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Watch는 전세계 130개 이상의 시민단체의 네트워크로 인권, 환경, 부패 등에 대해 기업 책무를 증진시키고 기업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이 구제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들의 연대체입니다. 올해로 창립 20년이 된 OECD Watch는 시민사회에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역량강화를 하고, NCP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NCP에 대한 분석과 전세계 시민사회에서 제출한 진정 사건을 공유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OECD Watch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관리하는 OECD RBC Working Group에서 기업대표와 노조대표와 함께 공식 이해관계자로 가이드라인 개정 논의 과정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OECD Watch에서는 회원 단체들이 함께 모이는 총회를 4년마다 개최하는데 정신영 변호사는 기업과인권 네트워크를 대표하여 2023년 1월 29일부터 2월 1일까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총회에 참가하였습니다. 브라질은 OECD에 가입절차를 밟고 있는데 브라질 시민사회는 브라질이 OECD 가입 과정을 통해서 인권 및 환경과 관련하여 OECD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OECD Watch에서는 브라질 시민사회에 힘을 실어주고,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OECD 가이드라인의 활용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총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상파울루에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특히 광산과 플랜테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다수 참가하였습니다.
끝나지 않는 착취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는 300년 이상 식민지 지배를 당하면서 주로는 유럽에 광물과 커피와 코코아, 설탕 등의 기호식품의 공급기지로 착취를 당한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여전히 수출을 위한 광물을 채굴하기 위한 광산과 가축의 먹이가 되는 콩, 팜유 등의 플랜테이션으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에콰도르의 경우 매주 바나나 700만 박스를 전세계에 수출을 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250,000명의 노동자들이 바나나 플랜테이션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총회에 참가한 노조활동가는 원래 바나나 플랜테이션에서 살충제를 뿌리는 일을 무려 비행기에서 했던 노동자였습니다. 그러나 보호장비 없이 살충제를 살포하다 몸이 아파졌고 이 때문에 노동조합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바나나 플랜테이션 뿐만이 아니라 브라질의 커피 플랜테이션에도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유독한 제초제와 살충제로 인한 건강 문제도 외에도 노예노동과 같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해 고발을 하였습니다.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매일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경우에는 최저임금에도 달하지 못하는 급여를 받는다고 합니다.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으며 이들은 사회보장에서도 제외가 되고,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 차별과 성추행에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 노조를 결사를 하면 노조활동가들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여 발제를 했던 커피 플랜테이션 노동자도 옥살이를 했었다고 합니다.
브라질 참가자 중에서는 2019년에 발생한 광산 댐 붕괴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당시 사고는 브라질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되었는데, 철광석 채굴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가두기 위한 댐이 붕괴되어 인근 마을이 유해 폐기물로 오염된 진흙에 모두 파묻혔고, 이로 인하여 270여명이 숨졌고 여전히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도 있습니다. 광산 폐기물로 인하여 인근 강과 토양이 오염되었고 삶의 터전을 떠나 강제이주를 당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주민들은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경우도 증가하였으며, 정부나 기업에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급된 한줌의 배상금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마을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고 합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착취 산업 외에도 새롭게 라틴아메리카를 괴롭히고 있는 산업이 있었는데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풍력발전이었습니다. 멕시코에는 전력시장 개방으로 인하여 해외 자본이 대거 들어와 풍력발전소를 앞다투어 건설하고 있는데, 특히 멕시코만에만 59개의 풍력발전소가 건설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토착민들이 땅을 빼앗기고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방에 들어오는 풍력발전소로 인한 비극을 목격해온 Hidalgo 커뮤니티는 프랑스 기업이 FPIC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프랑스 NCP에 진정을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기업은 여전히 해당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했고, 그 와중에 풍력발전에 찬성을 하는 사람들도 등장을 하고 반대를 하는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위협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NCP는 이러한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유럽 단체들의 도움으로 현재 프랑스 법원에서 사건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프랑스 법원은 풍력발전소 건설 집행정지 결정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프랑스 실사법에 따른 인권실사의무를 위반했는지에 대해 여전히 검토 중에 있다고 합니다.
