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살롱드어필이 오랜만에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어필을 찾아주셨습니다. 반가운 얼굴도, 처음 뵙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인권에 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저희가 모신 초대손님은 수유너머N의 정정훈 연구원님입니다.
김종철 변호사는 젊은 학자들의 모임에 발제를 맡아 발표하러 갔다가 만난 인연이라며 정정훈 연구원님을 소개했습니다.
1. 인권이 그저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정 연구원님은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첫째. 인권은 중립적, 혹은 비정치적이어야 하지 않은가? 두째. 인권은 당위적인 것, 도덕적 규범과 같은 것이 아닌가? |
서구사상사에서 ‘인권’에 대한 개념적 비판이 많았으므로, 인권 개념이 가진 영향력이나 역할에 대해 냉소적이셨다던 정 연구원님이 생각을 달리하게된 계기는 바로 인권활동가들과의 만남이었다고 합니다. 용산참사현장, 평택 대추리, 강정마을, 밀양 등 첨예한 갈등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인권활동가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인권이 사실은 굉장히 전복적이고 급진적인 개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인권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2. 인간의 권리라는 말의 등장
인권, 즉 인간의 권리라는 이 말이 처음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시기였습니다. 정정훈 연구원님은 이 프랑스혁명을 인권혁명으로 명명하셨습니다. 인간의 권리라는 말에 프랑스혁명의 핵심 이념인 자유–평등–박애가 다 포함되기에, 인권이야말로 프랑스혁명의 근본정신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흔히들 프랑스혁명에 대해 근대를 여는 두 혁명 중 하나 (나머지 하나는 산업 혁명) 라고 설명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가지는 의미는 그 이상이며, 특히 국가의 출현 이후 사람들이 나눠갖는 권리의 체제, 어려운 말로 ‘권리의 역사적 배분 체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국가가 출현한 이후 약 만년간의 인간의 역사에서 프랑스혁명 이전까지는 이 권리의 배분이 신분제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신분제는 출생이 권리의 한계를 규정하는 제도이기에 혈통에 따라 권리의 정도를 제한하게 됩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은 그의 어머니가 종의 신분이었기 때문이죠. 한편, 우리는 흔히 사람들의 공동체가 가족에서부터 부족, 마을 등으로 점차 커져서 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고대 국가들을 보면, 국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제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처음부터 신분제였던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보는 그리스 아테네에도 노예가 존재했고, 여자들에게는 참정권이 허락되지 않았으니 평등한 다수의 시민이 통치한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체제 아래에서는 출생과 생물학적 조건들에 따라 어떤 사람은 권리를 많이 갖고, 어떤 사람은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후자의 삶은 어땠을까요? 드라마 ‘추노’에서 보면 양반들이 얼음을 먹겠다고 한겨울에 노비들을 한강에 얼음 캐러 보냅니다. 조선시대 뿐 아니라 이 때는 프랑스에서도 도시빈민들이나 농노들의 삶은 별반 다를바 없이 참담했습니다.
약 9700년간 이어져온 이러한 불평등한 권리의 배분체제를 뒤엎은게 바로 프랑스대혁명입니다. 1789년 8월에 혁명 지도부가 제창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모든 사람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귀족이든, 천민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 없이 말입니다. 즉, 권리의 보장을 ‘누구에게서 났느냐’가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에 둔 것입니다.
3. 공감, 인권의 필수 조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신분제를 갈아엎고, 타인에게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와 그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공감이 형성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동일시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동물이나 식물, 심지어는 잡초가 느끼는 고통에까지 공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특정한 사회적 조건에서는 공감의 능력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위의 ‘추노’의 예에서 과연 양반들이 노비들의 고통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요?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참 너무하다 싶지만, 노비들을 자신과는 다른 종류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공명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프랑스혁명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한 것은 지금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장 만 여년간 이어져온 권리의 배분체제를 누리고 살아온 기득권 세력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4. 인권과 근대 국가
프랑스대혁명 이후, 인권은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 원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당위와 현실은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인권이 국가의 중심사상이 된 것입니다. 정 연구원님은 인권이라는 이 혁명적인 개념에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인권의 보편성입니다. 인권의 핵심을 한 단어로 말하면 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즉, 개인의 수월성이나 고유성 등의 특징을 불문하고 사람들 간의 동일성에 기초해서 권리를 적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질이 더 뛰어나건 그렇지 않건 모든 이들이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인권의 절대성인데요, 인권이라는 이념이 유보되거나 제한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5. 이념으로서의 인권 vs. 현실에서의 인권
그러나 과연 현실적으로 인권이 무제한 적용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인간의 권리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자유를 예를 들어 봅시다. 세 살난 어린아이가 선풍기에 손가락을 집어 넣으려고 하는 순간, ‘이 아이에게는 신체의 자유가 있어’라는 생각으로 이대로 아이를 내버려 두어야 하나요? 대부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현실에서 인간의 권리가 무제한으로 적용되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도, 질서 있는 공존에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권리는 언제나 유보와 제한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인권의 무제한성이라는 이념이 현실의 법률, 제도, 관행들을 통과하며 제한되고 유보되고 자격화되는 것입니다.
