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광역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쉽게 멀미를 하는 편이라 창가에 앉아 창문을 살짝 열곤 합니다. 그 틈으로 사람으로 그득해 눅눅해진 공기를 내보내고 시원한 바람을 들입니다. 밀도가 최고치에 오른 버스에서 어지럼증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공기가 오고 가는 작은 틈새 덕분에 버스에서의 세 시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습니다.
세상엔 그 틈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대한 벽 뒤 그림자 아래서, 틈 사이로 겨우 숨을 내쉬는 사람들을 어필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 틈은 바로 0.4%밖에 되지 않는 난민 인정률이고, 착취당하는 이주어선원이 출렁이는 갑판이 아닌 땅을 딛는 순간이며, 열악한 외국인 보호소 구금으로부터의 해제이고, 사람이 매매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 존엄 될 때의 순간입니다. 99.6%의 벽이 높고 견고합니다. 거기에 더해, 난민을 짐 덩어리 취급하고 사람을 불법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말로 틈을 메우려는 시도가 매일 일어납니다. 배척이 되어버린 낯섦이 빈틈없는 벽을 쌓아갑니다.
하지만 저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는 어필 사람들의 단단한 노력을 목격했습니다. 균열을 내기 위한 10년간의 애씀을 몸소 느꼈을 때가 떠오릅니다. 192일 동안 구금되고 풀려났을 때 정말로 빛을 본 것 같다던 칼리드 님의, 어필과 연락하면서 지난한 보호소 생활을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던 킹다비드 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입니다. 실금처럼 보이는 좁다란 틈이 누군가에게 빛과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순간입니다. 정의를 짓는 것은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임을 배웠습니다.
어필과 함께하게 되면서 ‘소수자의 확성기가 되겠다’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어필이 알려준 사랑이 몇억 광년도 가뿐히 달리는 빛처럼 번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생겼습니다. 답답한 버스에서 시원한 공기를 전해주던 창문의 작은 틈처럼, 이 노력이 누구에게는 숨통을 트이게 할 중요한 균열이길 희망합니다. 그렇게 틈을 넓히기 위해 자꾸 벽을 두드리겠습니다. 언젠가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만큼 허물어져 더이상 틈이 아닌 ‘문’이라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문이 활짝 열린 장벽 없는 세상을 감히 상상해 봅니다.
오늘도 버스를 타고 어필로 향합니다.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구석지고 퀴퀴한 곳에 빛을 들이는, 틈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볕 들지 않는 곳이 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어필의 걸음에 발맞추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1기 미디어 인턴 임소이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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