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포스팅에 “매매춘”과 “사창가”라는 단어들을 사용하였다가 이일 변호사가 “성매매” 그리고 “성매매집결지”라는 표현으로 바꿔주셨는데요. 그 이유는 “매춘” 또는 “매매춘”은 남성을 은닉하고 여성에게 성매매책임을 돌리는 용어이고, 사창가의 “창” 역시 몸파는 여자 “창”이어서 마찬가지 뉘앙스의 정치적으로 편향된 용어였기 때문입니다. 평화학에 대해 더군다나 이러한 언어에 숨겨진 차별 그리고 폭력성을 조심하라고 하던 요한 갈텅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면서 그런 단어들을 썼다는것이 창피하면서 놀라웠습니다. 갈텅은 이렇게 언어안에 숨겨진 뜻 또한 폭력의 일종이라고 말했고 이러한 폭력을 “문화적 폭력” 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문화적 폭력”을 다룰 것인데요. 특히 언어에 포커스를 두겠지만, 갈텅이 정의한 “문화적 폭력”은 말 그대로 문화의 여러 측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갈텅이 예로 든 측면들은 종교, 이념, 언어, 예술, 경험과학 (empirical science), 형식과학 (formal science)등이 있습니다. |
1. 문화적 폭력의 정의
“문화의 측면, 종교, 이념, 언어, 예술, 경험과학, 형식과학 (우리의 존재의 상징적인 영역)이 사용되어 직접적 혹은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 시키는 경우”
이 정의에서 포커스해야할 단어는 “측면”인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로 ‘사창가’ / ‘매매춘’ 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한국어는 폭력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죠? 갈텅은 문화적폭력을 맞닥뜨렸을때 문화의 한 측면 (aspect of culture)이 폭력적인것으로 인식해야 하지 문화 전체 (entire culture)가 폭력적이라고 인식하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2. 언어를 통한 문화적 폭력의 Examples
2. 1. 1. Example 1 – Galtung
갈텅은 라틴어를 베이스로 두고있는 이탈리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그리고 영어는 인류 전체를 칭할때 여성은 보이지 않고 남성성만 들어가있는 차별적 단어를 쓰기때문에 여성들을 향한 언어를 통한 문화적 폭력의 일종이라고 말했습니다
2. 1. 2. Application:
“인류”의 영어 단어는 “mankind”입니다. 위에 설명한것처럼 단어 안에 “남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man”이 들어가 있습니다.
남성성만 들어가있는 “mankind”와 같은 단어들의 반복된 사용 -> 인류를 칭하는 단어에 남성을 칭하는 당하는 단어만 들어가있으니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이 무의식중 형셩 -> 성차별로 부터 시작된 여성을 향한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의 정당화 |
2. 2. 1. Example 2 – Martin Luther King Jr.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때 빠짐 없이 나오는 인물인 마틴루터킹주니어 또한 언어 안에 숨겨진 폭력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킹은 이러한 언어의 사용을 “문화적 살인” (cultural homicide)라고 말했습니다. “Where Do We Go From Here”이라는 연설에서 킹은 다음과 같은 언어의 문화적 폭력을 예로 들었습니다:
“Even semantics have conspired to make that which is black seem ugly and degrading. In Roget’s Thesaurus there are some 120 synonyms for blackness and at least sixty of them are offensive, such words as blot, soot, grim, devil, and foul. And there are some 134 synonyms for whiteness and are all favorable expressed in such words as purity, cleanliness, chastity, and innocence. A white lie is better than a black lie. The most degenerate member of a family is the “black sheep.” Ossie Davis has suggested that maybe the English language should be reconstructed so that teachers will not be forced to teach the Negro child sixty ways to despise himself, and thereby perpetuate his false sense of inferiority, and the white child 134 ways to adore himself, and thereby perpetuate his false sense of superiority. The tendency to ignore the Negro’s contribution to American life and strip him of his personhood is as old as the earliest history books and as contemporary as the morning’s newspaper.” |
위에 나온 연설 내용처럼 King은 검음 (blackness)에 120개의 부정적 동의어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얼룩 (blot), 암울함 (grim), 악마 (devil), 더러운 냄새/악취 (foul) 같은 부정적 단어들 모두 검음 (blackness)을 연상하게 하는 동의어 입니다. 한편 흰색 (whiteness)에는 135개의 긍정적 동의어가 있다고 합니다. 순수함 (purity), 청결 (cleanliness), 순결 (chastity) 그리고 순진함 (innocence)은 모두 흰색이 연상시키는 동의어들입니다. 사회 운동가, 작가, 배우 그리고 영화 감독으로써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던 Ossie Davis는 흑인 항생들이 검음과 연관된 부정적 아이디어를 갖고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열등의식을 갖고 백인 학생들은 흰색과 연관된 긍적적 아이디어를 갖고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며 우월의식을 갖지 않게 하기위해 영어가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2.2.2. Application:
더럽다/냄새난다 같은 “검음”의 부정적 동의어의 반복된 사용-> “검음”에서 더 나아가 흑인들은 더럽다/냄새난다 라는 편견이 무의식중 형성 -> 인종차별으로 부터 시작되는 흑인을 향한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의 정당화 |
Ossie Davis가 제안한것 처럼 언어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실현하기 굉장히 어려운 해결책인거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검음 그리고 흰색에 관련된 단어에 숨겨진 아이디어들을 조그만 더 생각해보고 우리 스스로 흑인 그리고 백인을 생각할때 혹시 이러한 단어들이 무의식중에 우리가 가지고있는 편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한번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편견들을 조금이나마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3. 문화적 폭력을 인식하는것은 왜 중요할까요?
