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지난 29일, “[사진잇슈] 답답함일까, 걱정일까..아프간 소녀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기자는 충북 진천군 공무원인재개발원에 머물고 있는 아프간 난민들을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망원렌즈로 몰래 촬영하였고, 모자이크도 없이 아동의 얼굴까지 전부 그대로 노출시켜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독자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한국일보는 30일 오후 급히 사진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힘든 현실을 눈물짓는 소녀 사진이 담고 있다고 판단, 이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요청하는 의미”였다며 “모자이크 처리할 경우 표현에 한계가 있는 점을 고려해 별도 처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의도가 아무리 좋았더라도 이번 보도는 난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위험한 보도였으며, 명백히 초상권과 사생활의 침해에 해당합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은 총강에서 “언론은 사진과 영상 보도에서도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명시하며, “공인이 아닌 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 정보 등 사생활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하려면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받을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5장 ‘이주민과 외국인 인권’에서는 “이주민을 한국의 관점이나 기준으로 평가해 구경거리로 만들거나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의 이번 보도가 ‘관심과 응원을 요청’하기 선한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신상을 노출해 위험을 초래한 결과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습니다. 뒤늦게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다고 해서, 망원렌즈를 사용해 불법적으로 초상권과 사생활을 침해한 잘못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신원이 노출되면 본국에 남은 가족들이 탈레반 정권의 공격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초상권 및 사생활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원 노출로 인해 박해 받을 가능성 때문에, 난민인권네트워크의 난민 보도 가이드라인은 난민 등 망명신청자에 관한 보도를 하게 될 때에는 “안전이 보장될 때에만 식별이 가능한 사진과 영상을 사용”하고, 사진 등의 촬영 및 사용에 대하여 “적극적인 수준의 동의”를 받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록 모자이크가 이루어진 지금도 당사자의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당사자로서는 여전히 신변 노출의 위험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 보도는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닌, 기자의 주관적인 관점만을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 이로써 아프간 난민들이 한낱 동정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난민과 망명신청자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했을 뿐 아니라, 기본적인 보도 윤리마저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국일보와 이번 보도의 기자 및 편집자는 혹여 독자의 ‘알 권리’를 주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소비적인 보도를 통해 충족시키려는 것을 ‘알 권리’라는 숭고한 가치로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공공의 이해와 관련되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헌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초상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고, 그것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법적으로 불법행위로 인정될 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아마 이 보도에 대한 비판이 이 정도로 거셀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한국일보의 이번 보도에는 하루 사이에 댓글이 1800여 개가 달렸습니다. 댓글의 대부분은 이번 보도의 행태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으며, ‘스토킹’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 시민의 의식 수준은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더 이상 ‘좋은 의도’나 ‘알 권리’를 보루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난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해 당사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킨 것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더라도 여전히 위험이 상존할 뿐 아니라 난민에 대해 단편적인 동정심만을 자극하는 이번 기사는 삭제되어야 합니다.
난민이든, 여성이든, 아동이든, 장애인이든,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각자의 일상을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그 일상의 틈을 망원렌즈로 뚫고 들어오는 것은 일상의 안온함을 해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카메라 렌즈를 두고 관찰자와 관찰 대상으로 구분되는 권력적이고 일방적인 관계, 당사자의 주체성과 삶은 지워지고 관찰자의 눈으로만 해석되는 방식과 그 결과물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맥락을 삭제하고 인간을 대상화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이에, 아래와 같이 요구합니다.
- 한국일보는 한국일보의 2021. 8. 29.자 보도 “[사진잇슈] 답답함일까, 걱정일까..아프간 소녀의 눈물”(서재훈 기자) 기사를 삭제하라.
- 한국일보는 보도윤리를 정면으로 위반한 이번 보도에 대하여 정식 사과문을 지면 및 홈페이지에 게재하라.
- 한국일보는 보도를 명목으로 초상권 및 사생활 침해가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라.
- 8. 31.
난민인권네트워크
[TFC(The First Contact for Refugee)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공익사단법인 정,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센터 드림(DREAM),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글로벌호프, 난민인권센터, 동두천난민공동체, 동작FM,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사단법인 두루, 서울온드림교육센터, 수원시글로벌청소년드림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 이주여성을위한문화경제공동체 에코팜므,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의정부 EXODUS, 이주민지원센터친구,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 재단법인 동천, 재단법인 화우공익재단,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참여연대, 파주 EXODUS, 한국이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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