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후기(8.5기 이철우)

2015년 6월 1일

(8.5기 이철우)

1. 어필과의 첫 만남

 제가 어필과 처음 마주하게 된 건, 지난해 10월 전국 인권법학회들의 연합 인;연의 운영진으로서 공익인권법 단체들을 방문하면서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어필은 공익, 인권법 단체이되 조금 더 국제적인 이슈를 다룬다는 그런 막연한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불쑥 찾아뵙게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변호사님들을 뵙고 엄청 친한 척 사진도 찍으며 함께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이곳에 계신 분들이 제가 알고 있던 난민과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인신매매 피해자, 이주구금, 무국적자 그리고 다국적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방지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분주하게 활동하고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 그리고 그 때 이일 변호사님이 “꼭 영어 잘해야 인턴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라고 농담 삼아 하셨던 말, 그 한마디가 아니었으면 저는 8.5기 인턴에 도전하지도 못했으리라.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방문하기 전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아 이렇게 “좋은 분들과 좋은 일을 함께할 수 있다면 즐겁겠다.”라는 생각을 품고 인턴으로 지원할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2. 제가 바라본 어필

 이윽고 얼마 뒤의 8.5기 인턴 지원에서 마감 2분전에 메일을 접수하고, 면접 당일 지각하여 마지막으로 순서가 밀리는 등의 우여곡절(?)을 지나,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갔던 순간 또한 기억에 남습니다. 제 이런 마음을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변호사님들이 마치 선배들이 새내기 맞아주시는 마냥 부담 없이 질문해주셔서 즐겁게만 느껴졌었거든요.

 사실 추억들을 곱씹으며 다른 선배 인턴 분들이 쓰신 후기들을 읽을 때면 항상 어필 특유의 자유롭고 편한 분위기에 대해 쓰고 있더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점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 모두가 때로는 선생님처럼, 때때로는 형, 누나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셨고, 그래서인지 인턴들끼리도 허물없이(?) 서로를 대하며 오래 알던 친구들 마냥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매일 아침 출근하며 뛰어오는 길이 힘들기보단 항상 즐겁게 느껴졌었던 것 같습니다. 

한 달(로스쿨생 인턴은 한 달, 일반 대학생 인턴은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 아쉬워서 주중 휴가를 자진반납하고 나오겠다고 했던 기억도 막 떠오르고요. 왜 그랬었지 음.

 그 외에도 컬쳐쇼크였던 건강체조와 다들 단식하시는 와중에 몰래 한입 먹어서 더 꿀 맛 같았던 조청 맛, 그리고 일개 인턴들도 자유로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주간 회의 등을 떠올려보면 정말 활기차고 자유로웠습니다. 으레 생각해오던 로펌들이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 정적인 조직과도 같다면(저 이러다 장래 취업길 막히는건 아닐런지요.) 마치 통통 튀는 하나의 유기체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닐지어다,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와 대비될 정도로, 어필에서는 너무나도 진중하고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으레 저희에게는 ‘업무’지만 누군가에는 ‘인생’이 걸린 일이 소송이라고들 하잖아요? 

 그중에서도 강제퇴거로 출국되는 경우 당장 본국에서의 생명이 위태로운 분들을 지키기 위한 난민소송들과 아직은 이주민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은” 제도 및 인식을 바꾸기 위한 정책개선노력, 그리고 직접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가는 캠페인까지 제가 짧은 기간이나마 보아온 것만 해도 어필은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곳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그것이 어필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요?    

   3.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였나?

 제가 무얼 했느냐 하면, 역시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밥만 항상 제일 맛있게 먹고…….. 꼼꼼 리서치왕 가연이, 톡톡 튀는 어른아이 성희, 불어 할 때 달라(?)보이는 지희, 저보다 야무진 후임자 유경이, 한국말 못한다면서 영어실력을 과시하는 진우, 그리고 범접하기 힘든 다른 8기 인턴 분들과 로스쿨 졸업예정자 인턴 분들을 보면 아직은 멀었구나 싶더군요.

 다만 주어진 일을 할 때에는, 항상 맡은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기에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다짐하면서 나아갔었고 흔치 않은 기회인만큼 어느 것이든 눈과 머리에 담아두려 노력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에선지 회의나 변론기일에는 항상 변호사님들을 따라다녀서, 귀찮게 해드리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많았네요…하하…

 또한 만들어진 과제가 아니라, 정말 생생한 기록들과 다른 분들이 열심히 리서치해준 자료들로 서면을 써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만큼 한편으로는 누가 되지 않을까 정말 조심스럽게 되짚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주의 시대’ 스터디를 하면서는 저부터가 외국인, 특히 유색인종 분들을 볼 때면 막연히도 “돈 벌러 왔겠구나.”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기도 했었어요. 사실은 그 분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또는 사랑을 따라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 머나먼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걸, 그래서 그 수만큼의 사정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습니다.

 송별회 또한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어언 한 달 만에 찾아뵙게 되었었는데 다들 여전히 반겨주시고 맛있는 저녁과 깜짝선물(!)까지 챙겨 주신데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실컷 웃고 나니 되레 일을 끝냈다기보다는 어딘가를 졸업하는 것 마냥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었어요.   

   4. 앞으로는…….

 어필에서의 생활은 한동안 어떻게 변호사가 될 수 있을지 만을 생각하던 저에게 다시금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일깨워주었던, 특별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땐가 법정에서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사무소 담당관 분과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변호사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네고, 사건 당사자인 난민분의 안부를 물었고 흔쾌히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하고 있고, 그쪽에서도 걱정하고 있고, 그 이후로도 수고한다는 인사를 주고받은 후 지나쳤던 그 장면이 이상하리만치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왠지 모르게 저희의 반대편에 서는 분들은 절박한 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비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와서일까요? 

 제가 아는 출입국 관리 당국에 공익법무관 혹은 인턴으로 갔었던 선배 또는 동기들도 정말 따뜻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난민들의 절박한 사정을 모른 척 해야만 하게 만드는 건지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인간성의 발현으로서의 온정이 되레 인간이 만든 제도에 가로막힌다는 것의 아이러니함과, 현실과 제도의 장벽을 깨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제 생각은 변함없을 것이기에, 머지않아 다시 한 번 어필에 계시는 분들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때는 마냥 배우는 입장이 아니라 한 명의 변호사로서 옆에 서게 될 날이길 바라면서요, 한 달 동안 정말 즐거웠습니다!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