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마지막 주 여러분을 찾아갈 ‘어필의 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은 통상적인 소식으로는 나누기 어려운 어필 크루들의 활동 그리고 그 속의 감정과 이야기들을 보다 많은 분들께 가깝게 전달하려는 기획입니다. 공감과 연대의 기회로 삼아 더 힘차게 어필의 활동을 응원 부탁드립니다. |
#1. 매일 같이 새벽녘 잠들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던 차, 난민 상담 요청에 관한 메일 중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메일을 몇 개 열어보았습니다. 아랍어로 쓰여진 메일을 확인하려면 우선 구글 번역기로 영어로 번역하게 해서 내용을 훑어봤는데, 몇 줄 되지 않는 메일이 었지만 첨부된 사진과 내용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우선, 첨부된 법원서류의 사건번호를 보고 검색을 해보니 이미 본인 소송으로 변론 종결된 사건, 판결 선고는 일주일 뒤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상담을 통해 조력할지 여부를 결정해야하는데, 아랍어 통역 연구원의 일정을 조정해도 시간이 너무나 빠듯했습니다.
우선, 급한대로 최대한 영어를 단순하게 작성하여 아랍어로 번역한 후 메일을 보내 상황을 물어보았는데, 30분 후 곧장 긴 아랍어로 – 그것도 스마트폰으로 입력한 것 같은 – 답이 왔는데, 그 시간이 새벽 두 시 반이었습니다. 메일을 우선 번역해 내용을 확인하고, 저는 곧장 이틀 뒤로 삼십분의 시간을 만들어 내서 난민분을 만나기로 연락하였습니다.
#2. 난민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돕다보면 제 자신의 안온한 삶과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난민 N씨의 이야기도 그러했습니다. 여성인 N씨는 어린 시절 성년에 한 살 모자랐음에도 부모가 서류를 위조해 팔려가듯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가문은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이었고, 특히 시아주버님은 범죄에 연루된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N씨를 탐하던 시아주버님은 남편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새 수차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고, N씨는 해결방안이 없지만 시아주버님을 고소하고, 고소취하를 종용하는 무서운 협박을 받으며 남편과 함께 오히려 피해자임에도 머나먼 한국으로 피신해 난민신청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은 N씨를 구타하고, 학대하며 본국으로 돌아가자고 협박하였는데, 알고보니 남편과 시아주버님이 서로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되었으니 돌아가서 고소를 취하하자고. 도무지 그 인간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N씨가 거부하자, 남편은 뜨거운 물을 붓고, 구타하고, 심지어 어느날은 칼을 휘두르기도 하였습니다. 휘두른 칼을 잡다가 손에 심각한 자상을 입은 N씨가 병원에 실려갔는데, 남편은 수상히 여겨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에게 ‘요리하다 다친것이다’라고 설명을 하였다고 합니다. 응급한 수술을 마치고 일어나 보니, 자신에게 칼을 휘두른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미 출국한 상태였습니다. 개인의 인생도, 삶도 잃고, 아이들 마저 뺏긴 상태에서 손의 신경이 잘린채 깨어난 곳이 머나먼 타국의 병원.
#3. 변론이 재개될지 알 수 없었으나, 상담을 마치고 – 선고기일 4일 전이었습니다 – 급하게 변론을 재개해달라고 신청서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 소송으로 진행된 난민사건들은 현재의 구조상 100% 패소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난민 N씨가 변호사도 없이 판사에게 제출했던 손에서 피가 철철흐르는 사진, 누군가에게 심각하게 구타당하고 화상을 입은 사진, 의무기록등은, 설명이나 번역문이 없는 ‘참고자료’에 불과했고, ‘가정/친지간 폭력(Domestic Violence)’에 관한 정밀한 법리 설명이 없으면 어떤 판결이 기계적으로 선고될지 명확했습니다. 다행히 선고기일 이틀 전, 변론이 재개되었고 이후 N씨를 돕기 위한 소송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출입국 당국에서는 영혼 없는 서면으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예, 증거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 노력 없이는 그냥 참고자료 하나로 묻혀져버렸을 N씨의 고통어린 인생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입니다. 또 “고소했는데 오히려 피해자인 N씨가 도망간 이야기가, 오히려 범죄를 저질렀는데 시아주버니가 처벌받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상식에 어긋나 믿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아니오. 그건 소송수행자의 상식일 뿐, 한국과 전혀 다른 문화와 사법구조를 갖고 있는 N씨의 나라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심지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심지어, 수술에서 깨어나 아이들마저 사라진 것을 보고, 급히 아이들을 되찾겠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본국으로 돌아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올 수 밖에없었던 N씨의 사정은 전혀 모른채, “본국으로 다녀온 기록이 있으니 박해의 위험이 없는 강력한 증거라며” 회심의 카드처럼 출입국기록을 제출했습니다. 아니오. 그건 아이들을 찾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비행기에 올랐던 경험을 전혀 알지 못한 오해입니다.
#4. 활동을 하다 보면, 좋지 않은 결과에 낙담하는 때가 많지만 이렇게 “난민분들의 처절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되살려 드리기 위해 더 크게, 몸부림치며 외쳐야할 때”가 계속 다가옵니다. 우연히 N씨가 어필을 알아 연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겹쳐 있는 일들 속, 밀리다가 겨우 새벽녘 열어봤던 메일을 그때 열지 않았더라면, N씨가 새벽에 깨어서 제 메일에 답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N씨의 이야기는 건조한 서류더미 속, 아무도 듣지 않은 채 차갑게 사라졌을 것이고, 기계적 사법체계 안에서 추방을 앞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고통의 이야기와, 그것이 재현되지 않는 차가운 시스템 속,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은채 스러져갔을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더 노력을 기울일 뿐입니다.
아직 N씨의 소송은 끝나지 않았고 결과는 결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1차 수술만으로 해결되지 않아 손가락을 다 펼 수 없는 손을 펴보이며 남의 이야기처럼 덤덤히 인생의 이야기를 풀어갔던 N씨의 모습이 다시 떠오릅니다. 제가 평화와 행복을 선사할 수는 없지만, 모든 환대를 다하고, 고통의 기억을 끊고 위험이 도사린 곳으로 추방되지 않은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실 수 있게 노력해보려합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또, 놓친 연락이 없는지, 닿지 못한 이야기가 없는지 다시 메일함과 메신저들 사이를 누비고 읽어봅니다.
(어필 이일 변호사 작성)
관련 태그
관련 활동분야
관련 글
- 2020년 1월 31일
- 2020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