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이란의 히잡시위와 난민에 관한 연극, ‘블라인드 러너’를 보고 왔습니다!

2024년 7월 23일

지난 7월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상연된 ‘블라인드 러너(Blind runner)’를 어필이 관람했습니다!

‘블라인드 러너’는 이란 출신 연출가 아미르 레자 쿠헤스타니의 작품으로 벨기에 쿤스테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고, 한국에서는 아시아 최초 상연으로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4’를 통해 상연되었습니다. 이번 한국 상연이 전석 매진이 될 만큼 엄청난 화제작이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 안수민 로스쿨 실무수습생과 박경은 인턴

연극의 배경이 된 이란의 ‘히잡 시위’에 대해 잠깐 알아볼까요?

이 작품은 이란 여성 기자인 닐루파 하메디의 실화에 기반해 있습니다. 하메디는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의 ‘도덕경찰’에게 가혹행위를 당해 사망한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의 사진을 본인의 SNS 계정에 올렸습니다. 이 사진은 온라인으로 확산되어 ‘여성, 생명, 자유’를 표어로 내건 2022년 이란 여성 인권·반체제 시위, 다른 이름으로는 ‘히잡 시위’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메디는 반역, 프로파간다 확산 등의 혐의로 17개월 간 구금되었고, 2023년에 1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현재 보석으로 풀려나 항소 중입니다.

2022년 시위는 종료되었지만, 2024년 현재 이란에서 히잡 단속은 강화될 전망입니다.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동차가 압수되고, 경찰들은 길거리에 서서 히잡 착용을 경고하고, 가게들은 손님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업정지를 받습니다. 현재 많은 여성은 이에 항의해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있지만, 히잡 단속을 강화하는 ‘순결과 히잡’ 법안이 통과를 예정하고 있어 해외 언론과 단체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줄거리

‘블라인드 러너’는 하메디와 유사한 사유로 구금된 여성 저널리스트와 그 남편이 주인공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매주 면회오며 곧 풀려날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구금기간이 길어지며 둘의 갈등은 깊어집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꼭 그래야만 했냐’고 원망을 내비치고, 아내 역시 갇혀 있는 상황을 답답해하며 자신을 탓하는 남편에게 울분을 토합니다.

전환점은 남편이 시위에서 눈을 잃은 시각 장애인 여성 파리싸의 가이드 러너로 파리의 달리기 대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찾아옵니다. 남편과 파리싸 사이에는 감정이 싹트고, 파리싸는 이란은 끔찍하다며 유럽에 같이 남자고 남편을 설득합니다. 그렇지만 파리싸와 남편은 파리에서 난민 신청을 하지 않고, 저항의 의미에서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38km의 해저터널을 밤새 달리기로 합니다. 이들은 터널을 다니는 기차 막차와 첫차 사이의 약 5시간을 온 힘을 다 해 달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첫차에 치여 즉사할 테니까요. 실제로 그 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향했던 많은 난민 신청자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확답을 주지 않은 채, 관객석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기차와 엄청난 경적소리와 함께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블라인드 러너’와 난민

운 좋게 쿠헤스타니 연출가의 GV에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가 있어 작품의 메시지, 연출 의도에 대해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난민과 관련해서 연출가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은 난민 문제를 지나치게 간단하게 생각해, 그 이면에 있는 복잡한 현실을 외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난민들은 다 종교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닌가라고 단순하게 취급하지만 (실제로 GV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한 기자가 그렇게 질문해 연출가께서 충격적이셨다고…)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극중 프랑스 대회 측은 파리싸에게 ‘용기의 메달’을 수여하고 싶어하는데, 파리싸는 ‘그들은 내 눈을 앗아간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그 총알을 팔았다’고 거절합니다. 연출가는 난민 수용국들이 사실은 난민문제의 원인에 기여했다는 현실을 외면하고자 우리는 이해하기 쉽고 팔기 쉬운 서사를 선택하지만, 자신은 ‘블라인드 러너’에서 이처럼 쉬운 서사를 피하고 복잡한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흑과 백으로 구분해 선인은 끝까지 선하길, 악인은 끝까지 악하길 바라며, 그 경계에 서 있는 ‘진짜 사람들’의 복잡한 이야기를 불편해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블라인드 러너’에는 ‘로맨틱하지 않은(unromantic)’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고 합니다.

감상평

[안수민] 연출가가 지적한 ‘난민 문제의 단순화’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자주 느끼게 되는 문제였습니다. 난민들은 본국에서 박해를 받다가 가족을 위해 기회의 땅으로 탈출한 불쌍한 자, 또는 돈을 벌고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국경을 침범한 범죄자, 둘 중 하나로 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로맨틱한’, 선과 악의 이야기를 극대화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고, 난민들은 통일된 집단이 아닌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람들입니다. 등장인물은 공통적으로 더 나은 미래와 자유를 위해 연극 내내 달립니다. 아내는 감옥 복도를 달리면서, 남편과 파리싸는 해저터널을 달리면서 부조리와 억압에 저항합니다. 난민들은 이들처럼 ‘비틀거리며’ 자유를 위해 달려온 일반인들이고, 각자의 복잡한 이야기를 전할 권리가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이번 관극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경은] 1달 전 막을 내린 제9회 난민영화제와 세종문화회관에서 각자의 행사에 대해 상호 홍보를 했었습니다. 이번 영화제는 최다 관객수를 돌파했고, 블라인드 러너 또한 전석 매진이었습니다. 한국 시민들의 난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아 활동가로서 내심 뭉클하고 감사합니다.

이 연극은 난민을 주제로 한 영화 로기완 등의 작품과 달리, 난민이 되기 전 그리고 제3국으로 도피하는 과정만 담아 신선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아내는 국가로부터 박해받은 후 피폐해져 갑니다. 상연 중 들리는 관객들의 깊은 한숨 그리고 배우들을 향해 몇 분 간 지속된 박수갈채는 한국 사회에 본 작품이 큰 울림을 줬다 믿어봅니다.

외부의 것에 자연스럽게 방어적인, 하지만 이제는 난민 수용이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어 이웃에서 난민을 자주 만나게 될, 한국 시민들이 이런 연극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난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 기회를 제공해주신 블라인드 러너 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최종수정일: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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