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부터 26일까지 한국, 대만, 일본 그리고 홍콩의 단체들이 모여 그간의 활동을 공유하고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과 인권 관련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하는 워크샵이 열렸습니다. 워크샵은 작년에 열린 유엔 아시아 기업과 인권 포럼에서 탄생이 되었는데, 기업과 인권에 대한 논의가 유럽과 유럽의 영향력이 미치는 나라들을 중심에서 벗어나서 이루어질 수 없을까하는 고민에서 기획이 되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달리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아시아의 다른 여러 나라에 공급망이 있는 다국적기업의 본사가 있는 한국, 일본, 대만에서 기업에 의한 인권 환경 침해 피해자들을 조력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들이 모여 서로의 활동에 대해 공유하고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워크샵 1일차에는 비공개로 참가자들 간의 대화를 통해 각국의 상황을 상세히 공유하고, 역량강화를 위해 유럽에서 이미 제정된 인권환경실사법을 활용한 사례와 투자자 애드보커시에 대해 배웠으며, 2일차와 3일차는 공개 세션으로 국가별로 대표적인 악당 기업의 사례 공유 및 동아시아의 여러 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의류산업, 전자산업, 수산업에 대한 사례 공유, 그리고 기업과인권을 위한 정책의 틀이 되는 NAP 및 인권환경실사법 제정에 대한 현황 공유가 이루어졌습니다. 다음에는 공개 워크샵에서 공유된 사례 중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Case 1. 대만의 Formosa 그룹
대만 참가자들의 발제에서 가장 자주 들렸던 사례는 Formosa 그룹의 사례였습니다. Formosa는 대만의 대표적인 다국적기업으로 주로 플라스틱 제조를 하고 있으며 대만 국내에서 신규 공장에 대한 반대가 심하게 일어나자 베트남에 진출하여 철강 공장을 세웠습니다. 2016년 4월 6일, 베트남 Ha Tinh 지역 해안가에서 죽은 생선떼가 발견되는데 해안가를 따라 4월 내내 무더기로 죽은 생선떼가 발견되었고, 이 기간 생선을 먹은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4월 4일, Ha Tinh 지역의 어부가 바다에 있는 동안 누런색의 폐수가 바다에 유입되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Formosa 베트남 철강 공장에서 온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취재하는 기자에게 Formosa 베트남의 대표는 '철강산업이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어부들에게 직업을 바꾸기 위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나? 왜 아직도 생선을 잡고 있나? 철강과 생선 중 하나를 택해라'라는 말을 하여 베트남 민중들의 분노를 샀고, 이후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4월 말부터 Quang Binh 지역에서 시작된 시위는 북쪽의 수도 하노이와 남쪽의 대도시 호치민으로까지 번졌는데, 베트남 정부는 이에 대해 잔혹하게 진압을 하였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대중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잘못된 정보의 배포와 이를 틈탄 사회질서 교란을 막기’위해 집회를 금지하고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2016년 5월 15일, 5분간 행진을 하던 청년 20명이 경찰서에 구금이 되었으며, 2016년 6월 5일, 하노이에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경찰의 버스에 실려 경찰서로 이송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는데 2016년 7월 7일, Quang Binh 지역에서 생업이 어려워진 마을 사람들이 3000명 이상 모여 집회를 하였는데 군부대까지 투입이 되어 진압을 하였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후 Formosa 그룹은 베트남에서 5억 달러의 벌금을 선고 받고 베트남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며 사태가 마무리되는 듯 하였으나 이를 위해 애썼던 활동가들에 대한 가혹한 처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집회에서 사진을 찍거나 관련 소식을 인터넷에 올린 수많은 사람들은 주로 '선동' 및 '국가 전복 시도'로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들은 체포되고 조사를 받는 동안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후 베트남에서는 SNS에서 Formosa, 죽은 생선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메시지는 전송도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만의 인권환경활동가들은 2019년 6월, 원고 7847명을 조직하여 Formosa 본사가 있는 대만 법원에 생명권, 건강권, 노동권과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배상과 오염의 제거를 요구하기 위한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많은 다국적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송이 그렇듯, 소가 제기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만 법원에서 관할과 원고 위임의 유효성 확인에 대한 다툼이 계속되고 있어 본안에 대한 판단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Case 2. 일본의 Uniqlo와 HikVision
일본 참가자들의 발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는 Uniqlo의 공급망에서 발생한 노동권 침해에 대한 대응활동이었습니다. 일본의 Human Rights Now(HRN)는 2014년, 홍콩과 중국의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Uniqlo의 중국 공급망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벌 시스템 등 전형적인 sweatshop이라는 것을 폭로하였습니다. 이어 2015년에는 Uniqlo의 캄보디아 공급망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캄보디아의 공장이 중국보다도 열악할 뿐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100명 이상 해고하는 등 노동자에 대한 탄압도 심각하다는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지역과 국제 NGO들이 협력을 하여 Uniqlo에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였고 Uniqlo가 이를 수용하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한편, 일본의 HikVision은 감시카메라를 생산하는 기업인데, 이 기업의 중국 자회사에서 생산한 감시카메라가 중국의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인들을 감시하고 인권침해를 하는 데에 쓰이는 핵심적인 도구라는 것이 밝혀졌고, 이후 조사를 통해 다양한 일본의 기업들이 HikVision에 부품을 공급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HRN은 이후 부품 공급을 하는 일본 기업들과 일본의 본사에 신장지역에서의 상황에 대한 인지 여부와 기업의 대응 여부에 대한 질의를 보냈으나 기업들은 이를 잘 인지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두 가지 사례는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되는데 우선 Uniqlo의 경우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브랜드이면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이기때문에 대중 캠페인이 보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감시카메라의 경우 브랜드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다 외부 압력이 효과가 적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차이로는 Uniqlo 캠페인은 현장 노동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이들의 상황이 반영된 캠페인이었지만, HikVision의 경우 현장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적고 오히려 기업에게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협상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사실 Uniqlo에 대한 캠페인의 성공을 이끌어낸 데에는 헌신적인 현장 활동가들의 기여가 중요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 공급망 조사 시에는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어려워 홍콩의 활동가들이 공장에 위장 취업까지 하여 공장 내부의 노동 조건을 철저하게 조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홍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시민단체의 활동이 어려워진 지금, 중국 내 공급망에 대한 조사는 더 이상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실 중국 외에도 현장 접근이 어려운 국가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결국 세계가 공급망으로 촘촘히 이어진 오늘 날에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는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닌 언제든지 공모자가 될 수 있는 사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Case 3. 동아시아 수산업에서의 강제노동
