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보호를 위한 사회적 역량 강화, 난민의 목소리

2012년 11월 8일

2012 동아시아 난민회의 East Asia Symposium 

지난 10월 29일 대만에서 동아시아 난민회의가 열렸습니다. 세션 1,2 에서는 강제이주, 인신매매 등의 개념과 실태, 한국과 대만의 난민법을, 세션 3, 4부에서는 사회 속에서의 난민의 삶과 난민 보호를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을 다루었습니다. 이중 세션 3, 4 에 대한 후기를 적습니다.

Building Capacity for Refugee Protection: Education, network development, and putting protection into practice[session 3]

세 번째 세션에서는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의 역량 강화라는 주제로 Anoop Sukumaran(APRRN Coordinator)씨의 진행 하에 네 명의 발표자가 각각 대만, 한국, 일본, 홍콩의 사례를 발표하였습니다.    

   첫 번째 발표자인 Yu-Chien Kung(Union of Excluded Immigrants and Unwanted citizens)씨는 대만에서 역사적․정치적 변화에 따라 난민, 무국적자들의 지위가 변화해온 과정(Refugee, Stateless and Border Control: Taiwan Cases)을 설명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대만)는 사람들의 국경 간 이동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만에 들어온 140,000명의 이주 노동자들은 대만 노동법(labor standard law)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국적 인정 등 여러 방면에서 국제 기준에 심각하게 미달하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외국인의 대우에 있어서 출신국간 차별이 심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일례로 대만 국민과 결혼한 티베트 출신 배우자에게는 외국인 등록증(ARC)과 거주 허가가 발급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무부 팁 레포트(tip report)에서 지적을 받은 이후 시행한 대만 내 외국인 현황 관련 조사에서 일부 국가 출신자들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졌던 것에서도 정부의 차별적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를 Kung씨는 대만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 변화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1945년 2차 대전 종료 후 현재까지 대만 이민 정책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강연자들도 누차 언급했지만-대만과 중국을 동일한 국가로 볼 것인지 여부에 따라 지위가 달라지는 사람들(중국 본토, 홍콩, 마카오, 티벳 출신자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대만정부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대만 국적을 쉽게 발급하여 주었지만, 1970, 80년대를 거치고 특히 1987년 martial law 폐지와 1999년 이민법 개정을 기점으로 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에 대한 대만정부의 태도가 제한적 수용(혹은 선별적 수용)정책으로 변화하여 수많은 무국적자(stateless person)를 양성하였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또한 북한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있어 복잡한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고, 한국에서는 북한 출신자들을 바로 한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여 대만에서는 중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논란이 있는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을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문제는 session 2에서 대만 난민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이슈가 되었습니다.) 또한 대만 사회에서 난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이후, 난민법 초안이 작성된 것은 2010년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난민’ 개념이 사회적으로 늦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이나 일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님이 한국의 난민지원네트워크(“Protection Practices by Korean NGO: Establish and Improving Comprehensive and Consistent Services for Asylum-Seeker and Refugees”)에 대해 발표하셨습니다.

