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목화강제노동보고서2012 (코튼캠페인+우즈벡독일인권포럼)

2012년 12월 23일

아래의 보고서는 지난 12월 13일(2012년) 한국을 방문해 우즈벡 목화 밭에서의 아동 노동과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링크)하고 한겨례 신문(링크)과도 인터뷰 한 바 있는 매튜 피셔 달리(코튼캠페인 코디네이터)가 9월에 우즈벡을 방문한 후에 우즈벡 독일 인권 포럼과 함께 우즈벡 강제 노동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영어원문을 뒤에 붙였습니다). 

이번 보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강제동원되는 사람들의 구성에 있어서….16세 미만의 아동을 대규모로 강제노동에 동원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 선생님들의 60%가 수확철인 9월부터 11월까지 목화밭에서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16세 미만의 아동은 여전히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린 아동은 줄어든 반면 강제로 노동에 동원되는 어른들과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숫자는 더 늘어났고, 많은 의료진이 수확철에 노동에 동원이 되어서 환자들이 진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1. 목화농장에서의 노동조건에 있어서…..하루 할당량이 60~80킬로그램이였고, 하루 10~12시간 노동한 대가로 굶주린 16살 아이는 보잘것없는 한끼 식사를 살 수 있는 20센트를 벌 수 있었습니다. 노동을 하는 동안 끔직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는데, 충분한 식수가 제공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인근 학교 강당 등에서 잠을 잤습니다.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매를 맞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의 경우 9월말부터 11월초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단 하루도 학교를 가서 공부를 한날이 없다고 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목화농장으로 가서 일을 하기 싫다면 USD200달러를 내든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든지 하라는 통보를 하였다고 합니다.매년, 목화농장에서 사망자가 있었지만, 올해, 가장 높은 사망률이 보고되었습니다. 
  1. 독립적인 모니터링에 대해서…..학생들은 본인들이 살았던 환경이나 일하는 목화밭의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합니다.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경찰 초소도 세워졌습니다. ILO의 조사단은 여전히 입국이 금지되었고, 강제노동 현장을 조사했던 적지 않은 NGO 활동가들이 체포를 당하였습니다. 

2012 우즈벡 목화 조사 보고서

 

우즈벡-독일 인권 포럼

코튼 캠페인 운영 위원회

 

아동 노동 사용의 감소

 

이번 목화 추수 때는 전년도들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7월 달에 우즈벡 총리는 직접 학생들은 목화를 따러 내보내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것은 단지 이미 존재하는 아동노동법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 전에도 이런 비슷한 명령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되었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16세 미만인 아동들은 집단적으로는 목화농장으로 보내지지 않았고 여름에는 거의 모든 학교들의 문이 열려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즈벡의 어떤 지역들의 아이들은 몇 일 동안 목화농장에 보내져 목화를 수확해야 했다. 보통은 방과후 시간이었지만 어떤 곳은 학교시간 동안에도 보내졌다.

우즈벡에서 일어나는 아동노동의 강도를 측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수집한 믿을 수 있는 정보에 의하면, Kashkadaryo라는 지역에서는 최소 3개의 학교들이 학생들을 목화농장으로 보냈다 한다. Andijan 지역의 최소 2개의 학교는 9월말부터 1달 동안 5학년 이상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농장으로 몇 일간 보냈다. Tashkent과 Samarkand 지역의 아이들이 목화농장으로 보내졌지만 몇 일 뒤 다시 학교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되돌려 보낸 것은 지역 당국이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이들을 목화농장에 부당하게 노동을 시켰다는 것이 기자들과 인권보호운동가들에게 알려지고 나서야 그렇게 한 것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목화농장으로 일하러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취업률이 낮고 돈을 벌 수 있는 곳도 없는 지방에서는 가을 목화 추수 시절이 돈을 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이다. 특히 추수 초반에 목화의 가격이 가장 높을 때가 기회이다. 지역 주민들은 가족단위로 아이들과 함께 목화를 따러 나간다. 올 해에는 도시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목화를 국가가 지정한 가격보다 두 배로 매매를 할 수 있었다.

