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의 상당 부분은 사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부푼 꿈을 가지고 한국 땅을 밟은 사람들입니다. 호텔이나 까페에서 노래 부르는 필리핀 가수들을 본 적이 있으실텐데요, 이들은 연예흥행비자인 E-6 비자로 입국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프로모터”라고 불리는 인력업체에 속아 결국에는 미군 부대 근처 같은 술집에서 성매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E-6로 한국에 입국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무대에 서기는커녕 성매매 산업으로 가게 될까요?
지난 3월 13일, 어필의 제안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필리핀 여성이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는 과정”에 대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주한 필리핀 대사관 소속 POLO (Philippine Overseas Labour Office: 필리핀 해외 노동청)에 계신 펠리시타 베이 노무관님께서 나와주셨습니다. 노무관 님께 따르면 필리핀 노동청에 해외취업자로 정식 등록된 후 출국한 사람, 곧 적법한 모든 절차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게 되는 사람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E-6 비자로 입국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 불균형이 E-6비자와 관련된 인신매 매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적법한 절차는 무엇인지, 그리고 불법 인력업체들이 이 절차를 어떻게 피하는 걸까요?우선 어떤 적법 과정을 통해 필리핀 여성들이 엔터테이너로 한국에 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필리핀 가수가 필요한 한국 호텔은 한국 인력 업체에게 필리핀 현지에서 필리핀 가수를 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한국 인력 업체는 필리핀 현지 인력 업체를 통해 호텔이 필요로 하는 필리핀 가수를 섭외하는데, 이 가수가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E-6 비자입니다.
E-6 비자는 주 필리핀 한국 대사관으로 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KIS)에서 발급하는 CCIV(Certificate for Confirmation of Visa Issuance: 사증발급확인증)가 필요하고, CCIV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예비 필리핀 가수들의 실력을 보장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승인 편지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가야 합니다. 한국에서 가수로 일하려고 하는 필리핀 여성이 자신이 노래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찍어서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보내면, 영상물등급위원회는 그 비디오를 보고 승인 여부를 결정한 후 승인서를 작성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E-6 비자만으로 한국행이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E-6 비자만 있으면 되지만, 필리핀에서 외국으로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POEA (Philippines Overseas Employment Administration: 필리핀 노동청)가 발급한 OEC (Overseas Employment Certificate: 해외취업증서)가 또한 필요합니다. 그리고 OEC를 받는 절차는 E-6를 받는 절차에 비해 훨씬 까다롭습니다.
필리핀 여성이 OEC를 발급 받기 위해서는 일단 필리핀 여성을 섭외한 필리핀 현지 인력업체가 POEA에 공식 인증을 받아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한 필리핀 대사관 POLO로부터 요청이 들어온 한국 내 호텔의 작업장 환경 등을 검증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검증 과정을 위해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 인력업체와 필리핀 인력업체 사이의 계약서 (2) 한국 인력업체와 필리핀 인력업체의 사업자 등록증 (3) 한국 인력업체와 필리핀 여성 사이의 표준 계약서 (4) 한국 인력업체와 필리핀 여성 사이의 실제 계약서 (5)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승인서 (6) 한국 호텔에서 한국의 인력 업체에게 보낸 인력 요청서 (예: H 호텔 3명의 싱어와 1명의 드러머를 구하고 있음) (7) 공연업소와 한국 인력업체 사이의 인력공급 계약서 (8) 호텔 등 공연업소의 관광 허가증 (9) 필리핀 인력업체의 POEA 라이센스 (10) 공연업소와 한국 인력 업체 사이의 계약서 (11) 한국의 인력 업체가 (필리핀 여성을 어떻게 처우 하겠다는 것을 적은)서약서.
한국 인력업체가 POLO로 부터 위 확인을 받으면, 그것을 필리핀 현지 인력업체에게 보내고, 현지 인력업체는 그것을 POEA에 제출하여 인증을 받게 됩니다. 이 모든 절차를 거쳐 필리핀 현지의 인력 업체를 통해 리크루팅 된 필리핀 여성은 POEA로 부터 OEC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POLO 승인을 거쳐 POEA에서 OEC 발급으로 파악된 필리핀 여성들과 E-6 비자를 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일치해야 하지만 그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
POEA | 865명 | 238명 | 286명 | |
POLO | 601명 | 323명 | 359명 | 277명 |
KIS | 2,505명 | 2,002명 | 1,317명 | 1,869명 |
POLO에서 승인을 받고, POEA에서 인증을 받은 사람이 승인과 인증을 받은 그 해에 반드시 한국에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 해마다 E-6비자를 소지하고 한국에 입국한 사람의 숫자가 POEA/POLO의 승인/인증 절차를 거친 사람의 숫자를 훨씬 초과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우선 근본적인 이유는 E-6 비자 발급과 OEC 발급 절차가 분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주 필리핀 한국 대사관은 OEC 발급 여부와 관계없이 E-6 비자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인신매매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POLO는 공연업소에 실사까지 가서 공연을 하기에 적합한지 여부를 파악한 후 OEC를 발급하지만, 정작 필리핀 여성이 한국에 입국하고 일하기 위해서 필요한 E-6 비자가 발급 되는 데에는 POLO의 확인, POEA의 승인, OEC 발급 여부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OEC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E-6 비자만 가지고는 필리핀에서 출국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E-6는 해외취업을 위한 비자라는 것을 필리핀 출입국공무원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법 출국은 이 절차의 허술함을 이용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필리핀 출입국관리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눈감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정교한 방법으로는 제3국을 이용하는 수법도 있습니다. 먼저 필리핀 여성이 주 필리핀 대사관으로 부터 E-6 비자를 받은 후에 여권에서 비자를 떼어냅니다. 그 후 홍콩 등 제3국을 일반 관광객으로 가장하여 방문하기 위해 필리핀을 출국한 후에, 홍콩에서는 떼어내었던 E-6 비자를 다시 여권에 붙이고 한국에 입국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날 대담 중에 주로 다뤄졌던 불법 입국 과정 이외에도 필리핀 여성들이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되는 연유는 많았습니다. 고용자 계약 파기로 인한 경우가 주를 이뤘습니다. 노무관님께서는 처음 계약과는 다르게 호텔 측에서 가수 활동 이외에 성매매를 요구 및 협박하는 경우, 정상적인 공연 업소에서 다른 성매매 장소로 강제 이동시켜버리는 경우 등을 예로 드셨습니다. 가수의 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는 필리핀 여성들에게는 비록 적법한 출입국 과정을 모든 거친 이후에도 이런 위험이 남아있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적법한 절차와 불법 경로로 한국에 들어온 필리핀 여성들 숫자의 현저한 차이가 보여주듯, 가장 큰 해결책 중 하나는 역시 불법 출국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OEC를 받지 않고 E-6비자만한국 입국을 하려는 필리핀 여성 (혹은 입국을 시키려는 한국/필리핀 인력업체)을 막는 것이지요. 구체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봐야 겠지만, E-6 비자 발급 이전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CCIV 발급 시 필리핀 POLO의 의견을 구한다던가, 한국 입국 시 E-6 비자를 제시하는 여성들에게 OEC 또한 제시하도록 요구한다던가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출입국 당국에서는 E-6의 경우만 또는 필리핀 여성들 경우에만 비자 발급 절차를 다르게 취급할 수는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수년 동안 E-6비자가 인신매매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면 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르게 취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5기 인턴 김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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