정치학이 다루는 문제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수있습니다 – 힘의 사용 (the use of power)과 힘 사용의 정당화 (the legitimization of the use of power)가 그것입니다. 이러하듯 여러 형태를 띄는 폭력을 공부하는 평화학 또한 두가지 문제를 다룬다고 볼수있습니다 – 폭력의 사용 (the use of violence) 그리고 폭력의 사용의 정당화 (the legitimization of the use of violence)입니다.(Example의 application 참고).
지난번 포스팅에 언급되었던 직접적 폭력(direct violence)이 폭력의 사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문화적 폭력은 폭력사용의 정당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문화적 폭력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갈텅은 문화적 폭력이 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을 정당화 시키거나, 적어도 틀리지 않다고 느끼도록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직접적 폭력, 문화적 폭력 그리고 구조적 폭력은 서로가 서로를 지속 시키는 “violence triangle”을 만듭니다.
(Violence Triangle에서 직적접 폭력은 이벤트, 구조적 Up과 Down이 있는 프로세스, 그리고 문화적 폭력은 불변 (invariance)으로 보게되는데 구조적 폭력과 Violence Triangle에 대해서는 처음 언급하였는데 다음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설명 하도록 하겠습니다.)
4. 그렇다면, 어떻게 문화적 폭력에 대응해야 할까요? – Mahatma Gandhi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인권 문제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수 있도록 노력을 통해 인권감수성을 향상 할 수 있듯 조금만 노력하면 “언어감수성”을 키워 언어 뒤에 숨겨진 차별적 혹은 폭력적 아이디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직접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을 줄일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인권 그리고 비폭력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간디 또한 문화적 폭력에 대항 할때 문화를 싸우는 것보다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간디는 크게 두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목적과 수단의 통합 (unity-of-means-and-ends) 그리고 삶의 통합 (unity-of-life) 입니다.
4. 1. 목적과 수단의 통합 (unity-of-means-and-ends): 간디는 Machiavellian 원칙 중 하나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 (the ends justify the means)와 정 반대인 목적과 수단의 통합을 주장했는데요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수단이 나쁘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간디는 좋은 수단을 쓰면 좋은 목적이 달성될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pplication: 이 포스팅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간디가 말한 목적과 수단의 통합은 문화적 폭력의 한 측면인 경험과학 (empirical science)을 통한 폭력을 대응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을거 같습니다.
4. 2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산업주의의 “제단”에 희생된 사람들 (수단/means)을 통해 성장/자본주의 그리고 혁명/사회주의의 탄생을 보았습니다. 간디는 성장 그리고 혁명 같은 좋은 목적을 달성한 경험을 통해 , 이와 비슷한 목적을 달성 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희생이라는 좋지 않은 수단을 통해 달성한 목적이기 때문인거죠.
삶의 통합 (unity-of-life): 간디가 의미하는 삶의 통합이란 모든 생명체를 높임을 말합니다 (enhancing all life).
Application: 간디가 말한 삶의 통합은 포스팅에나온 언어를 통한 문화적폭력에 대응하는 것에 적용 시킬 수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혹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성별 , 피부색을 넘어 모든 생명체를 높이는 생각 그리고 행동을 한다면 언어를 통한 문화적 폭력을 효과적으로 대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 평화학 101- Part 2 였습니다.
(6기 인턴정자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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