기사들 중 인종차별적 태도가 드러난 기사들을 비슷한 유형끼리 모아 분석해보았습니다.      인종차별 위험 1단계 :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표현

공항서 6개월 숙식 아프리카인 ‘난민 심사’

[중앙일보 2015. 3. 9. 018면 중]

선교사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다.

[국민일보 2016. 12. 8. 38면 중]

검은 대륙, 아프리카 경제 부상할까

[한국일보 2016. 9. 30. 14면 중]

······ ‘검은 대륙’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

[문화일보 2016. 6. 3. 22면 중]

······ 아들은 잦은 폭행과 굶주림으로 탈진해 사망 당시 ‘아프리카 기아’와 같은 모습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신문 2017. 1. 17. 11면 중]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사람’, ‘동남아시아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과연 유럽이나 북미 지역의 국가에서 온 사람에게는 ‘유럽인’, ‘아메리카인’이라는 용어를 얼마나 자주 사용할까요?

미국인과 캐나다인, 영국인과 프랑스인은 철저하게 구별하면서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사람은 모로코에서 왔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건 아프리카사람으로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프리카에서 왔는데 왜 피부가 검지 않은지, 머리가 곱슬이 아닌지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아프리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난’, ‘전쟁’, ‘재해’, ‘질병’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곤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도 대중 매체에서도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다 보니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신비로움과 경계심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아프리카에는 역사와 문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무지가 우리 무의식 속에 해당 지역에 대한 편견이 깊이 자리잡게 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결여와 문화적 무지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아프리카’의 부정적인 이미지와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네스코(UNESCO) 헌장은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는 인류 역사를 통하여 세계 국민들 사이에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공통적인 원인이며, 무지와 편견이 인간과 인종에 대한 불평등이라는 교의를 퍼뜨려 전쟁을 발생시켰다’고 인류의 과거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종적, 지역적 무지에 기반한 편견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인종주의를 철폐할 수 있는 시작점이자 종착점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지와 편견의 제거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종차별 위험 2단계 : 인종적 구별을 불필요하게 남용하는 표현

‘흑진주’ 바일스 첫 금 5관왕 향해 GO!

[동아일보 2016. 8. 11. A30면 중]

미 흑인 대법관 토머스, 여 변호사 성추행 스캔들

[조선일보 2016. 10. 29. A16면 중]

   ‘색목인’, ‘유색인’이라는 단어는 전통적으로 인종적 특성에 기반하여 외국인과 내국인을 구별하는 표현이었습니다. 때문에 언론, 특히 문화·체육 분야의 보도에서는 흔히 위와 같은 단어에서 파생된 다양한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에는 외국인 또는 이주민에 대한 ‘이질감’, ‘인종적 편견’과 더불어 ‘순혈주의’에 대한 미련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흑인 여성 운동 선수에게 붙일 수 있는 별명이 피부가 검은색이라는 이유만으로 ‘흑진주’일 수 밖에 없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법부의 고위직 공무원의 범죄 행위를 보도하는데 있어서, 그의 피부색을 굳이 언급하는데는 어떠한 의도가 있거나 무의식 중에 인종적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파란 눈의 여의사’ 칠순잔치 열어 준 ’84세 노신사’

[한국경제 2015. 3. 10. A02면 중]

······ 대한민국 국적을 얻은 ‘파란 눈의 태극전사’ ······

[동아일보 2015. 4. 15. A27면 중]

······ 푸른 눈·검은 피부의 태극 전사들 ······

[서울신문 2015. 4. 25. 012면 중]

‘한국 사나이’로 거듭난 푸른눈의 아들

[중앙일보 2016. 1. 25. 23면 중]

······ 언뜻 보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모델 같다.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 혼혈 모델이다. 흑인혼혈이 주목받은 건 국내 모델계의 이변이었다. ······

[중앙일보 2017. 1. 9. 24면 중]

