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과 난민옹호활동:한국, 네팔, 태국, 대만의 사례

2012년 8월 23일

국내법과 난민옹호활동:한국, 네팔, 태국, 대만의 사례

(제4회 아시아태평양난민권리회의 워크숍2 후기) 

    먼저 이주구금실무그룹(Immigration Detention Working Group) 의장(Chair)이자 어필 디렉터이신 김종철 변호사가 최근 한국에 있었던 사례들에 대해 발표하셨습니다. 최근 언론에도 공개되어 유명해졌던 ‘3시 3끼 치킨버거’ 사례를 위시한 많은 안타까운 사례들에 대해 외국 활동가들도 귀 기울여 경청하였습니다. 출입국관리법 등이 현재로서는 인권을 탄압하는 기제로 전락해 있는 느낌이라고도 강조하셨습니다. 한국의 난민법의 기원 자체가 출입국관리법에 적을 두고 있는 와중에, 항만에서의 난민지위인정신청자들에게 발생하는 희비극, 마치 영화 <터미널>에서처럼 한국도 한국이 아닌 곳도 아닌 경계에 갇히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출입국관리법과 신규 난민법 모두 보다 인간적이게 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금이 불법적으로 장기화되는 상황이 한국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거나 시정하기 위해 모든 법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한국의 법무부나 이주민 관련 기관들과 교류할 때 너무 대결적인 방식으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줄어들게 된 것이 아쉽다고 하였습니다. 난민의 문제는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그래도(혹은 그렇기 떄문에) 소송이나 의견서 제출과 같은 변호사로서 전형적인 일만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창조적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것이 변호사로서 특권이라고 했습니다. 

김종철 변호사는 법무부 등과 일하는 방식이 confronting하다고 표현한 것은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니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은 7월 29일 제 페이스북 상태 업데이트의 발췌문입니다.

“금요일은 정말 인상 깊은 날이었다. 난민 분을 위해 내가 쓴 의견서와 다른 난민 분들의 난민신청서류, 그리고 공항에 잡혀 있는 한 소년 난민의 난민신청대리접수를 하기 위해 안국역에서 목동 양천구청역으로 이동하였다. 이후 김 변호사님께서 소년 난민을 위해 장시간 동안 고군분투하셨으나 결국 돌아온 답은 ‘인천공항 소관’이라는 짧지만 중후한 울림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었기에 김 변호사님은 망설임 없이 목동에서 바로 택시를 타셨고, 나도 얼떨결에 합승해서 인천공항으로 달리게 되었다. 양천구청역에서 저 답변을 얻는 데에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려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긴 했으나, 공항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더 오래 걸렸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처음 직면한 반응도 ‘이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였기에, 목동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안 들렀다 갔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4시 전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6시가 되도록 우리의 쟁점은 ‘서류를 접수 하느냐 마느냐’ 였다. 그러니까, 재심과 분들은 이 난민신청서류의 접수 자체를 하지 않고자 했던 것이다.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면서 6시 반이 넘을 때까지 떠나지 않자 마침내 ‘사물함에 넣어두고 가시라’는 답변이 왔다. 하지만 정식 서류접수가 아닌 절차이기에 이후 혹여 송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접수를 시도하였음을 입증할 방도가 없을 우려가 매우 컸다. 하지만 끝까지 이 이상의 진전을 볼 수 없었던 까닭에 우리는 선량한 인상의 공항 출입국사무소 직원 분께 신신당부하고서 이미 7시 반도 넘어서야 공항에서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다. 같은 한국 사람들, 그 중에서도 변호사가 이렇게나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데, 난민 분들의 경우엔 꼼짝없이 공무원 분들이 뜻하는 바에 따라 처분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카데미아에만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아무래도 정글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사회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로 하여금 정글이게 하는 면모들을 공개하지 않고 은닉하고 있음으로 보인다.”

