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렉시트, 너마저…
영국 현지 시각 지난 달 23일, 전 세계를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브렉시트(Brexit, Britain+exit, 영국의 EU 탈퇴)가 영국 국민투표(Referendum)에서 가결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의 결과와 브렉시트를 반대했던 노동당 조 콕스(Joe Cox) 의원의 피살 사건 등으로 여론이 EU 잔류로 기울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51.9% 대 48.1%로 여론조사가 무색하게 브렉시트가 확정되었습니다.
투표 캠페인 기간부터 EU 잔류파(브렉시트 반대파)와 탈퇴파(브렉시트 찬성파)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EU 잔류를 호소하던 노동당 조 콕스 의원이 대낮에 “영국이 먼저다!”라고 외치는 괴한이 쏜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 정치권에서도 이전투구의 현장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영국의 보수당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분열했습니다. 2013년 선거 당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약속했던 보수당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 반대파로 돌아서 EU 잔류를 호소했는데, 이와 반대로 캐머런 전 총리의 오랜 친구이자 오랫동안 같은 정치적 행보를 걸어왔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을 비롯한 보수당 일부는 브렉시트를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언론에서는 브렉시트라는 현안을 차치하고서, 브렉시트 이슈가 마무리된 이후에 보수당은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하고 걱정 섞인 눈빛까지 보냈습니다.
그리고 브렉시트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EU 탈퇴파가 목청껏 주장했던 희망찬 구호들과 찬란한 미래는 탈퇴가 결정 되었음에도 생각만큼 큰 이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매우 적극적으로 브렉시트 캠페인을 이끌었던 정치인들의 말바꾸기가 비교적,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이민자를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겠다는 것이었다”, “EU 분담금 전액을 의료보험에 쓰겠다는 주장은 실수였다,” “브렉시트 이후에는 캐머런 총리가 정리할 줄 알았다” 등의 변명만이 가득했습니다. EU 탈퇴파의 장미빛 미래는 온데간데 없이, “EU란 무엇인가? (What is EU?)”라는 검색어가 구글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되어 해외 언론의 조소를 사기도 했습니다.
2. 브렉시트, 너는 왜…
그렇다면 영국은 도대체 왜 EU에서 탈퇴하고자 한 것이었을까요?
EU 잔류파와 탈퇴파의 주장 간에는 이민(immigration)과 EU 분담금이라는 크게 두 가지 핵심 논점이 있었습니다. 아니,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EU 탈퇴가 확정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영국은 아직도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을 구상하지 못하고 브렉시트라는 현안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브렉시트 자체를 복기해보면,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두 이민 혹은 난민이라는 위기상황을 EU가 효과적으로(회원국들이 만족할만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EU 분담금이라는 돈(경제)과 주권이라는 국가의 자존심에 관한 불만이 쌓였기 때문에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난민
브렉시트의 핵심 논점이었던 ‘이민 혹은 난민’은, 둘을 묶어서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브렉시트 논쟁에서 이민과 난민의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같은 궤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민자와 난민을 “우리나라에 와서 권리와 혜택만을 누리는 사람들”이라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브렉시트 논쟁에서 중심은 ‘이주노동자’라는 그림이었고 난민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EU 탈퇴 진영에서 인권문제 등으로 발목을 잡힐까 난민에 대해 그다지 크게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실제적으로 영국에서는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소위 EU의 ‘큰손’들이나 헝가리, 스웨덴 만큼 난민 문제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난민 문제를 EU 탈퇴 논리에 끌어오기엔 다른 유럽연합 내 강대국들에 비해 기여도가 한참 모자랐던 것입니다. 이전까지 EU 내에서의 영국의 국가규모를 고려했을 때 난민 문제에 있어서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졌어야 하는데, 영국은 항상 소극적이었습니다. 난민 문제로 영국의 EU 분담금이 올랐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주장은 뒤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민자
EU 탈퇴파 정치인들은 EU 역내 이동의 자유(Freedom of Movement)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서 일자리와 주택, 기타 사회 인프라들이 부족해졌다며 이민자들을 들어오게 한 EU를 탓하고 브렉시트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이민에 대한 EU 탈퇴파의 주장에는 몇 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발견됩니다. 실제로 아래 자료를 살펴보면 정작 EU 회원국 출신 이민자들은 전체 이민자의 절반 정도이고, 오히려 영국과 역사적으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 비 EU회원국에서 오는 이민자들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EU 회원국으로 이주해가는 사람들도 상당수입니다.