   아울러 피부색이 검거나 홍채의 색이 파란색인 사람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보도에 의해서 타자로 구별지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별은 대중의 무의식 속에 인종적 특성에 기반한 선입견을 강화시키고, 타자에 대한 배제를 강화시킵니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는 ‘구별은 특정한 권리 또는 자유를 훼손하는 목적이나 효과를 가지는 이상 인종차별철폐협약에 반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ref]인종차별철폐위원회, General recommendation XIV on article 1, paragraph 1, of the Convention[/ref]. 인종에 기반한 구별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유럽 대륙에서 유태인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검은 피부’, ‘푸른 눈’과 같은 표현은 그저 관용어구로만 볼 수 있는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즉, 인종적 특성에 기반한 구별을 하는 표현을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보도 행태는, 그 의도와는 달리 인종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고 특정 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보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종차별 위험 3단계 : 한국에 대한 동화를 강요하는 표현

“한국어 등 문화 적응 노력 동반돼야””우리가 남이 아니라는 할부의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중앙일보 2015. 4. 23. 028면 중]

이삿짐 나르는 몽골인들 한국인 같은 외모에 체력 좋아 인기

[조선일보 2015. 11. 21. B02면 중]

   한국인들은 외국인을 ‘김치를 아는 외국인’과 그렇지 않은 외국인, ‘강남스타일을 좋아하는 외국인’과 그렇지 않은 외국인으로 나누곤 합니다. 처음 본 외국인도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피를 나눈 형제처럼 가깝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에서는 위와 같은 기준이 ‘충성스러운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은 이주민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이 되곤 합니다. 출신과 인종에 따른 구별에 이어 엄격한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주민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대한민국 문화를 받아들일 자유가 있습니다.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의 구성원이 된 이상 그들이 만들어 나가는 문화도 대한민국 문화이며, 그것이 곧 대한민국 사회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인종차별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주민 또는 외국인을 한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별하는 표현은 차별을 불러올 위험이 농후합니다.      인종차별 위험 4단계 : 이익을 기준으로 외국인을 선별하는 표현

······ 저출산 심각, 한국서 나고 자란 아이들 포용 검토할 때 ······

[중앙일보 2015. 9. 10. 004면 중]

······· 2017년부터 인구절벽 고급 외국 인력 늘려야 ······

[서울경제 2015. 12. 25. A18면 중]

   위 기사들은 외국인과 이주민을 한국 사회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위 기사들이 전하는 메세지는 달리 보면 우리의 인구가 감소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의 자녀들을 포용할 필요가 없고, 인구가 부족하지 않으면 외국인들을 수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외국인들을 우리 사회의 이익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여기는 관점은 우리의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도구와 그렇지 않은 도구로 외국인들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고급 전문인력은 오히려 감소 장기체류 위한 플랜 마련해야

[서울경제 2015. 3. 3. A09면 중]

“미·독·일처럼 고학력 이민자 적극 받아들여야”······한국에 온 저개발국 출신 유학생들을 이민정책의 주요 공략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경제 2015. 5. 12. A03면 중]

······ 유럽, 호주 출신 엔지니어 등 화이트 칼라가 주축이 돼 외국인 타운을 형성한 곳은 거제시가 유일했다. 실제 거제에는 데이비드씨 같은 외국인들이 유럽식 라이프 스타일을 이식한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조선일보 2015. 8. 28. A01면 중]

국내 유입 외국인 대부분 저숙련 인력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 저하…비전문인력 유입 부작용 우려

[국민일보 2016. 2. 3. 10면 중]

   즉, 위의 기사에서와 같이 ‘선진국’에서 온 외국인과 ‘개발도상국’에서 온 외국인, 고학력의 외국인과 저학력의 외국인, 유럽에서 온 외국인과 비유럽 지역에서 온 외국인을 구별하여 ‘가치가 있는 사람’과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언론의 태도가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가 모든 사람들의 동등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라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외면하고, ‘쓸모 없는’ 외국인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무관하다는 인종차별적 정책으로 나아가게 할 우려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위험 5단계 :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는 표현

‘다문화 소년’ 수술비 보태려 일일찻집 연 광산구 공무원들······ 다문화 가정 출신인 김군의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렵기 때문 ······

[중앙일보 2016. 12. 9. 23면 중]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어 시행된지 10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느새 ‘다문화’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용하는 표현만 ‘다문화’로 바뀌었을 뿐,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맥락은 여전히 부정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다문화’라는 표현과 함께 온갖 지원정책, 기부활동, 봉사활동을 결합하다 보니,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시혜의 대상 또는 동정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 규정하는 ‘다문화가족’에는 가족 구성원의 지역적 출신 배경에 대한 구별이 전혀 없음에도, 대중의 의식 속에는 ‘다문화 가족’이 ‘아시아 지역 출신의 근로자 또는 결혼이민자’가 포함된 가족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듯합니다.

