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필, 세계를 선물 받다: 첫 번역자원봉사자 오리엔테이션
2012.04.13.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s of my world. – Ludwig Wittgenstein
내 언어의 한계는 곧 내 세계의 한계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전 세계의 난민,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 다국적 기업 혹은 독재 정권의 유린 아래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일하는 저희 어필이 지각하고 활동하는 세계도 저희가 지각하고 올바르게 사유할 수 있는 언어의 범주에 국한될 수밖에 없기에, 주요 외국어들에 능통한 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저희는 혹시라도 반응이 미진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으로 번역자원봉사자 분들을 모집했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정말 다양하고도 많은 인재들께서 저희 어필을 위해 기꺼이 번역봉사를 해주시겠다고 연락하셨습니다! 저희는 이 훌륭한 분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또 얼굴을 마주대하고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봉사 오리엔테이션 자리를 마련하여 국내에 계신 자원봉사자 두 분을 모시고 회의실에서 점심모임 겸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였습니다.
일본어 통번역 담당 유영학 씨
君の胸から出たものでなければ、人の胸を惹きつけることはできない。
그대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타인의 가슴을 끌어당길 수 없다.
(일본어로 번역된 괴테의 ‘파우스트’)
한일 공동 이공계 국비유학생 출신자로서 일본에서 학부과정을 수학한 후, 이제 한국에서 통번역으로 병역의무를 모두 이행하는대로 미국 대학원에서 인간수명에 대한 연구를 심층적으로 진행하실 유영학 씨는 사실 어찌 보면 저희 어필의 활동과 큰 관련이 있지는 않은 전공과 진로를 확고히 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유영학 씨께서 해주시는 일본 판례 및 각종 국가정황정보 관련 기사 번역물들은 자원봉사시간이라는 대가성에 구애받지 않는 지고지순한 결과물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비단 동기의 순수성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에서 통번역을 하고 계신 만큼 번역의 질이 매우 높은 점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희 어필을 감동케 한건! 바로 이번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군인의 피 같은 휴가(!)를 사용하여 시간을 내주셨다는 점입니다!
영어 통번역 담당 최고은 씨
Live with no time out. – Simone de Beauvoir
잠시도 쉬지 말고 살아가라. – 시몬 드 보부아르
뉴질랜드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모두 다닌 이후로 한국 국내 대기업, 호주․뉴질랜드 교민 분들의 기업 등지에서 RA, 에디터로 활약하시는 틈틈이 번역일도 해 오신 최고은 씨는 사실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올 땐 조금 쉬면서 재충전도 하고 앞으로의 삶의 태세도 가다듬을 생각으로 내한하셨으나, 무심코 펼쳐 읽은 성경 말씀이 ‘쉴 때도 너희의 안락만을 위해 쉬지는 말라’였고, 그 말씀에 폐부를 찔리셨다고 합니다. 보다 의미 있게, 내가 잘하는 작업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작업을 찾던 와중에 친우 분의 소개로 어필의 번역 자원봉사를 알게 되어 지원해주신 최고은 씨 덕분에 저희 어필은 실제로 번역가로서 돈을 벌 수 있는 프로급의 자원봉사자께서 아무런 자신을 위한 대가 요구 없이(이미 직장도 가지고 계시기에 자원봉사시간 인증서도 기념품으로 받아 가신다고 합니다. ^^;;) 제공해주시는 양질의 영문자료 한역본을 공급받으며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러시아어 통번역 담당을 해주실 분이 아직 없다는 저희의 말에 즉석에서 해줄만한 사람을 아니까 의향을 알아봐주겠다고 말씀해주셔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위 두 분을 모시고 저희는 어진이 변호사께서 만드신 PPT에 따라 간략하면서도 실속 있는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였습니다. 번역 자원봉사자 분들께서 번역해주시는 자료들이 실제 소장에 첨부되어 판사들이 읽을 자료로 법원에 제출된다는 대목에 이르자 최고은 씨께서 이미 잘 해주고 계시면서도 앞으로는 더 긴장해서 해야겠다고 하셔서 다함께 유쾌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저희 어필이 하는 일이 무엇이고, 그 직분들을 수행하는 데에 자원봉사자 분들의 번역물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실제 난민 분들이 모국에서 겪은 인생사와 한국에서의 곡절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슬픈지를 말씀드리는 와중에 자원봉사자 분들께서 저희의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표정을 발견하며 저희는 기뻤습니다.
당장 오늘만 해도 미얀마 카친 족 난민인정신청 관련 의견서를 기술해야 하는 저는 유영학 씨께서 번역해주셨던 일본의 미얀마 출신자 난민인정 판결 선례를 위시한 일본측 자료들을 살펴보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고은 씨께서 번역해주셨던 스리랑카 국가정황정보 자료들을 통해, 내전 종식 이후에도 갖은 인권 유린의 위협 아래 신음하고 있는 타밀어 사용자 겸 이슬람교도 분께서 한국 난민신청에 성공하도록 더 잘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위의 두 분 외에도 전 세계 각국에서 신청해주신 번역봉사자 분들을 통해 오늘도 어필은 보다 넓은 세계 속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며 더 많은 분들의 인권을 위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불어 담당자 분께서 더 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희끼리 기원한지 십분도 되지 않아 메일함을 열어보니 프랑스에서 5년 이상 수학하고 DELF C2를 취득한 최상급 불어 인재께서 번역봉사자 신청을 해주신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비정부기구는 기적의 연속 없이는 존립하기 힘들다고들 합니다. 이렇게 저희를 찾아주시는 봉사자 분들이야 말로, 저희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사람 형상의 ‘기적’이 아닐까 합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3기 인턴 강태승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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