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창(窓) 인터뷰: 3년차 난민 변호사의 속 이야기

2015년 3월 20일

추운 겨울을 뒤로하고 슬슬 따사로운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다가오는 봄을 미리 환영하며,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의 정기간행물 <로스쿨 창(窓)> 2015년 3-4월호 특별기고에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올해로 어필과 함께한 지 3년 차가 되는 김세진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난민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겪는 고민과 한국의 난민 문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난민 문제의 중요성 등 그 솔직한 속내를 공유합니다.

         

3년차 난민 변호사의 속 이야기   

#1.

장혜성 : 그래서 뭐 그게 증거라도 돼?

박수하 : 당신 변호사 맞아? 변호사는 피고인의 말을 제대로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장혜성 :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온통 유죄라는 증거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 증거를 하나라도 가지고 오던지!   

2013년에 방송되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 보셨어요? 속물 국선전담변호사 장혜성(이보영 역)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신비의 초능력 소년 박수하(이종석 역)를 만나며 진정한 변호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인데요. 위 대사는 제2화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엄청 찔렸습니다. 저도 난민분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말씀하신 것 이해는 되는데요, 본국에 계셨을 때 과거에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오셨다고 했는데요, 이 부분을 증명할 증거가 필요해요. 가족들이 협박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건 증거가 있나요?…”

어투만 조금 공손할 뿐이지, 결국엔 증거를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난민사건은 사실 증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난민들 대부분이 급박한 상황에서 탈출하듯이 본국을 떠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증거들을 챙겨서 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고려하여 난민소송에서는 형사사건의 ‘무죄추정의 원칙(In dubio pro reo)’와 유사하게 ‘유리한 해석 부여의 원칙(benefit of the doubt)’이라는 것이 있어서 신청인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달리 볼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심사관은 신청인에게 유리한 추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 원칙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난민에게 엄격히 증거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난민의 진술에 일관성도 있고, 출신국의 국가 정황을 아무리 잘 정리해서 제출해도 “서면은 많이 쓰셨는데 증거 있어요?”라고 판사님이 물으시면 힘이 풀립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재판 끝나고 난민에게 한다는 말이 고작 “…이거 증거 없을까요?…” 였던 것입니다.

증거 부족으로 최근 패소 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패소 된 사실과 그 이유를 알려 드리려, 안산에 계시는 의뢰인을 찾아갔습니다. 조그만 방 한칸 원룸에 엄마, 아빠, 초등학생 아이들 둘이 살고 있습니다. 작은 상위에 콩고식 도너츠와 차를 놓고, 드시라고 권유하십니다. 차근차근 판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 시작하니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님이 우십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괜찮은데 아이들은 어떡하냐고… 돌아가면 자신들은 죽는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자책을 하게 됩니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능력이 이것밖에 되질 않아서’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때 아내분이 ‘It’s not your fault’라고 하십니다…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데 애써 참습니다.   

#2.

저는 현재 공익법센터 어필(APIL)에서 상근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필은 이주자 중에서도 취약한 이주자 예를 들어 난민, 구금된 이주자, 인신매매피해자 및 무국적자를 옹호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어필에 들어오기 전에는 난민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로스쿨 입학 전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법률상담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주로 외국인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상담해 보았지 난민사건을 다뤄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난민에 특화되어 있는 어필의 맨데이트에 대해서 협소하다고 생각하여 내가 들어가면 새로운 분야를 한 번 개척해 볼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년간 어필에서 난민분야 실무를 접해보니 난민관련 제도 및 실무들을 개선해 나가는데 할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난민신청 접수 과정 하나만 보더라도, 공항이 엄연히 국내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난민심사자체에 회부조차 하지 않으려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장에 대항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난민을 송환대기실에 두고 감금해 두고 있으니 이를 풀어달라고 소송해야 하고, 또 본국에서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위명여권을 만들어서 온 난민신청자를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구금을 시켜버리니 강제퇴거 및 보호명령 취소소송을 해야하고… 난민신청 접수 단계 하나만 하더라도 아직 법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고 실무 관행 또한 고쳐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한국에서 난민이 난민으로 인정받는 벽은 높지만 한국 사회에서 난민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전혀 점하고 있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어 저 높은 벽을 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난민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구나 이렇게 정리가 되었고, 지금 하는 일에 더욱 동기가 부여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정도 동기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난민들을 향해 뜨거운 열정을 가지시고 한없이 겸손한 모습으로 일하시는 선배 변호사님들이나 활동가분들을 보면 항상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력도 부족하고, 마음도 부족한데 계속 난민판에 있는 것이 무슨 도움이냐’ 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난민소송 상담 도중 난민분이 무심코 “나에게 온 소망이 여기에 달려있어요” 라고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듣거나,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난 날짜를 또박또박 이야기 하시며 “나 풀려났어요!”하고 전화 주시는 난민의 목소리에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을 경험해 보니 포기가 안됩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는 난민판에 변호사의 손길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미력이나 힘을 보태며 실력도 마음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3.

지금까지 두서없이 난민판에서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 제 속 이야기를 말씀 드렸는데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마칠까합니다. 난민 이슈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난민법 제정 관련 기사에는 인종차별적 댓글이 많이 달립니다. ‘한국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왜 난민을 돕느냐’며 어필에 항의 전화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난민들이 처해있는 어려움 및 인권적 측면,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해 한국이 얻는 효과, 6.25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 현재의 유엔난민기구와 유사한 UN한국재건단(UN Korea Reconstruction Agency, UNKRA)이 설립되어 한국이 도움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현재 유엔난민기구 집행이사회 의장직 수임국이 바로 한국이라는 이야기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대부분 현재 또는 미래에 법률영역에서 종사하실 분들인만큼 기본적으로 한국이 1992년에 난민협약에 가입하였음을, 즉 난민들을 돕기로 국제적으로 약속하였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난민협약 및 고문방지 협약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민을 고문하고, 강제북송하여서 우리가 많이 분개하는데, 한국이 난민협약을 무시하고 난민들을 강제송환한다면 우리와 중국이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역지사지의 시각으로 바라봐 달라고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로스쿨에서 난민협약이나 난민법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는데요. 혹시라도 오늘 제 글을 읽으시면서 관심이 생기신 분이 계시다면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난민법 및 난민협약을 한 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조금 더 관심이 생기신 분은 공익법센터 어필 홈페이지를(www.apil.or.kr)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세진 변호사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다고 어머니께서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대꾸하는 동생은 저와 비교당하며 더 많이 혼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는… 천성적으로 무심하고, 게으릅니다. 타인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진심으로 마음쓰며 애쓰는 사람들을 보며 닮고 싶었습니다. 현재 (사)공익법센터 어필에서 닮고 싶은 동료들과 후원자 그리고 난민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9기 인턴 김수연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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