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 혹은 모순: 미안마의 봄과 아프간의 자진 송환

2012년 8월 24일

허구적이거나 모순적이거나: 미안마의 봄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자진 송환

(제4회 아시아태평양난민인권회의 워크숍 3의 후기)

  태국에 자리잡은 친 인권단체(CHRO: Chin Human Rights Organization)의 프로그램 디렉터(Program Director)이신 살라이 자욱 링(Salai Za Uk Ling) 씨께서 소위 ‘미얀마의 봄’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허구적인 관념에 불과한지, 미얀마 내 친 주(州)에 자리 잡은 친 족(族)이 직면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열정적으로 폭로해주셨습니다. [저희 어필 블로그에도 친 족 관련 포스팅이 있습니다. http://apil.tistory.com/1062]

● 친 인권기구(Chin Human Rights Organization)에 대하여

친 인권기구(CHRO)는 비정부, 비영리 기구로서 캐나다에 합법적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인도-버마 간 접경지대에서 미얀마 내 민주주의의 발전에 헌신하던 일단의 친족 활동가들에 의해 1995년에 설립된 이 기구는 이전엔 알려지지 않았던 미얀마 군인들, 지역 당국자들, 여타 정부 조직들에 의해 자행된 친족 사람들에 대한 인권 유린 사례들을 기록하고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친 인권기구는 친족 사람들의 기본권을 옹호합니다.

● 미얀마의 친족 사람들(the Chin people of Burma)에 대하여

약 50만여 명에 이르는 친족 사람들이 미얀마 친 주의 북서부에 살고 있습니다. 친족은 민족분류상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소(Aso), 초(Cho, Sho). 크후아미(Khuami, M’ro), 라이미(Laimi), 미조(Mizo, Lushai), 그리고 조미(Zomi, Kuki) 이상의 6대 주요 부족들이 마라(Mara)를 위시하여 적어도 60가지 이상의 준부족 카테고리(sub-tribal category)들로 나뉠 수 있습니다. 친족은 또한 20가지 이상의 서로 구별되는 언어들로 소통합니다. 이렇게나 민족과 언어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친족 사람들은 역사, 지리적 고향, 전통적 관계들, 민족 정체성, 그리고 종교를 공유함으로써 단결하고 있습니다. [어필 블로그 글 재인용]

  위에 정리된 바와 같이 친 족 사람들은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미얀마 다수 버마 족과 확연히 다른 소수자들입니다. 최근 소위 ‘미얀마의 봄’이라 불리는 현상이 일어나며 서구권, 특히 미국이 미얀마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아웅 산 수치 여사를 위시한 민족민주동맹의 일부가 정계에 진출하는 등의 미미한 발전이 있긴 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미얀마 내 소수민족 문제는 조금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미얀마의 근황에 대해 너무도 많은 분량의 긍정적인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 소수민족 문제를 외면하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현재 미얀마를 바라보는 주류 시선은 일종의 마약중독상태(euphoria)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입니다. 하지만 소수민족들, 특히 친 족 사람들은 여하한 형태의 유효한 변화도 지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비극이 여전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물론 몇몇 투사들이 긴 망명 생활을 접고 일말의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고국으로 돌아온 사례가 있긴 합니다만 그들도 곧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국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미얀마 현 정권의] 긍정적 변화를 담보하지는 않음에 국제시민사회가 유의해주시길 요청합니다. 미얀마의 미미한 변화들은 그마저도 매우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수준에 그칠 따름입니다. 극소수의 정치범들이 석방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감옥엔 여전히 너무도 많은 정치범들이 갇혀 있습니다. 우리의(친 족의) 고향은 20년 넘게 군사기지화 당한 채로 유린 당하고 있습니다. 휴전 협정은 말 그대로 종이 한 장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는 하룻밤 사이에도 충분히 깨질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안정화기제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친 족 사람들이 정착 및 재정착 할 것인지를 놓고 정부와 친 족 간의 견해차가 극심한 관계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존재하지 아니 합니다. 친 족에게 [미얀마 공권력이] 가하는 박해에 대한 면책(impunity)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그에 따라 아직도 많은 친 족 친구들이 인도로 도피한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체 언제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겠습니까? 박해 행위에 대한 면책 및 그에 따른 박해 지속, 거주이전의 자유 부재 등의 기본권 침해 상황을 일소하고 난국을 타개하려면 미얀마 신(新)헌법 기초 작업 등 전면적이고도 근원적인 수준의 재구조화(new framework)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국제시민사회의 동조 및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후 임란 칸 라가리(Imran Khan Laghari) 파키스탄 인권연합(Human Rights Alliance) 변호사께서는 파키스탄의 난민인권 실태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그의 발표는 특히 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들에 대한 처우의 변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은 전통적으로 이슬람교 정체성을 공유하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적 색채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관계로 발생한 난민들에게 파키스탄이 구호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파키스탄으로 밀려들어온 난민들에게 서방 세계도 구호물품 등을 원조하며 소련의 심기를 건드렸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자 서방 세계는 더 이상 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지원해서 얻을 전략적 이익(strategic interest)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더 이상 구호물품을 제공하거나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수의 난민들을 지원하는 것이 더욱 힘겹게 된 파키스탄 정부의 태도도 서서히 차갑게 식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수는 2002년엔 무려 2백만 명에 달하였으나 2011년엔 5만 명 미만에 불과하여 10년도 지나지 않는 사이에 종래의 2.5% 수준으로 거의 사멸되다시피 하였습니다. 파키스탄과 서방 세계의 태도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와중에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행정력은 무력하기 그지없어서 군벌(warlord)들이 득세하였으므로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발적인 송환(voluntary repatriation)’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파키스탄 인권연합이 합리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소위 ‘자진 송환’의 현실적 동인은 사실 ‘이해관계(interest)’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자진 송환은 사실상 ‘강제 송환(forced repatriation)’입니다. 파키스탄 내에 계속 머물고자 전쟁 같은 삶을 이어나가던 아프가니스탄 가족의 가장에게 ‘계속 귀환을 선택하지 않으면 불도저로 집을 밀어 버리겠다!’는 협박이 가해진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이 ‘선택(choice)’의 문제일까요?

  플로어의 질문 및 코멘트 시간엔 forced와 voluntary 구분의 문제는 안타깝게도 전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nothing new)라는 코멘트가 있었고, 또 repatriation이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으며 deportation이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하다, 따지고 보면 resettlement라는 용어도 잘못된 용어다 등의 용어 정립 자체에 관한 언급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난민 분들이 송환 및 재정착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어떠한 경우에도 진정한 의미의 ‘자발적 송환’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준엄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3기 인턴 강태승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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