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필 미디어팀에서 7월부터 일한 정희진 인턴이고, 어필 내에서 불리는 이름은 폴랑입니다. 학생 때 쓰던 영어 닉네임이 있지만, 어필은 의미 있는 곳인 만큼 특별하게 호명되고픈 마음에 며칠간 고민하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폴랑은 영화 <아멜리에>에 나오는 주인공의 성입니다. 풀네임 ‘아멜리에 폴랑’ 중 아멜리에는 한글 표기론 네 글자라 약간은 긴 듯하여, 폴랑을 선택했습니다. 늘 주변 사람들이 행복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영화 속 아멜리에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름으로나마(?) 닮게 되어 기쁘네요. 이름 모를 철학관에서 지어 평생을 불린 본명보다도, 어필에서 지은 폴랑이란 이름이 퍽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써먹을 생각입니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로 장황하게 서두를 늘어놓았죠. 저의 ‘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원고에서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내 것이지만 나보다도 남이 더 많이 사용하는 이름이란 것이, 예전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이름이란 일종의 표상이고,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저는 ‘이름 불러주기‘의 힘을 느낍니다. 특히 어필에서 일하는 동안, 이전까진 숫자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난민분들, 인신매매 피해자분을 직접 만나고 이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제 눈앞에 있었던 분들은 난민이라고 뭉뚱그려지는 대상이 아닌, OO 씨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최근 아프가니스탄 일 이후 한국에서 뉴스를 접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390명의 아프가니스탄인 조력자, 카불 공항에서 사망한 170여 명, 공항에 남은 민간인 1천 명 등등…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통계 속 데이터로만 존재하게 되니까요.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은 숫자로 너무나 평평해집니다. 누구나의 입체적인 삶은 이렇게 대상화가 되고,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엔 평화롭던 어필 유튜브에도 상당히 뾰족한 댓글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디어팀으로 어필에서 긴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요즘 달리는 날 선 댓글들은 이례적인 일이라 하셔서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뉴스로 접하는 데이터가 아닌 이름으로 누군가를 부를 때, 그들은 구체적인 의미가 됩니다. 대상이 아닌 존재가 되고, 이방인이 아닌 동료 시민이 됩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분명 뉴스로, 이슈로만 접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정상 공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분들이 많지만, 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제가 속한 미디어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원영 작가님이 <창비 어린이>에 기고한 글 중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는 자신이 추상적인 집단의 상징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별성을 지닌 개인임을 인정받으려 투쟁한다.’ 한 사람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힘이 있습니다. 제 말로 바꾸어보자면,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그 자체로도 힘이 있습니다. 힘이 있는 이야기들은 모여서 보편이 되기도 하고, 담론이 되기도 합니다. 근미래에 다큐멘터리 제작을 꿈꾸고, 어필 미디어팀에 합류하게 배경에는 이러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해나가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1기 미디어 인턴 정희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