이 강의의 토대가 된 정 연구원님의 저서 <<인권과 인권들>>(링크)은 인권의 이러한 두 측면을 잘 드러냅니다. 평등과 자유라는 인권의 이념은 대문자 인권/인권(HUMAN RIGHT)으로, 그리고 그 인권의 이념을 현실 속에 적용하여 구체화된 권리 형태로서의 인권은 소문자 인권/인권들(human rights)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6. 인권의 정치
이렇게 구체화된 형태의 인권들은 인권의 이념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모든 ‘인권들’은 평등과 자유에 제한을 가하며,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그렇기에 인권은 잠정적이며, 항상 변형 또는 개선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법이 인권을 보장하는 형식이라기보다 권리를 부여받을 자격을 제한하는 임의적인 조건이기에 이 한계선을 넓히고 재구성하는 노력들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바로 인권의 정치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권의 정치란, 인권의 이념 (대문자 인권)에 입각하여 현실의 구체화된 인권들 (소문자 인권)을 바꿔나가는 과정이며, 더 많은 평등과 자유를 담보하도록 끊임없이 현실의 권리들을 강화하는 활동입니다.
살롱드 어필에서 소개된 전반적인 ‘인권’ 개념 및 그 급진성에 더해, 시간부족으로 충분히 소개되지 못했던 책 후반부의 내용들 – 어필의 mandate와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 즉, 각론 부분을 책 내용을 아래에 요약하여 조금 더 소개해보겠습니다 🙂 |
7. 아렌트가 말하는 인권의 역설: 권리를 가질 권리를 박탈당한 난민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온 유대인입니다. 그는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 난민들의 현실에 대해 사유하며 인권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프랑스혁명은 근대국가 체계를 확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는데요, 이 근대적 국민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라는 개념은 권리의 문제에 있어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당시의 여러 유럽 국가들을 구성하는 국민들은 언어적, 문화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국가들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종족을 중심으로 문화적 통합을 시도했으며, 이는 주로 소수민족들을 나라에서 추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추방은 제 1,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본격화되었고, 이에 따라 대규모로 난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아렌트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난민들에 대해 “그들이 겪은 수난은 다른 집단들이 겪은 수난과는 다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잃은 것은 어떠한 특정한 권리가 아니라 ‘권리를 가질 권리’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근대 국민국가 체제 하에서는 국가 밖에 권리의 지대가 존재하지 않고, 국민의 권리를 잃어버린 난민들은‘권리를 가질 권리’를 상실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에서 폴리스(polis)라고 불렸던 정치적 활동의 공간, 즉 공론 영역을 강조한 철학자로서, 인간의 삶을 동물적 욕구만 있는 삶과 구별해주는 것이 ‘행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행위란 무엇보다 타인과 공존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나누고 함께 의사를 결정하는 정치적 활동입니다. 그렇다면 난민들은 ‘권리를 가질 권리’를 박탈당함으로서 국민국가에 참여할 자격, 즉 정치적 공동체라는 공론 영역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행위’의 조건을 박탈당한 사람들입니다. 아렌트는 이렇듯 인간적 삶의 조건을 박탈당한 난민들에게 인권은 무의미한 권리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8. 랑시에르의 대답
그러나 철학자 자끄 랑시에르는 아렌트의 이러한 인권에 대한 이해가 난민들을 자신이 처한 조건에 맞서 싸우고 극복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들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인권은 “자격있는 자들, 공동체에서 정당한 자기 몫이 있는 자들이 합의한 권리 분배에 저항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몫이 없는 자들, 자격 없는 자들의 권리”이기에 (난민들을 포함하여) 기존의 질서에서는 자신들의 정체를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인권이라는 이념을 활용하여 자신들도 평등한 권리의 주체이며 현재의 불평등한 질서가 부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필이 하는 일은 난민의 인권에 대한 랑시에르의 이해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국민인 사람과 국민이 아닌 사람들을 나누고 인권을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해주는 권리인 것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에 반기를 들고, 인권이 인간이라면 누구든 누려야할 권리라고 믿기에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속해있지 않은 난민들과 무국적자들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어필의 활동들이 인권의 혁명적이고 전복적인 특징에 맞닿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신 정정훈 연구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살롱드 어필 후기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도 살롱드어필에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살롱드 어필은 따뜻한 환대와 맛있는 다과와 함께합니다! ^0^
(7.5기 인턴 김하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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