  아시아태평양난민인권네트워크 부 이사(APRRN Deputy Chair)이신 고팔 크리슈나 시와코티 박사(Dr. Gopal Krishna Siwakoti)께서는 현재 네팔의 난민인권실태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환영사 때나 쉬는 시간에도 최근 한국의 난민법 제정 성공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듯 해보였던 시와코티 박사는 특히 네팔의 난민법 초안 작성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관련 전문가들과 법조인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20여 차례 이상의 회의를 하고 또 정부 관계자들과도 교류한 끝에 마침내 대통령, 수상, 의회 의원 등 최상층 권력자들(highest authority)에게 작성된 초안을 넘기기에 이르기까지 네팔 시민들이 겪은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네팔의 난민법은 2012년 6월 25일에 그 초안이 확정되었다는데 날짜가 심히 신경 쓰였습니다. ^^;; 국제 난민법 분야에서 명성이 드높은 캐나다/미국 법학자 제임스 헤서웨이(James C. Hathaway)의 감수를 받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인상 깊었습니다. 헤서웨이 교수의 책과 견해는 제가 이 세미나 전날에 열린 국제회의에서 토론자의 의견을 들을 때에도 자주 거론되었던 까닭입니다. 네팔의 경찰들이 티베트 출신 난민들과 격돌하는 사진이 발표 도중 제시되었었는데, 이번 네팔의 난민법 관련 움직임과 난민 지원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네팔에 거주하는 난민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비라위트 티안차이난(Veerawit Tianchainan) 태국난민재단위원회(Thai Committee for Refugees Foundation) 설립자 겸 총괄 디렉터(Founder and Executive Director)는 태국의 난민인권실태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비록 태국이 현재 난민협약 등 국제 메커니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진 않지만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 지정학적 위치상 잦았던 전쟁으로 인하여 이미 많은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태국 2만여 난민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난민들이 20일에서 최장 60일까지 지속된 구금을 겪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한국인으로서 주지할 점은 한국에서는 60일을 아득히 초월한 구금 사례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태국엔 난민법도, 관련 전문 변호사도, 관련 정부기관도 없이 다만 난민의 실존이 무거운 현실로 다가와 있을 따름입니다. 태국난민재단위원회 외에는 어떤 다른 사회복지시민사회단체도 존재하지 않는, 아니,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태국 헌법에 따르면 태국 시민 1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는 까닭으로 현재 태국난민재단위원회는 일단 난민법 초안 작성을 시도하기 위해 서명을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국에서도 가장 큰 적은 단순한 실물 부재가 아니라 의식의 부재입니다. ‘난민을 왜 도와야 하는가, 이렇게나 어려운 태국 국민들이 여전히 산재함에도 불구하고?’라는 질문의 억압적인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수준의 의식을 지닌 태국 국민의 비중이 아직은미미한 실정입니다. 티안차이난 씨께서는 영어가 유창하고 건장한 체구를 지닌 잘 생긴 장년이셨는데 어쩌면 태국의 산적한 문제들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결국엔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322호 오전 워크숍(Workshop 1은 제가 수강한 Workshop 2와 동시간대에 215호실에서 열린 까닭으로 수강할 수 없었던 점 양지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 마지막 순서로 에링 취(E-Ling Chiu) 대만인권협회(Taiwan Association for Human Rights) 사무국장(Executive Secretary)께서 대만의 난민인권실태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대만은 중국의 국제연합 가입 때 겪은 곤란으로 인하여 국제연합 구성원 자격을 잃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민들의 지위와 관련된 협약들에도 아직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대만 실정법 체계상 난민들에게 적용되는 법규는 이민법(Immigration Act)의 난민 관련 장(Refugee Chapter)입니다. 이 난민 관련 장은 많은 약점들과 단점들을 내포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제 이목을 끌었던 대목은 바로 ‘공공질서를 위협한다고 여겨질 경우(dangerous to the public order)’엔 난민지위인정신청자들 및 난민들의 권리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는 취 씨의 언급을 인용하자면 ‘법규로 적용되기엔 지나치게 애매모호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항상 인권 관련 이슈로 제기되는 국가보안법 등의 이슈들이 떠올랐습니다. 성문법이 불문법에 대하여 지니는 압도적인 이점이 바로 기록 내용의 명징성에 의거한 보편성과 명료성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매모호한 표현의 존재 및 악용가능성을 묵과하는 것은 해당 법규가 성문법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법도와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위라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극히 흔한 논쟁이긴 하지만, 흔한 이야기들이 종결되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은 게 시민사회운동의 세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대만의 인권운동도 우리와, 세계와 같은 곤란을 겪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걱정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 태국 이민법 난민 관련 장이 지닌 문제점은 바로 관련 절차들에 임하여 실패했을 경우 취할 수 있는 명료한 대책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no clear remedy). 성문법으로 보장된 법적 구제절차가 부재하게 되는 단계가 발생함에 따라 난민지위인정신청자들 혹은 난민들이 강제송환에 매우 취약해지게 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플로어 코멘트 및 질의 시간엔 바바라 헤럴본드(Barbara Harrell-Bond) 옥스퍼드 대학 난민연구센터(Center for Refugee Studies, University of Oxford) 설립자 겸 디렉터(Founder / Director)가 난민지위인정신청실패자들의 송환 사례(deportation of failed asylum seekers)에 관한 웹사이트 www.frlan.org를 소개하였습니다. (나중에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바바라 디렉터께서 몸담고 계시는 파하무 난민 프로그램[Fahamu Refugee Programme]의 홈페이지였습니다. ^^)

  그리고 태국의 현황에 대하여 티안차이난 씨께 추가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그에 따라 티안차이난 씨께서 태국 정부의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난민들이 태국 시민들과 별다른 교류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추가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리고 현재 태국 난민 캠프 정책에 따르면 난민들은 난민 캠프를 ‘나갈 권리’는 보장받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절대다수인 까닭에 권리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권리인 셈입니다. 동시에 태국구금센터가 지나치게 오랜 기간 동안 난민들을 구금한다는 비판이 최근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캠페인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답변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난민신청서류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또 대만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점이 현재 태국 난민들이 겪는 곤란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3기 인턴 강태승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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