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노예계약·수장한 롱싱 629 선단, 미국 해산물 수입 금지

2021년 6월 18일

강제노동으로 생산한 해산물은 수입 금지

작년 4월, 중국 어선에서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사망한 후 바다에 수장된 사건으로 어선에서의 인신매매 문제가 크게 불거졌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에서는 위 사건이 발생한 롱싱 629호의 생존자 선원들을 인터뷰하고 선원들의 인신매매 및 노동착취 사실을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MBC 보도가 나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도 사건이 알려지며 큰 파문이 일었고, 해당 선원들을 롱싱 629호에 파견한 송출업체들은 인신매매죄로 기소되어 처벌받았습니다.

롱싱 629호 사건 더 알아보기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난 2021년 5월 28일, 롱싱 629호 포함 총 32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다롄 오션 피싱(Dalian Ocean Fishing Co., Ltd.) 선단으로부터 해산물을 수입하던 미국은 해당 선단으로부터의 해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미국은 관세법(Tariff Act of 1930)을 통해 강제노동 등으로 전체 혹은 일부가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세관국경보호청은 롱싱 629호 외 다롄 오션 피싱 선단의 다른 배에서도 이주어선원에 대한 물리적 폭력, 임금 유보, 학대적인 근로 및 생활 조건 등 11개의 강제노동 인식지표가 모두 확인되었다며 선단 전체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발령하였습니다. 이번 조치로 이들 선단에서 잡은 참치와 황새치 등 해상물과 참치 통조림이나 애완동물용 사료 등 가공품 모두 미국에 입항하는 즉시 인도보류명령이 적용됩니다. 이는 개별 선박이 아닌 선단 전체에 수입금지조치가 내려진 첫 사례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에 연루되어 있는 기업들과 이를 묵인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정부들에 중요한 메세지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어업은 강제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가요?

롱싱 629호에서 확인된 것과 같은 인신매매성 노동착취는 한국의 어선에서도 나타납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청이 근거로 든 11개의 국제노동기구 강제노동 식별지표(취약한 처지의 악용, 기망, 이동 제한, 고립, 물리적 폭력 및 성폭력, 협박 및 위협, 신분증 압수, 임금 유보, 채노 상태, 학대적인 노동 및 생활 조건, 과도한 장시간 노동)에는 한국 어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들이 여럿 포함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이탈 방지 목적으로 첫 3개월 간의 임금을 유보하는 것과 과도한 수수료나 보증금을 내게 해 채노(debt bondage)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노동시간 규제의 적용 제외로 인한 하루 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도 이에 해당합니다.

강제노동 식별지표에 해당하는 사항들이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 된 데에는 바다 위 선상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선원,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주어선원의 취약성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탓이 큽니다. 휴식 보장 없는 노동시간, 이탈 방지 명목으로 정당화되는 이탈보증금과 원양 선원의 육상 구금, 임금 유보 등 제도적 보호의 공백과 배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장치들이 중첩되어 이주어선원의 취약성을 증폭시키고 인신매매에 이르게 합니다. 어떤 한 악질의 선사가 선원들을 괴롭혀서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흠결로 인한 시스템 전반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이주어선원 법제도 개선 캠페인 <누가 내 생선을 잡았을까?> 참여하기). 이주어선원 착취를 용이하게 하는 장치를 없애고 그들의 취약성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지 않는다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이 국내에 유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나라들에서 한국 해산물을 수입 금지 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한국의 유통망은요?

한 편, 인신매매는 비단 중국이나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며 우리는 일상적으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을 소비할 수 있습니다. 가령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태국산 양식 새우는 그 사료가 되는 잡어를 잡기 위해 미얀마나 캄보디아의 이주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해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노예선에 팔려가 끔찍한 노동 착취, 위협, 폭력 등을 당하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인 새우 가공공장에서도 인신매매된 이주노동자의 감금과 노동착취가 보고됩니다. 이렇게 가공된 새우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어 한국의 마트까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까지 거치는 모든 생산 및 서비스 과정을 공급망이라고 부릅니다. 태국산 칵테일 새우 뿐만 아니라 코트디부아르산 초콜릿과 커피 등 공급망 내에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이 발생하는 제품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 공급망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은 본인이 구매한 제품이 어떤 공급망을 통해 유통되었는지, 강제노동을 생산된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강제노동으로 얼룩진 제품이 국내에 유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나라들은 미국처럼 그러한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거나 각 기업들에 그들의 공급망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 리스크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밝힐 것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한국 시민사회가 인신매매특별법에 요구한 기업의 공급망 내 인신매매 대응 공시 관련 내용 보기).

한국은 이주어선원이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에 준하는 노동조건 속에서 잡은 해산물을 수출하는 나라이기도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들을 수입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어업이 계속해서 이주어선원의 착취와 인신매매에 의존한다면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인신매매 목적지 국가인 동시에 인신매매로 생산된 상품의 소비국으로서 한국이 전세계에서 취약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주어선원 캠페이너 조진서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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