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EM(아시아 유럽 미팅)에서는 인권을 주제로 연례 세미나를 주최해 왔는데 올해는 프라하에서 ‘국가, 지역,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주제로 2011. 11. 22. 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3명이 왔고(내년 아셈 인권 세미나는 서울에서 정보통신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열린다고 하네요), 시민사회에서는 휴먼 아시아의 서창록 교수님과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가 참석했습니다.
3박 4일 일정이지만 프라하가 너무 먼 곳이라 가고 오는데 이틀이 걸린데 비해, 회의는 정작 길지 않았습니다. 첫날 워킹그룹으로 나누어서 논의를 하고 그 다음날 전체 모임에서 리포팅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 전부였습니다.
가장 싼 비행기로 가느랴 프랑크푸르트에서 14시간을 기다렸다가 프라하 비행기를 탔는데, 주위의 호텔삯이 너무 비싸서 공항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돌아다니다 보니 앗 긴 의자 발견. 긴의자에 누워서 편안하게 하루밤을 지냈습니다. 나이 40에도 노숙이 가능하군요. ㅋㅋ
프라하에는 갓 태어난 딸과 아내와 함께 10년 전 왔던 적이 있습니다. 프라하에 온 첫날 딸 아이가 걸음마 했던 광장에도 가보고 몇 번이고 건넜던 카를 교도 다시갔습니다. 그리고 국립 갤러리에 가서 Joza Uprka라는 화가의 전시도 봤습니다.
저는 ‘지역 인권 메커니즘’이라는 워킹 그룹에 들어갔습니다. 다음의 6가지 큰 주제를 놓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참가자들이 논의를 했습니다. 1. 지역인권기구와 국제인권기구 사이의 코히어런스 제고, 2. 인권 메커니즘 이행, 3. 헌법적 권리와 조약상의 권리와의 관계 4. 인권 메커니즘에 대한 대중의 신뢰 증진 방안, 5. multi-stakesholders 접근 방식의 장점과 단점, 6.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파리 원칙의 개정 문제.
발언한 사람의 이름이나 출신국을 밝히지 않고 서로 의견을 비공개로 모으는 절차는 마음에 들었는데, 아젠다가 너무 유럽 중심으로 세팅이 되어 있네요. 아시아에서의 인권메커니즘의 구상 혹은 AICHR 개혁에 대해서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워킹 그룹에서 기억에 남는 논의 몇 가지만 소개할까 합니다. 국제 혹은 지역 인권 메커니즘의 이행은 국가의 reputation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국가별로 인권 상황 전반에 대해 등급을 메겨서 인권 메커니즘 이행을 담보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국가별 인권 상황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포괄적인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반론이 나왔습니다. 타당한 지적이지요. 등급은 물론이고 등급을 메기기 위한 지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념이 작동하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를 만들 수 없습니다. 따라서 등급을 포괄적으로 메기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권리별로 질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미국의프리덤 하우스에서 하는 국가별 등급은 매우 제국주의적이라고 하면서, 최근 Human Rights Quarterly에 소개된 OHCHR의 질적인 인권 지표 프로젝트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일본에서 온 참가자가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고 하며서 Human Righst Volunteers를 소개하네요. 수만명이 지역자치단체의 추천과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서 인권을 홍보한다고 하는데, 왠지 관변단체의 냄새가 나네요. 요즘에는 GONGO(govermental organized non-governmental organozation)라고 해서 실체는 정부의 agent인데 NGO를 참칭하고 다니는 단체들이 세계적으로도 많이 생겨 문제다 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multi-stakesholders 접근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변호사들이 많아서 그런지 먼저 multi-stakesholders의 의미가 무엇인지 서로 물어보네요. 제가 알기로는 stakesholder는 shareholder의 대항 개념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기업에서 주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주주 이외에도 이해관계인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면서 생긴 말인데 경영학 뿐 아니라 이제는 다른 영역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인권의 경우 UPR에서 볼 수 있다시피 국가뿐 아니라 시민단체, 피해자, 국가인권기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관여하는 multi-stakesholders 접근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됩니다. 어느 누구도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과 입장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실체적인 진실을 아는데 중요하므로 multi-stakesholders 접근 방식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GONGO들이 물을 흐리기도 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등 비효율적이 되기도 합니다.
유럽 인권 메커니즘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50년대의 유럽 인권 협약이 자유권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최근 포괄적인 권리를 담은 유럽 인권 헌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직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스트라스부르그의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유럽 인권 헌장을 원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위 헌장에서는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규정 뿐 아니라 인간복제와 장기매매를 금하는 규정도 있다고 합니다. 유럽인권 재판소 역시 사건 적체가 심한가 봅니다. 평균 2년이 걸린다고 하네요. 유럽 참석자들은 보충성의 원칙(subsidiarity)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국내 구제절차를 통해 먼저 구제를 받고 그래도 구제가 안 되는 경우 지역 인권 메커니즘으로 오라는 것이지요(원래 보충성의 원칙은 국가와 교회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 내지 개인과의 관계에 관한 카톨릭 교회의 교리 였는데, 유엔 뿐 아니라 유럽 인권 메커니즘에도 많이 반영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열띤 토론이 있었던 주제가 헌법상의 권리와 국제 내지 지역 인권 협약상의 권리의 관계였습니다. 한국은 국제 협약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해석상 헌법과 동일한 효력은 아니고 법률의 지위에 있다고 해석을 합니다. 따라서 협약상 인정되는 권리가 헌법상 권리가 아닐 경우에는 헌법상 권리가 누리는 지위(예를 들어 헌법상 권리를 제한할 때 반드시 엄격한 일정 요건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 헌법은 권리의 주체를 ‘인간’이 아닌 ‘국민’이라고 규정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스페인과 남미의 국가들은 세계인권선언과 다른 인권 협약들이 헌법상의 권리와 동등하거나 더 상위에 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의 경우에도 헌법에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헌법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인권 협약이 헌법상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흔히 드는 이론이 국가 주권론입니다. 국가들이 이 주권론을 이유로 국제인권 규범의 이행과 적용을 회피해 왔는데요. 하지만 국가만 주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인(외국인이든, 국민이든)도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개인의 주권과 국가의 주권은 병렬적으로 놓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19세기 말 네델란드의 철학자들이 국가, 교회, 시민사회, 개인 등은 나름의 주권을 가지고 있고 그 주권은 계급적이지 않고 병렬적이라고 하는 영역주권론이 생각이 납니다). 개인주권이론으로 국가주권론을 한계 짓고 국제인권 규범의 규범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뜸금 없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관련 태그
관련 글
- 2011년 11월 30일
- 2011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