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식년 마치고 돌아온 김세진 변호사입니다.
저는 2월에 복귀하였는데요, 제가 안식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김종철 변호사님은 안식년 때 미국의 팜스쿨을 다녀오셨는데요, 저도 사실 덴마크에 있는 폴케호이스콜레 학교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입학 즈음에 코로나가 발발을 해버려서 못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주로 집에서 안식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 특별공급을 받게 되어서 이사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어가는 집이 특이해서 한 세대가 두 집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 집인데, 현관문이 두개이고 두 집으로 살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집에 부모님이 사시고, 다른 한 집에는 제가 살기로 하고, 부모님과 함께 이사를 했습니다.
대학교 입학하면서 서울 올라온 이후 계속 서울에서 혼자 살았는데, 거의 20년이 지나 이렇게 부모님과 함께 사니 여러모로 참 좋습니다. 그 중 제일 좋은 것은 제게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엄마밥’을 먹는 것입니다.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언제든 부모님집에 가면 밥이 있고, 김치가 있고, 각종 밑반찬들이 있습니다. 혼자 살 때에는 집에 밥이 없으면, 혼자 밥 먹기 귀찮으니 대충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곤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고 꼬박꼬박 밥을 먹으니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식사 후 과일을 먹으면서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미스터트롯을 같이 보기도 하고, 산책도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참 즐거웠습니다.
안식년 동안 이렇게 특별할 것 없이 보냈지만, 그 특별할 것 없이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 일상이 참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티브이도 보고 산책도 다니고, 이야기도 나누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큰지 순간순간 느끼며 보냈습니다. 부모님께서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사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행복의 소중함을 크게 느끼고 나니, 업무 복귀 후 난민들의 깨어진 일상을 보며, 이전 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T는 한국에서 난민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족들 중에 큰 아들은 난민 가족비자를 얻지 못하여서 쫓겨날 처지에 있습니다. 출입국외국인청은 아들이 난민신청 당시에는 미성년이었지만 난민심사 과정에서 성년이 되었기 때문에 난민가족비자를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M은 한국에서 인도적체류지위를 인정받았지만, 가족들은 한국에 없다는 이유로 가족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비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사관에 가족으로 살 수 있도록 비자를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습니다. 지금 아내와 두 딸은 본국에서는 정치적 박해를 받는 남편 때문에 가족들도 위험하게 되어 제3국가로 피신해 있습니다. 거의 3년간 딸들을 보지 못한 아빠는 가족들 걱정에 한시름도 놓을 수가 없습니다.
H는 지금 난민신청자입니다. 한국에 온 이후에 딸이 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두 번 병원에 가서 혈관주사를 넣어야 합니다. 아내는 무슨 병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수시로 하혈을 하여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아픈 아내와 딸뿐만 아니라 이제 막 태어난 막내 아들까지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그간 하던 일용직 노동도 잘 나가지 못합니다. 직장이 없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여서 매주 딸의 주사비로만 12만원씩 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닙니다.
난민들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들을 생각하면 제가 누리고 있는 일상들이 미안해 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어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욱 힘을 내봅니다. T의 아들이 비자를 얻어T가 더 이상 아들이 한국에서 쫓겨 날까 걱정하는 일은 없게 되길 바라며 법무부에 제출할 의견서를 작성하였습니다. M의 가족들이 모두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서 함께 살 수 있길 바라며 M의 아내의 탑승을 거부하는 법무부에 항의를 합니다. H가 어서 난민인정을 받아서 취직도 하고, 아내와 딸도 의료보험 혜택으로 마음껏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날을 소망하며, H의 난민인정 증거들을 정리하여 출입국에 제출하였습니다.
어필에서 난민 인정을 돕고, 난민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가족결합을 돕는 일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결국 난민들의 ‘일상’인 것 같습니다. 일상의 회복을 통해서 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행복해 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우리 곁으로 온 난민들이 일상을 회복하고, 그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길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도 계속 어필의 동료들과 함께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가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김세진 변호사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