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은 3월 29일 (목) 아침 9시 반부터 열린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 및 노동권 책임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였습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국제노총에서 주최한 이 기자회견에는, 미얀마,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의 노총 및 시민 사회의 대표자들이 모여 한국 기업이 투자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고 있는 노동자 착취의 진상을 고발하고, 한국 정부에 그 책임을 촉구하였습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신(新)남방정책이 – 한국과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간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여 주변 강대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 (네이버 지식백과) – 주목받고 있는 현재, 해외진출 기업들의 노동권 탄압 현황을 고발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유의미한 자리였습니다. 아래에서는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사례 몇 가지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미얀마
미얀마에서는 한국기업이 임금 체불, 강제적인 초과근무 (보수 미지급), 사회보장급여 미지급, 열악한 근로환경(조명 부실, 화장실 등 위생 불결)을 비롯하여 유급휴가를 지불하지 않는 크고 작은 노동권 침해가 만연해있다고 합니다. 미얀마에서는 2012년부터 이런 이슈들에 대해 문제제기가 되어 왔고, 최근에 마련된 분쟁 해결 절차인 국내 노사분규위원회에 따라 해결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근로자들이 노동권에 대해 알지 못하고 제대로 주장을 하지 못하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해서 부당해고 사례도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실례로 지난 3월에 양말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노동 권리를 주장하여 노사 간 협상이 진행되었는데, 협상 결과 무려 76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는 통보를 받았고, 앞으로도 이런 해고를 진행하겠다고 사측에서 밝혔다고 합니다. 다른 공장에서는 두 명의 노조간부들이 정당한 근거 없이 해고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부당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서 미얀마 노동청에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에 대한 벌금이 가벼워서 회사에서는 이들을 복직을 시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노총에서 온 에드워드 마팜은 한국 의료, 전자 제품 기업 임원진과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강조하였습니다. 한국 기업의 임원진이 노조와의 협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고, 이에 인도네시아 노조가 한국 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리고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사관에서는 이들과 면담 하고 한국 정부 측에 전달을 약속하지만, 뚜렷한 후속조치와 진전사항이 없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에 한국 대사관에 노무관을 파견하고 이의 중재역할이 강화되어야 함을 촉구하였습니다.
캄보디아
캄보디아 노총은 의류공장 ‘가원’의 대대적인 임금체불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가원은 2012년, 두 달에 거쳐 임금을 체불하고 사회보장보험금 명목으로 급여를 차감하였으나 이것을 사회보장보험으로 지급하지 않았습으며, 마찬가지로 임금에서 차감한 노조 조합비 또한 노조에 지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노조활동으로 인하여 588명에 달하는 근로자를 해고시킨 일들을 언급하며, 이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한국 사용자 측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야 함을 촉구하였습니다.
베트남
베트남의 NGO의 연구원은 한국과 베트남의 긴밀한 무역관계를 언급하며,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근로 환경이 매우 불안정함을 지적하였습니다. 한국 기업에서의 노동 강도와 시간은 높은 데에 비해서 임금은 현저히 낮고, 고용 계약을 준수하지 않고 사회보장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난 1월부터 한국인 세 명의 사용자가 노동자 1,000명의 월급을 지불하지 않고 야반도주 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NGO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필리핀
현재 필리핀의 자유무역지대에는 3,0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습니다. 대부분이 전자, 에너지 부문에 진출에 있는데, 이곳에서도 부당해고와 같은 노동권 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필리핀 노총에서는 OECD에 가입한 한국 정부가 OED 가이드라인에 따라 설치된 NCP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이런 문제의 해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한국 NCP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필리핀의 노동자들이 NCP에 진정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국의 유명 대기업들의 공급 사슬(supply chain)의 한편에서는 계속해서 이러한 노동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정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트남 노조 대표께서는 해외투자가 필요한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정과, 실업률의 높은 상태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투자를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한국 기업이 물가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아세안 지역에 진출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지역에서는 노조 결속률이 낮으니, 이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100대 정부 과제를 제시하면서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에 비준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ILO는 전 세계 국가들로 하여금 협약에 서명하도록 하여 세계 노동자들의 인권을 수호하기를 촉구하는데, 한국 정부는 ILO의 189개 협약 중 단 29개만 비준한 상태입니다. 이 중 핵심 협약이라고 꼽히는 8개의 협약(아동 노동 철폐 등)에 한국은 단 4개의 협약만 비준한 상태입니다.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4개의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철폐 등으로, 우리가 상식적으로 들었을 때 민주사회의 노동자로서 당연한 권리로 인정 받아야할 사항들입니다.1 이러한 권리는 비단 한국에 있는 노동자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 나라인 아시아 국가 내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하면서, 기업이 좋은 노동을 위해 어떤 지향을 가져야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복합적인 이유로 한국 정부는 ILO 협약 비준을 미뤄왔지만, 신남방정책으로 호기롭게 아세안국가와의 관계 진전을 구상하는 지금이야말로 협약 비준을 포함한 실천적인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어필의 정신영 변호사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기대하는 정도의 실효성 있는 기업과 인권 NAP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tional Action Plan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를 수립 및 실천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였습니다. 더불어 NCP에 대해서도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NCP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라 설치된 기구로, 기업에 의한 인권, 노동, 환경 침해 사항이 발생하였을 때 문제제기를 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할 수 있도록 설치된 기구입니다.2 한국 NCP는 그동안 형식적인 운영으로 국제 사회와 시민 사회에서 비판을 받아왔는데, 정신영 변호사는 해외에서 한국기업에 의한 인권침해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NCP가 제대로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비판을 하였습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볼 때, 한국 정부는 선진국의 대열로 한 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듯 해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국경이라는 울타리를 내세워 한국 기업의 눈부신 성장에 가려져 있는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노동자들의 눈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노동권과 인권을 진정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질 때, 한국의 국제사회의 위상은 저절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물음과 과제들을 한국사회에 묵직하게 던진, 유익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어필 15기 인턴 정윤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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