현재 영국 내에는 800만명의 이민자들이 있는데1, 탈퇴를 위한 EU와의 협상기간 2년 동안은 아마도 계속해서 EU 회원국과 비EU회원국들로부터 노동력이 유입될 것입니다. 즉 현상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막상 브렉시트를 통해서는 현재 존재하는 이민자들을 돌려보낼 수 있는 묘안도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당장 5년 정도 후의 증가는 막겠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만성적인 경제불황이 올 것이 분명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마치 EU를 탈퇴하기만 하면 영국 국민들에게 즉시 일자리가 생기고 집값이 내리며 길거리에서 이민자들이 줄어들 것처럼 주장해왔는데 실제로는 소설 속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EU 분담금
이민자 이슈만큼 중요했던 것이 EU 분담금 이슈였습니다. 브렉시트 찬성파의 주장으로는 2015년에만 EU 분담금으로 영국이 178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32조원(2015년 9월 환율 기준)에 육박하는 금액을 납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을 무안하게 만드는 사실이 있는데, 이는 영국이 분담금의 상당 부분(50억 파운드)을 환급받는다는 사실과, 영국이 EU로부터 영국 내 빈곤지역이나 과학기술 연구 등을 위해 40억 파운드 가량의 지원금을 받는다는 사실 입니다2. 이와 더불어 시민단체 지원금 등 기타 제반 사실들을 모두 고려하면 영국은 실제로는 대략 65억 파운드를 분담했습니다3. 즉 브렉시트 찬성 진영에서는 EU 분담금과 관련해서 거의 3배 정도를 뻥튀기 해 캠페인을 한 셈입니다. 영국은 한 해 65억 파운드, 대략 12조원 정도를 아끼기 위해 EU회원국들이라는 단일시장을 포기했는데, 과연 인구 6,500만의 섬나라 영국에게, 어디로 쓰일지 알 수 없는 65억 파운드가 5억 인구의 EU 단일시장이 주는 혜택보다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을까요?
3. 브렉시트, 너는 참…
물론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던 영국인들은 나름대로의 절박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대다수의 이주 노동자들과 직접 노동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그 절박함이 한층 더했을 것입니다. 영국 국민이 아닌 사람들은 그들이 왜 EU 회원국으로서의 이익을 포기하고 홀로 남기로 결정했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투표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촉진되었는가 하는 것은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일입니다.
EU 탈퇴론자 정치인들은 아름다운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는 아직도 미래에 남아있습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대표적인 브렉시트 찬성론자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했고, 극우정당 영국독립당의 당수인 나이젤 파라지도 돌연 사퇴하는 등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지르는 사람만 있고 치우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죠. 얼마 전 현실주의자로 평가받는 알려진 테레사 메이(Theresa May) 보수당 대표가 영국의 새로운 총리로 임명되긴 했습니다만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브렉시트는 또한 인종혐오적 프로파간다의 확성장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사회에나 내재되어 있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여론적 발판이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내에서는 인종관련 범죄가 급증했습니다. 브렉시트가 곧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닌데도 말입니다. 또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나이젤 파라지가 대표로 있던 영국독립당이 캠페인 포스터에서 “EU에서 벗어나 우리의 국경을 되찾아야 한다”라는 글씨와 함께 배경사진으로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국경에서 2015년에 찍힌 유색인종 난민들의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1930년대 당시 독일 나치가 인종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던 영상의 이미지와 너무 흡사해서,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4. 브렉시트, 넌 이제…
브렉시트가 확정된 직후, EU 회원국 정상들은 즉각적으로 사태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 답들에는 브렉시트가 이미 확정된 이상 EU의 힘으로 되돌릴 순 없고, 나가려면 빨리 나가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영국이 떠나게 된 이상 남아있는 다른 국가들의 결속이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것이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독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영국과의 EU 탈퇴 협상에서는 ‘체리피킹(Rosinen-Pickerei)’은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U 회원국과 비회원국 간에는 느낄 수 있는 확연한 차이가 있게 하겠다”라고 말하며 브렉시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즉 영국이 현재 노리고 있는 ‘이동의 자유는 받지 않되, 단일 시장에는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결코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단일 시장에의 접근과 노동과 자본의 이동의 자유는 한 묶음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은 EU와의 기존 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협상 기간 2년을 가지고 있습니다. EU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내보내고 싶겠지만 별다른 강제 수단이 없기 때문에 영국은 이 기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됐던 테레사 메이 총리도 이 기간을 영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EU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게 협상 주도권을 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10년 안팎으로 영국이 EU에 돌아와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의일 수도, 다른 국가의 요청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타의를 빙자한 자의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브렉시트 확정 직후 ‘Regrexit(Regret+exit,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라는 우스갯소리와 재투표를 위한 서명이 수백 만을 넘겼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재투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영국이 다시 돌아올 때에는 선진국의 위상에 더 걸맞는 합당한 공동 문제에 있어서의 해결자세와 좀더 신중한 의사결정을 하길 바랄 뿐입니다.
(11기 인턴 김태욱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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