학교와 관련해서는, 선생님들은 항상 무상으로 노동을 해야 했다. 올해는 단체로 목화를 따야 했고 약 60%의 선생님들은 강제로 노동을 해야 했다. 학교는 열려있지만, 선생님들의 수가 부족해 교실에 학생수는 늘고 수업시간은 짧아지거나 아예 취소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학원, 고등학교, 대학들은 말할 것 없이 다 닫았다.

 

성인 노동 동원의 증가

대체로 성인들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 것은 바뀐 것이 없었고, 결국 노동을 하는 인구가 아동에서 성인으로 기울었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아동들을 노동시키지 않고 부족한 인력을 성인, 그리고 고등학생, 대학생들로 대체를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 사용된 인력의 수는 전년도들보다 높아졌다.

성인들에 대한 대규모 노동 동원은 빠르면 9월 3일부터 시작됐다. 각 단체에서는 약 16%의 직원들을 돌아가며 2-3주씩 목화농장으로 보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한 팀이 농장에서 돌아오면 두 번째 팀이 보내지곤 했다. 개인회사와 국가조직들이 수확해야 할 할당량은 정부에서 정했다.

만약 시민이 목화 추수에서 배제되고 싶다면 미화로 약 200달러를 내야 했다. 우즈벡에서는 이 돈은 보통사람의 평균 월급과 같은 액수이다. 이 돈은 (대신) 일할 사람을 고용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확인 할 수 있는 회계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올해 공무원들, 개인 사업가들과 학생들에게서 갈취된 돈의 양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도시에서 보내진 성인들은 할당량에 따라 60~80kg의 목화 솜을 따야 했다. 하루 업무는 힘들었다. 오전 4:30-5:00 기상을 해서 오후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했다. 일군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일군에게 목화를 구입 해야 했다. 구입할 돈이 없다면, 그 액수를 월급에서 깎아냈다. 소속 회사의 규모가 크고 직원이 많다면 어떠한 이유로 (아팠거나 어린 아이들이 있어) 농장에 나가지 못한 직원으로부터 돈으로 받아냈고, 소속 회사의 규모가 작다면 채우지 못한 양은 일군들이 보상해야 했다.

전국의 의료진들도 대규모로 그리고 강제로 목화 농장으로 보내져 시급한 병원 진료가 밀리는 일이 있었다. Tashkent의 병원들과 의료 클리닉에서만 11,000명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멀게는 Jizzak지역의 Arnasay의 농장으로 보내졌다. Tashkent 클리닉의 직원과 인터뷰를 한 결과, 거의 15%의 직원들이 목화농장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한 경우에는 환자가 너무 심하게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담당의사가 목화밭으로 보내져 있었다. 밭에 있는 의사에게 전화해 통화로 진료를 받아야 했다. Bukahra에서 인터뷰한 의사가 말하기로 대규모 인력 동원이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일어났고 전국에서 다 그러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일반 시민들을 인터뷰했을 때 몇 사람들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목화밭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되돌아왔다고 한다.

기막힌 사실 하나는, 이번 해 목화 수확은 그 어떤 해보다도 더 낮은 지원금으로, 더 빠른 시간 내에 진행이 됐다. 목화 농장에 보내진 성인들은 수확한 목화 솜에 대한 대가를 지불 받지 못했다,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상황이다. 성인들은 농장에 가서 목화를 따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심해,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이 더 이상 농장에 보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 대한 노동 착취의 증가

관찰해본 결과,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노동에 동원되는 수가 증가했다. 보통 16-18세 사이인 고등학생들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확 때는 조금의 임금이 주어졌다. 그리고 노예처럼 잡혀 일하러 온 사람들, 나이가 어리든 많든, 식사비는 전부 본인 부담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 식비를 벌려면 35kg의 목화 솜을 따야 한다고 통보 받았다. 만약, 학생이 정해진 솜의 양을 수확한다면 (평균 60kg), 추가로 딴 35kg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하루 종일 노동한 대가로 굶주린 16살 아이는 보잘것없는 한끼 식사를 살 수 있는 20센트를 버는 것이다. 

