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0년 5월] 희망과 사랑으로 구원받고 싶습니다 – 김종철 변호사

2020년 6월 5일

 

내가 했던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5년전미군부대근처의클럽에서성착취목적의인신매매를당한뒤탈출한필리핀여성들을 지 원한 적이 있습니다. 인신매매에 관한 법적 공백 때문에 가해자인 클럽 업주는 인신매매죄로 처벌 되지 않았고 상습성추행의 유죄판결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 같은 클럽에서 같은 패턴의 인 신매매 피해를 입고 탈출한 필리핀 여성들이 어필에 찾아왔습니다. 피해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면 서 그 동안 인신매매와 싸운다고 하면서 분주하고 소란스럽게 일해왔는데 내가 했던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자문하면서 낙심이 되었습니다.
 
당신 자식들이 어디 잘 되나 보자
 
  피해 여성들을 위해 그 클럽 업주를 상대로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그 클럽 업주였습니다. 내가 아무개인데 나를 아느냐고 했고 안다고 하니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느끼한 말투로 반말을 섞어가면서 5 년 전에 자기가 억울하게 처벌을 받았 다는 것과 임금체불의 책임이 없는 자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가 뭐냐고 하면서 이야기 끝 에 “당신 자식들이 어디 잘 되나 보자”고 하더군요. 임금 청구 소송 외에 형사 고소를 준비하고 있는 지 슬쩍 떠 보면서 은근히 겁을 주려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솔직히 겁이 조금 나기도 했지만 비아 냥 거리는 말을 제대로 받아 치지 못한 것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 말이 하나라도 헛되지 않게 하자
 
  피해 여성들과 인터뷰는 하루 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 일에 걸쳐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저는 여성들이 대단한 사람들이고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낙심 되고 겁나고 억울한 사람들이 저를 믿고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세세하게 끄집어 내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성들이 힘들게 이야기 해 준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헛되게 만들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인터뷰 한 메모를 읽고 또 읽으면서 빠짐없이 고소장에 담았습니다. 내 가 하는 시도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잘 담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는가 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1등급이 정당화 해 온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끝장을 보자는 마음으로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하 면서 인신매매 대응에 실패해 온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보고서의 제목을 “1등급이 정당화 해 온 것이 무엇인가?”로 붙여서 미 국무부에 제출을 했습니다. 미국은 해 마다 각 나라의 인신매매 상황에 관한 문서를 발간 하면서 등급을 메기는데, 한국은 2002 년부터 최상위인 1 등급을 받아왔습니다.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그렇게 오랫동안 과대 평가된 것 때문에 인신매매 대응에 계속 실패해왔고 같은 피해자들이 계속 생겨났다고 주장을 하면서 한국 정부를 강 등을 시켜달라는 도발적인 요구를 했습니다.
 
동료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선물처럼 주어진 변화
 
  지난 달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한 간담회에 다녀왔습니다. 간담회에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정부 가 연내에 인신매매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로드맵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랄만한 소식인 이유는 인신매매 특별법 제정 시도는 정부의 반대로 번번히 좌절되어왔는데 이제 정부의 주도로 만 들겠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계획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어필이 미 국무부에 제출한 보 고서 때문에 이런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 니 이 일은 어필이 인신매매에 관해서 일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인신매매 특별법 제정을 위해 오 랫동안 싸워온 선배/동료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주어진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망과 사랑으로 구원받고 싶습니다
 
  이렇게 어필에서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도 저는 여전히 비틀거리며 (삶을 혹은 정의를) 짓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내가 했던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라며 낙담하고 또 “다 내가 애쓴 덕분에 생긴 일이다”라고 착각하는 때가 다시 오겠지만 그 때마다 라인홀드 니이버가 했다 는 다음의 말처럼 희망과 사랑으로 구원을 받고 싶습니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의 생애 안에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고결하다 해도 혼자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 받아야 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김종철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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