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파티, “지금, 그리고 여기”

2016년 8월 9일

프랑스 현대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해체철학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사상은 매우 복잡해서 몇 마디 말로 설명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쉽게 말해보자면 해체철학이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분법적 사유를 말그대로 ‘해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데리다는 해체를 통해 서양철학 전체를 지배해왔던 로고스 중심의 모든 정正과반反의 이원구조들, 예를 들어 음성언어/문자언어, 낮/밤, 진리/허구, 이성/비이성, 기표/기의, 희극/비극 심지어는 선/악까지, ‘차이’를 바탕으로 개념을 대립시켜 구분하는 행위 자체가 근거없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이미 균열을 내포하고 있는 기존 이원구조를 경계하고 구조(텍스트) 안팎의 모든 것을 공(空) 혹은 백색의 상태로 인식합니다(데리다는 ‘차이’라는 말 대신 ‘차이’와 ‘연기(延期)’라는 말을 합성한 ‘차연’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기존(언어)체계와는 결코 결별할 수는 없음을 알았을 만큼은 현실적이었으며 따라서 ‘기존체계 안에서’ 기존체계를 해체하고자 하는 이중성의 자세를 취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공 혹은 백색상태라고 하는 것은 허무주의로 흐를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이 지점에서도 데리다는 이중성의 자세를 이용해 그러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백색상태에서 무한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자크 데리다

데리다는 유태인이었습니다. 그는 1930년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출생했는데, 그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인 1940년과 1941년 알제리는 나치독일의 점령지였습니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그래서 당시 극에 달했던 유태인 박해를 경험했습니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학계에서는 그가 기존 체계에 너무나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구조와 체계를 위시하는 학자들로부터 말이 비판이지, 사실상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평생 소외된 ‘타자(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의 철학은 “주체/타자”의 이원적 구도의 경계까지 해체합니다. 그래서 그는 생전 프랑스 내 알제리 이주민의 권익을 위해 투쟁했고 동성애 차별 철폐와 인종주의의 극복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연장선에서 데리다는 “타자에 대한 환대”를 이야기했습니다. <환대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데리다는 환대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더불어 환대를 위한 법에 대한 논의까지도 이끌어냅니다(제10회 살롱드어필 “환대와 정치적인 것: 환대의 법은 어떻게 가능한가” 참고).

-파티가 있었던 카사자밀라

지난 금요일 어필은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8개월 만에 해방된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열었습니다. 이 글에서 타인에 대한 환대를 말하면서, 데리다가 말한 ‘타자’와 ‘환대’라는 개념을 물리적인 구분인 ‘외국인’과 이들을 위해 ‘파티를 여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협소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협소한 이해가 우리 일상 생활에서는 더 피부로 느낄수 있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비록 28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처했던 곳은 끔찍하리만큼 삭막한 송환대기실이었지만 이들을 위해 작은 아랍풍의 카페에서, 여러 분의 도움으로 마련한 고향음식을 대접했습니다.

– 요리와 선물을 준비하는 어필식구들과 도움을 주신 분들
 

 

데리다가 말하는 타자는 반드시 상처입은 약자를 특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주체’의 여집합인 모든 ‘비(非)주체’들을 일컫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내가 아닌 내 옆사람, 내 옆사람이 아닌 이방인, 더 나아간다면 어려움에 처한 이방인은 어쩌면 타자 중에서도 가장 환대가 필요한 타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필의 구호인 “We are all strangers(우리는 모두 이방인입니다)”라는 말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기준이 되는 주체로 생각한다면 나 자신 역시 타자가 되기 때문에 환대는 어느 타자에게든 필요한 개념일 것입니다.
 

이번 파티를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50인분이 넘는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국제민주연대에서는 주방을 흔쾌히 빌려주셨고, 카사 자밀라 김주희 대표님은 너무나도 멋진 장소와 간식을 제공해주셨습니다. 헬프시리아 압둘와합 선생님은 파티 프로그램을 짜는 일과, 시리아 난민들과의 연락을 도와주시고 한국이주인권센터의 박정형 선생님은 주방기구들을 직접 렌탈하셔서 운반해주시고, 한국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시리아분들과 사라아부샴마레씨가 요리를 도와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찍이 아랍요리재료 및 파티준비할 사람들을 모아주시고(김동문), 호두파이를 선물로 주시고(이슬), 파티비용을 후원해주시고(서정명, 김재환), 통역을 해주시고(고은경, 홍은혜, 모하메드 갈랄, 모하마드 알 라라), 사진(조현영)과 영상(김연실)을 찍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또한 시리아분들에게 한국인들이 진심으로 환영을 하고 있다고 전달해 달라며 여러분들이 직접 환영인사를 담은 영상도 보내 주셨습니다(감동, 권소미, 김성희, 김승혜&배정호, 난센, 동천, 박상희, 이근옥, 피난처, 김윤진&채보배, 이병주, 임현수, 헬렌가족, 휴먼아시아)

– 저녁식사전에는 희망의 친구들과 명지대학교 병원의 후원으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큰 문제는 없었지만 몇몇 분은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상황이라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도와주시는 분들 모두 기꺼운 마음으로 시리아분들이 즐거워하길 바라고, 환대하길 원하며 파티준비를 도와주셔서 감동이 되었습니다. 데리다가 해체를 통해 타자에 대한 환대를 이야기한 것을 철학이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이 대가 없이 상처입은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고, 또 의술을 통해 시리아 난민들을 위로하려고 했던 것은 철학 그 이전 혹은 이후의, 또는 철학을 넘어선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오후 어느 작은 카페에서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난민을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 역시 철학을 넘어선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리다는 말했던 “지금, 여기”라는 말은 도래할 타자가 도래했을 때 차지할 일상적 현실의 장소와 시간입니다.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구조를 해체하려는 이유는 타자는 맞이하기 위함이며, 이 타자들은 우리가 처한 기존의 구조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현실도 따라서 변화할 것이며 (데리다가 싫어했을 긍정/부정의 이원구조를 잠시 써보자면) 긍정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파티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대부분 난민들의 얼굴이 직접적으로 나와있어 공개할 수 없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겼는데 얼굴을 직접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표정이 아닌 행동에 담긴 사진들로 그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시리아 음악을 몇개 준비하였는데, 음악이 나오자 한국의 전통 어깨춤처럼 덩실덩실 춤도 추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기뻤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흥이 많으신 분들인데 근 8개월간 구금되어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사셨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였습니다

(11기 인턴 김태욱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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