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1년 7월] 타인의 권리를 위한 정의 – 정수하 인턴

2021년 8월 4일


  [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을 써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부담이 되었습니다. 살면서 딱히 정의로운 일을 한 적이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모르는 게 많다는 것만 느끼던 참이라 내가 과연 어떤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에 다른 분들이 작성하신 글들을 읽다가 지금 저에게서 절대로 그런 글들을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제 얘기를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어필을 통해 느끼고 배운 것들을 써 보려고 합니다.

  작년 겨울, 저는 유튜브를 통해 어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청년경찰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친절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필 빠르동의 청년경찰 소송 이야기 에피소드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제게 유튜브는 주로 눈밭에서 클래식 기타를 치는 영상이나 먼치킨 고양이와 포메라니안 강아지의 우정 이야기,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 영상 따위를 주로 시청하는 플랫폼이었기에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어필 영상을 클릭했던 건 조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몇 해 전 여름, 조선족이 청년경찰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기사를 제목만 읽었고 소송까지는 너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연중에 ‘조선족 범죄 뉴스가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잖아,’ ‘물질적 배상이 목적이겠지’ 하는 생각이 깔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소송이 어떻게 결론지어졌는지 궁금했기에 3분 정도만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클릭했던 20분 넘는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을 때, 저는 제 생각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운함을 느끼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동포분들이 그 영화를 시청하시고 어떤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셨는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어떤 변화를 체감하셨는지, 어떤 마음으로 소송을 시작하셨는지,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아서 몰랐던 것들이었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같지는 않겠지만 5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그곳에서 보았던 여러 이민자의 삶의 모습이 제 마음속에 남아있어서 더욱 뼈저리게 공감되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난민이라고 하면 비정상회담에서 유럽 국가들이 난민을 받아줘야 하는지에 관해 토론하던 것밖에 모르던 저였는데 청년경찰 영상 이후 어필 유튜브의 다른 영상들을 시청하면서 정확히 난민제도가 왜 필요한 것인지, 한국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등에 대해 배우며 어필이라는 단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어필 홈페이지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마침 당일이 지원 마감일이었던 미디어 인턴 지원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지원서를 클릭해 보았던 것은 그저 호기심이었습니다. 당시 갓 대학교 1학년을 마쳤고 자격증 같은 것도 없었기에 일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인데 지원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도 정말 호기심이었습니다. 아마 어필 인턴 지원서가 학력이나 경력 따위를 적어내는 것이었으면 작성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에세이를 요구했고 ‘내 안의 인종차별/혐오주의를 극복하려면’이란 주제를 보자마자 적어내고 싶은 말들이 밀물이 들이닥치듯 제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그렇게 쓰고 싶은 말들을 적다 보니 자정이 넘어 지원 마감일을 넘겨버렸고 제출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들어간 홈페이지에 연장 소식이 적혀있길래 제출하라는 신호인가 싶어 제출했던 것이 작년 한 해 동안 했던 제 모든 선택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약 반년간 어필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배웠습니다. 빠르동과 북리뷰를 편집하며 청년경찰 영상을 시청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안들과 그것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들을 받으며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연들과 있는지도 모르던 외국인 보호소에 감금된 사람들의 모습도 알게 되었습니다. 버터 커버도 해 보고 좋아하는 책 리뷰도 직접 해 볼 수 있었던 경험도 감사하고 소중했습니다. 어필에서 일하는 동안 힘들었던 일을 뽑으라고 하면 기억을 헤집고 헤집어도 겨우 나올 수 있는 답이 영상도 더 잘 만들고 어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잘할 줄 아는 것이 없어 도움은커녕 폐만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누구도 탓하지 않은 저만의 작은 죄책감 정도뿐이라는 것도 감사합니다.

  배우고 감사한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제가 어필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어필에서 일하며 타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정의를 추구하는 삶의 일상이 이렇게 반짝반짝하고 평화로 가득 찬 모습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사회가 끊임없이 ‘네 몫은 네가 챙겨라’라고 종용한다고 느꼈습니다. 속한 사회공동체 속에서 ‘내 권리’를 더 얻기 위해 혹은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주위의 누구도 네 권리를 더 열심히 챙기라고 가르치지 않았기에 사회 탓이 아닌 자연적인 이기심에 근거한 생각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에 나올 법한 혼자만을 위하지 말고 더불어 살자는 가르침이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한정된 자원과 혜택 심지어 인권까지 등수에 따라 혹은 인맥, 학력, 재력에 따라 차등하게 제공하는 현실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저는 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좀 더 아등바등하게 살았고 또 그런 삶을 정당화하며 더 현명하게 내 몫을 못 지키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반년간 경험한 모든 어필 구성원분들은 자신의 몫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하면 타인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에 열정과 정성을 쏟으셨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보며 힘들겠다가 아닌 그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움이 없다거나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렵고 힘들 순간들에도 배려와 존중을 잃지 않기에 평화로운 것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어필은 ‘모든 사람은 천부적인 존엄성으로부터 나오는 내재적인 인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보장하는 것이 정의이며, 이러한 정의의 실현이 평화의 기초’라는 비전을 난민들을 위해서 또 법정에서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무실과 일상 중에서도 실현해 저도 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게 해 주었습니다.

  영상을 편집하다가 어필에서의 사회생활이 너무 좋아서 다른 직장에서 적응하기 힘들다고 하는 전 인턴분의 이야기를 봤습니다. 사실 저도 그럴 것 같아서 걱정되고 아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걱정과 아쉬움보다 첫 사회생활로 어필에서 일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이 큰 이유는 제가 어느 사회공동체 속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든 어필의 비전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준 것이 값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침해된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려 노력하시는 모든 분과 어필처럼 타인의 침해된 존엄성과 권리를 지켜주려 노력하시는 모든 분께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0기 미디어 인턴 정수하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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