위의 기사 내용처럼, 우리 사회는 ‘다문화 가정은 가난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 불법체류자가 많이 발생하는 동남아 국가 등에 대해서는 재외공관의 비자발급 심사를 강화하고 ······
[서울신문 2015. 2. 6. 12면 중]
   인권보도준칙은 ‘체류허가를 받지 않은 외국인에게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언론에서 ‘불법체류자’라는 표현 대신에 ‘미등록외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들이 ‘불법체류자’라는 표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 불법체류근로자들이 암암리에 결속해 노조를 만들고 세력을 키우면 회사에 근로조건을 향상해 달라거나 체류를 합법화해 달라는 등 정치적 문제를 들고 나와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

[조선일보 2015. 6. 26. A08면 중]

······ 노조가 불법체류자들의 장기체류 수단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 ······

[세계일보 2015. 6. 26. 7면 중]

   더 나아가 대법원이 미등록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하여 체류의 적법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법상의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하자[ref]대법원 2015. 6. 25. 선고 2007두4995 전원합의체 판결[노동조합설립신고서반려처분취소][/ref], 이 판례를 계기로 미등록외국인들의 불법활동이 번질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미등록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노동력을 제공하였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사업주의 횡포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에게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지위를 인정한 것일 뿐 그들에게 합법적 체류 자격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 비추어 볼 때, 결국 위와 같은 기사는 이주노동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라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맨해튼 폭발 용의자, 아프간 여행 후 이슬람 심취한 ‘치킨집 청년’

[경향신문 2016. 9. 20. A14면 중]

무분별한 이슬람 자본 유치, 할랄식품 육성, 국내 무슬림 세력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할랄산업 육성은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 올 것이 분명하다”

[국민일보 2016. 10. 16. 26면 중]

   이슬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와 편견은 IS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을 테러리즘과 맞물려 정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폭력적이고 전쟁선동적인 교리를 가진 불순한 종교로 매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맨하튼에서 폭발 테러를 일으킨 용의자는 이슬람에 심취한 것이 아니라 극단주의 또는 테러리즘에 심취한 것이 그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단순히 이슬람에 심취해서 테러를 이르켰다고 제목을 뽑아냈습니다. 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또 다시 ‘역시 이슬람은 위험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언론사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기사를 작성하기도 하였습니다. 갈등과 반목은 어느 특정 종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와 불관용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우리 사회에서 증가하는 무슬림들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구 사회를 통해 유입된 종교들과는 달리 서부 아시아에서 유입된 종교에 대해서 유독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 속에는 뿌리깊은 인종주의적 태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위와 같은 언론의 시각은 ‘합리적인 근거가 없이 인종, 민족, 피부색을 근거로 사람을 구별하고 그들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샘 오취리는 요즘 유행하는 ‘흑형’이라는 단어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밝혔습니다. 그는 “흑이라는 말을 떼고 오취리 형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라고 하며, 대한민국 사회가 피부색에 관계 없이 형이면 형, 동생이면 동생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하였습니다. 샘의 호소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했던 말 들이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누군가를 구별짓고, 배척할 수 있음을 반성하게 합니다.

사진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ittle_Rock_integration_protest.jpg)

“집에서 반 블록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박대와 차별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의에 분노하는 것이 종종 더 쉽다”는 미국의 언론인 칼 로완(Carl T. Rowan)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일상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주의를 외면하고 미국의 인종차별 사건들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1994년 르완다에서 언론은 인종주의를 확산하면서, 구별이 차별로 다시 차별이 서로에 대한 혐오로 발전하도록 하는 촉매제였습니다. 대중매체의 시대에 언론은 사람들의 인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언론은 편견을 조장할 수도 편견을 철폐할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입니다. 때문에 인종차별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인종주의를 철폐하려면, 언론인들의 높은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과 연대하는 자정 노력이 요구됩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들이 일상속 인종주의에 끊임없이 분노하는 ‘프로 불편러’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이 보다 확대되고 활발해지고, 그러한 담론이 차별금지법이나 혐오범죄처벌법으로 제도화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계속될 때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동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12.5기 인턴 허한욱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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