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1년 5월] #16. 희망이 될 수 있기를 – 손예진 인턴

2021년 6월 2일


  날씨가 흐렸던 5월 4일, 저는 이일 변호사님의 흰색 카니발을 타고 구금된 난민 두 분과의 면담을 통역하기 위해 화성 외국인 보호소로 향했습니다. 5개월 차 어필 인턴으로서의 첫 출장 통역, 그리고 외국인 보호소 첫 방문이었기에 다소 긴장한 상태로 영어 법률 용어를 복습하고 신분증 검사를 받았습니다. 통역 노트와 펜을 들고 전수연 변호사님과 함께 면담실에 들어가자 유리창과 쇠창살 건너편에서 난민분이 다가와 앉았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았던 우리는 곧바로 면담을 시작했습니다.

  통역을 완벽하게 해낼 것이라는 제 포부와는 달리 면담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쓴 마스크 때문에 서로의 입 모양이 보이지 않았고 난민분이 건너편 수화기에 하는 말이 스피커로 불분명하게 출력되어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습니다. 또한 면담실 방음이 되지 않아 옆방에서 면담을 진행하신 분의 목소리가 종종 들리기도 했습니다. 시간적 제한 안에 변호사님이 준비하신 질문과 난민분의 답을 모두 정확히 전달하려고 하니 제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고, 말은 점점 빨라졌습니다. 난민분이 자신의 부당함, 억울함, 두려움을 다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짧고 제한적인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난민분들은 보호소 밖에서도 짧고 제한적이며 강압적이고 폐쇄적인 난민 신청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난민분들은 출입국 사무소에 수많은 서류와 신청서를 특정한 기간 내에 제출해야 하며, 난민 신청 절차에서 중요한 난민 불인정 사유서는 난민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어로만 쓰여 있습니다. 대다수의 난민은 난민 면접과 법정에서 진술을 하기 위해 통역사가 필요하지만, 난민분들은 종종 지정된 통역사의 발음과 문화적 무지 때문에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답변이 정확히 전달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습니다. 출입국에 무언가를 제출할 때마다 욕설을 듣고, 심지어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절차에 대한 잘못된 안내를 받는 난민분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습니다. 불확실한 체류 기간과 비자 또한 난민분들에게 초조함과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난민분들은 저에게서 ‘확실한 답’과 ‘확실한 날짜’를 원합니다.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서도, 보호소 방문 후 전화로 두 난민분에게 면담에서 다 하지 못했던 질문을 했을 때도, “언제 나갈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장 말하기 어렵지만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아직은 잘 모릅니다”라는 대답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난민분들의 답답함과 초조함을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하면서도 확실한 대답을 드릴 수 없는 이유는 제 대답이 틀리거나 잘못된 경우 난민분이 더 큰 실망과 문제를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소송 절차와 체류 기한 속에서 난민분들이 어필에서라도 확실한 정보를 기대하고, 변호사님들을 신뢰하고, 통역사가 자신의 말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어필과 어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그분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민분들에게 드리는 정보가 근거 있는 확신에서 비롯되고 어필이 비틀거리더라도 정의를 지어 나갈 수 있도록, 어필에서 남은 인턴 기간 동안 주어진 통역, 번역, 리서치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0기 인턴 손예진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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