한국과 대만 그리고 일본은 모두 수산물을 많이 소비하기도 하고 생산하기도 합니다. 특히 세 국가 모두 원양어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데, 원양어업은 강제노동의 위험이 높은 산업으로 각 나라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해온 활동들을 공유하였습니다. 대만에서는 선원 당사자들이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통신권(right to wifi)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올 초부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통신권이 중요한 것은 원양어업의 특성에서 기인하는데, 선원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의 시간동안 먼 바다에서 조업을 하면서 외부세계와 차단되는데 이는 선원들의 다른 권리 침해의 원인이 됩니다. 선원들의 급여는 본국의 가족들에게 송금이 되는데 통신이 되지 않으면 가족들과 연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도 확인이 되지 않고, 많은 경우에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본국에 돌아가서야 알게되기도 합니다. 또한 선상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외부와 접속할 방법이 없다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가족들과 헤어져서 연락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리적 고독감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right to wifi는 선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핵심적인 권리인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원양어선에서의 가혹한 노동조건과 초저임금,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작년 미국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이 2등급으로 강등된 이후,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의 개선책에 대한 실효성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에서 관련 정책 개선을 위해 활용한 여러 메커니즘에 대해 공유를 하였는데,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 활용, 유엔 인권 메커니즘, 미 국무부 인신매매 보고서에 기여, 기업과의 대화 및 작년부터 애를 쓰고 있는 지역수산기구(RFMO)에서의 노동기준 채택 요구 등 다양한 활동에 대해 소개를 하였습니다. 마침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유엔 이주민 특보, 인종차별 특보, 노예제 특보와 인신매매 특보가 한국 정부에 보낸 편지가 공개되었는데 한국에서 원양어업에 만연한 강제노동과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처벌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주민들이 구제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 있는지 등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국적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보다는 외국 국적기에서 어획한 수산물을 수입하는 과정에 연루된 기업들을 조사하고 관여하는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세계 최대 수산물 수입국 중의 하나인데 2019년 태평양에서 선원들을 수장하고 가혹한 처우에 놓이게 한 것으로 문제가 된 Long Xing 629호와 그 선단의 어획물이 일본에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이에 일본에서는 일본의 수산물 수입 기업들에게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대해 대응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여러 압력으로 인하여 일본 내에도 수입금지 조치가 마련되었지만 대상 어종이 매우 적고, 수입금지 조치 판단 시에 선박에서 발생한 강제노동 및 인신매매 등은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또한 각 기업에서 마련하고 있는 정책은 자발적 수준에 그치고 있어 인권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21세기의 강리도를 그리기 위하여
워크샵 참여 전에는 동아시아 국가가 유사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 크게 보였는데 각국의 사례들과 대응 현황을 계속 듣다보니 각 나라의 맥락이 더 이해가 되면서 차이점도 상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 나라 모두 공통적으로 관심이 있던 사항도 있는데 바로 인권환경실사법 제정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대만에서는 그간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행동계획(NAP)를 통해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을 강화하려고 하였으나 잘 이루어지지 않아 법의 필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었고, 일본에서는 단체가 작성한 법안을 국회의원들과 논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이미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로 어찌보면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듯 했는데 대만과 일본에서는 한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각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입법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반가워했습니다. 유럽과 같은 공동의 정치적 경제적 단위는 없지만 이웃 나라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오며 서로의 행보를 주목하는 사이인 동아시아의 각국에서도 여러 소식을 부지런히 알리고 서로 독려할 필요가 있기에 보다 독창적으로 이런 일들을 구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크샵에 참가를 하는 동안 조선시대에 제작되었다는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떠올랐습니다. 지도의 정중앙에 명나라가 크게 위치하고 있고 그 오른쪽에 조선이 명나라보다는 작게 있지만 일본 보다는 크게 있고 다른 나라들은 적당한 크기로 배치가 되어 있는,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보면 헛웃음만 나오는 그런 지도이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결국 명나라 자리에 유럽과 미국을 배치하면 여전히 통용되는 지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주로 유럽과 미국의 소식이기 때문에 아시아의 이웃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은 잘 들을 수가 없다는 핑계도 대보지만 사실 일을 하면서도 유럽 등의 운동 성과를 위주로 살피고 활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까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크고 작은 성과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일간의 워크샵을 통해 대단한 일을 이뤄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지도에서 보이지 않았던 대만과 일본 그리고 홍콩의 여러 단체와 이들의 활동이 우리 눈에 보이게 되고 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와 우리의 활동이 보이게 되었다 되었다면 유의미한 시간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지도를 새롭게 그려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아보고 힘을 합쳐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신영 변호사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