먼저 1992년 난민협약 가입 이후 한국의 난민신청/인정, 인도적 지위 인정 현황과 2006년 시작된 NGO들의 난민네트워크를 소개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2008년 난민 리서치와 2006년~2011년 난민법 제정 캠페인을 벌여 난민법 제정을 이끌어냈다는 점, 매월 회의를 하며정보와 아이디어(난민의 날 플래쉬몹, 인턴쉽 소개 등)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에서는 국가 인권위원회, UNHCR, NGO의 협력이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발표를 들으며 지난달 처음으로 참석했던 난민 네트워크 회의를 떠올렸습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채 참석한 회의였지만 난민법 시행령을 준비하고 사법통역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보며 회원들이 그간 본격적이고 장기적으로 협력해 왔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만 NGO들을 ‘encourage’하고 싶다는 발표의 마지막 부분을 들으며 대만은 물론 다른 모든 국가들에서, 그리고 한국과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끈끈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Mitsuru Namba(Japan Federation of Bar Associations)씨의 일본의 난민지원변호사네트워크(“Development and Challenges of Lawyers Networks for Refugee Protection in Japan”)의 발전 과정을 1단계(사건 해결을 위한 협력체)-2단계(난민 전문 변호사 등장, 60일 기한 조항 폐지 운동 등 정책 개선 위한 협력)-3단계(60일 기한 조항 폐지 성공, 일본 내 이주자들에게 법률 컨설팅 제공)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Mitsuru씨는 난민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내부의 적으로 개혁의지가 없는 변호사의 마인드, 특정 난민그룹이나 개별 케이스 중심으로 관심이 분화되어 있다는 것, 경제적․법적 보호책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와 함께 앞으로 변호사 네트워크의 발전과 이해관계자(NGO, UNHCR, academics)들의 협력, 글로벌 트렌드를 고려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발표를 들으며 한국과 일본의 난민 문제는 이슈가 되기 시작한 시점, 처음 난민을 인정한 시기, 난민의 출신국 비율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협력하여 난민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Kelly Loper(University of Hong Kong Faculty of Law)씨가 인권/난민 교육 커리큘럼의 역할(The Role of Human Rights Education in Capacity-building for Protection of the Rights of Refugees in Hong Kong)을 이야기했습니다. 홍콩은 난민협약의 가입국은 아니지만 UNHCR(난민신청절차 담당)과 정부(입법) 양자 시스템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홍콩대학에서 인권과 난민에 관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 과정의 목표는 사회 전반에 인권 문화를 증진시키고, 리서치 능력과 국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어 이를 바탕으로 현지-국내-지역-국제간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변호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교육과 수료생의 장래 커리어를 연계시키는 것과 좀 더 전문성을 키우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덧붙였습니다.

Surviving and Building a Life: The Refugee Perspective [session 4]

네 번째 세션에서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으신 로넬씨와 티벳 출신 대만 난민(?) K씨께서 한국과 대만에서의 삶과 난민에 대한 처우에 대해 발표하셨습니다.(사진이나 실명을 노출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다만 로넬씨는 언론에 많이 보도되신 분이기에 실명을 기재합니다.) Brian Barbour(Japan Association for Refugees)씨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발표자 로넬씨는 방글라데시 줌머족으로 다수민족인 벵갈리족의 탄압에 맞서 자치권을 얻기 위해 싸우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 탈출했습니다. 여러 국가들 중에서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민주화된 나라라는 믿음이 있었고, 줌머족에 대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한국에 줌머족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로넬씨는 한국의 난민신청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신청자를 범죄인처럼 인터뷰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난민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한국정부와 NGO들이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발표자 K씨는 부모님이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로 이주하고, 자신은 인도에서 대만으로 이주했지만 대만 국적을 얻지 못해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때 대만 정부가 인도로 이주한 티벳트 사람들을 자국민으로 대우한다는 말을 듣고 입국했지만 현재 대만에서 K씨와 같은 사람들은 국적을 얻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대만인과 결혼해도 국적을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게다가 티베트 망명정부가 발급한 ID카드는 대만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된 서류를 요구해 입․출국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합니다.  최근 대만정부가 비자를 발급해주긴 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자들에 비해 현저히 짧은 2개월 밖에 인정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K씨는 대만의 NGO들이 정부와 사회에 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지하철역에서 로넬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환한 미소를 지닌 로넬씨는 능숙한 한국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물어봐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방글라데시 선주민인 줌머족을 알리고 싶지만 기회가 적어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선주민의 권리는 전세계적으로 이슈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한민족 관념이 워낙 강해서인지 사람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는 저도 로넬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선주민의 권리에 대해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만, 티베트, 홍콩, 중국과의 관계가 구성원들의 삶에 이렇게 복잡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배워가는 중이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번 동아시아 난민 회의처럼 배움의 기회가 계속 주어지는 것이 정말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난민들이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구성원들이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를 통해 모두가 생각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4기 권민지 인턴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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