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후기(3.5기 성무현)

2013년 8월 15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

(인턴 3.5기 성무현)

(인턴 3.5기 성무현)

학교 취업 게시판에서 어필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난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데…난민을 도와주고는 싶지만, 여기에는 내 자리가 없겠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금융 관련 인턴을 준비하다가 문득 어필이 하는 일이 궁금해져서 머리도 식힐 겸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필의 활동을 하나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난민이라는 개념이 생소하였고 영어도 자신 없었지만, 어필의 상근변호사와 인턴들의 한결같은 표정을 보며 ‘끌림’을 느꼈습니다. ‘행복함’, 그리고 ‘따스함’. 그 묘한 끌림은 저로 하여금 ‘그래, 내가 그래도 정치외교를 전공하고 있는데 서류라도 한번 통과해보자’라는 마음을 가지게 하였고, 그로부터 한 달 동안 2012년 어필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던 모든 게시물을 정독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필이 보였고, 난민과 마주하는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턴이 되어 첫 출근 날부터 대략 보름간을 정장차림으로 출근하였습니다. 인턴이라고 하면 대개 정직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이 주가 되고, 엄격한 상하관계 하에서 수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변호사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장차림을 요구하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종철 변호사님과 함께 대전에 있는 이주인권연대 세미나에 참석한 이후부터 캐주얼로 복장을 바꾸었습니다. 당시에 멀리까지 변호사님과 함께 가게 되어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서울역에서 김 변호사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개량한복을 입고 오신 김 변호사님은, 세미나에 도착해서 저를 일일이 다른 분들께 인사시켜주시고 자신의 보조가 아닌 동료로서 저를 대해주셨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에 전처럼 사무실에서 경직적으로 일을 수행하지 않고 보다 자유롭고, 제 자신이 주가 되어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어필에서 하였던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하나 소개하자면, 전쟁의 공포를 피해서 한국으로 온 소말리아 소년 Y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맡았던 것입니다. 소말리아에서 구타를 당하여 치아가 많이 상하고, 늘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려서 정신적으로 많이 쇠약하였던 Y에게 접십자 병원에서 무료로 건강검진을 해주기로 하여 그와 병원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Y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이 ‘공부’이고 ‘안경’을 쓰고 싶지만, 쉽사리 부탁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안타까운 상황을 변호사님들과 나누었더니 변호사님께서 “Y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무현씨가 담당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하셔서 “제가 하기보다는 다른 분이 맡으시면 제가 보조 하는게 더 좋을 것 같아요”라고 거절의사를 밝히자 “어필에서는 누구나 다 팀장이에요, 무현씨 잘 하실거 같아요.”라고 격려해주시고 지지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Y를 소개하면서 그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그를 지원해 줄 단체를 수소문한 끝에 그를 위한 맞춤 안경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Y뿐만 아니라 라이베리아 소년병 출신 P군과의 만남 등을 통해 학교에서 정치외교학 전공을 하며 배울 수 없었던 국제분쟁의 참혹함과 난민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많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필에서의 인턴은, 제가 기여한 것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변호사님들은 제가 모셔야 할 상관이 아닌, 동료이자 멘토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인턴을 하였던 3기와 3.5기 인턴 분들은 나이와 무관하게 제게 깊은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매일 아침 사무실에서 인사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어필에서의 인턴을 통해서 ‘희생’을 배웠습니다. 정말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사는지를 보았던 일은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어필 사람들처럼 선한 영향력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추상적으로나마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2013년 새해를 앞두고 있고, 대학생활은 1년이 남았습니다. 책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어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약한 사람의 편에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선한 공부’, ‘선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대학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턴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최종수정일: 2022.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