우리가 인터뷰한 아이들은 끔직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고 말한다. 그 아이들에게 충분한 식수가 제공되지 않았다. 인근 학교 강당들, 극장들과 행정실에서 잠을 잤다. 바닥에서 자야 했고, 하루에 10-12시간씩 노동을 했고, 몇몇 아이들은 하루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매를 맞기도 했다고 한다.

9월말부터 11월초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단 하루도 학교를 가서 공부를 한날이 없다. 첫날에는 거의 모든 학교들이 학생들을 목화밭으로 보낼 준비를 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목화농장으로 가서 일을 하기 싫다면 USD200달러를 내든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든지 하라는 통보를 하였다.

항상 그랬듯이, 당국은 공무원들과 학생들이 노동을 했다는 것이 기록에 남지 않도록 조심을 하였다. 학생들은 본인들이 살았던 환경이나 일하는 목화밭의 사진을 찍는 것이 금지되었다. 우리가 그 환경을 관찰 했을 때 아이들이 일하는 목화밭을 순찰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경찰 초소도 세워졌다.

매년, 목화농장에서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올해, 가장 높은 사망률이 보고되었다. 우리가 아는 사건만 해도 7건, 그 중 5명이 고등학생들이다. UGF(우즈벡 독일 인권 포럼)는 지금 이 사망 사건들을 보도하기 위한 자료들을 준비 중이다.

 

독립적인 모니터링의 부재

우즈벡 정부는 ILO(국제노동기구)를 2012 목화 수확을 모니터링 하는데 초청을 하지 않았다. 2009년도부터 ILO는 우즈벡 정부에게 계속되는 강제 아동과 성인 노동 사용에 대한 노동자, 사용인, 시민사회의 보고에 대해 응답하라고 재촉했다. 2010년부터 ILO의 삼자 감독 기구(ILO tripartite supervisory body )는 목화 추수 시기에 제한 받지 않은 고위급 삼자 조사를 진행하라고 우즈베키스탄 정부에게 요구해왔다.  2012년에는 ILO가 우즈벡 정부에게 ILO 기술팀을 동원해서 추수 시기를 모니터 할 수 있도록 첫걸음을 내디뎌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우즈벡 정부는 변함없이 ILO의 접근을 허가해주지 않고 있다.

우즈벡 정부는 계속해서 2012 목화추수를 모니터 하려 하는 시민들을 괴롭히고, 위협하고 있다. 농장들은 경찰의 감시하에 있었다. 우즈벡 인권사회(Human Rights Society of Uzbekistan, HRSU) 라는 단체의  활동가인Gulshan Karaeva는 또 다시 전년도들처럼 목화수확에 대한 보도를 막기 위해 9월 27일 ‘명예 훼손 죄’라는 불분명한 이유로 체포되었다.  우즈벡 독립 인권 기구(Independent Human Rights Organization of Uzbekistan)의 Uktam Paraev도 9월30일 체포되었다.  10월20일에는 우즈벡 인권연대(Human Rights Alliance of Uzbekistan, HRAU)의 활동가들은  Kashkadarya지역에서 어린아이들이 목화를 따는 현장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강제로 외부에 나타나지 못하였다. 우즈벡의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인 Uztelecom은 우주벡 사람들이 인터넷 검열을 벗어나 www.cottoncampaign.org같은 사이트들을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인 웹 프록시 막아버리기도 하였다.

Uzb-Force Labour-Report-UGF-2012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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