NCP 진정 절차의 원칙과 현실
이러한 현실 세계의 사건들에 대해서 기업에게 문제제기를 하고 피해자들이 구제책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NCP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NCP 진정 절차는 1차평가, 조정, 최종성명서의 단계로 진행이 되는데 실제로 사건을 진행했던 단체들의 경험을 통해 각 단계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NCP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NCP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많은 나라에서 NCP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가시성(visibility)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습니다. NCP는 많은 경우에 기업들에게 피상적인 안내문을 제공하는 역할에만 머물러 있고, 피해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렵게 NCP를 찾아서 진정을 제기한다고 해도 문제가 산 넘어 산처럼 등장을 하는데, 1차 평가 단계에서의 접근성(accessibility)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많은 나라 참가자들의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NCP는 사법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 간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많은 경우에 1차 평가 단계에서 사건을 각하시키기 때문에 접근성이 보장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0년간 한국 NCP에 KTNC Watch가 주도적으로 진정을 제기하여 진행한 사건들 중 반 이상이 1차 평가에서 각하되었던 것을 공유하였습니다. 한국 NCP는 특히 기업이 직접적으로 주체가 되어 인권침해를 야기한(cause) 경우가 아니라 진출국의 국가가 인권침해를 하는 경우나 금융관계로 연루가 된 경우에 1차평가에서 모두 각하를 하였는데, 이는 OECD 가이드라인에서 기업이 인권침해에 기여하거나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한편 여러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은 증거를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증거를 요구하며 대화를 시작조차 못하게 하는 상황이 절차의 효용성을 심각히 저하시킨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조정 단계에서는 기업과 진정인이 합의를 이루어가야 하는데 힘의 불균형이 있는 상태에 대해 조정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조정하는 과정에서 힘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르웨이 NCP의 경우에는 진정인에게 통역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정보와 리소스가 넉넉하게 있는 기업과 권리 침해를 당한 진정인들 사이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NCP 진정을 이유로 오히려 인권옹호자들이 박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해 NCP에서도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최종성명서 단계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도 이행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행을 담보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나이지리아의 Aggah 커뮤니티는 강을 기반으로 소규모 농어업에 의존했던 커뮤니티인데 1960년대 이후, 이탈리아 석유회사가 석유채굴을 위해 강을 막은 이후로 홍수가 잦아져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에 대해 커뮤니티는 이탈리아 NCP에 진정을 제기하고 2019년도에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회사가 합의 내용을 불성실하게 이행하여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케이스를 공유하였습니다. 한편 프랑스 회사에서 카메룬에 팜유 플랜테이션을 개발하며 산림파괴와 인권침해를 하여 프랑스 NCP에 진정한 뒤 합의가 이루어진 사례도 있었는데 회사가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프랑스 시민단체가 합의 내용 불이행에 대해 계약 위반으로 법원에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케이스도 공유가 되었습니다.
OECD 가이드라인 개정 과정
이처럼 여러 나라에서 NCP를 통해 진정 절차를 진행했으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었는데, 여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도 12년만에 개정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개정안은 이미 작년부터 논의가 진행 중인데 시민사회와 기업에서 초안에 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출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에서는 개정될 가이드라인에 기후변화, 인권옹호자, 토지권, 토착민에 대한 논의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디지털, 조세 관련 부분이 뒤떨어져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인권 측면이 강조되도록 의견을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기업은 실사(due diligence)의 개념에 대해 공급망 전체가 아니라 특정 부분에만 해도 되는 개념으로 축소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에 OECD Watch에서는 여러 시민사회에 개정안이 인권과 환경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출할 것을 독려하기도 하였습니다.
NCP 외길을 떠나
NCP 진정 절차에 대한 의심은 한국 단체 뿐 아니라 전세계 단체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는데, 특히 미국 단체들의 경우 NCP를 거의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 단체들은 국내 법원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국내 법원이 어려운 경우에도 NCP가 아닌 국제금융기구의 진정절차를 활용하거나 투자자를 프레셔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법론을 커뮤니티에게 직접 교육하는 단체들도 많았는데 문제를 일으키는 사업의 투자자를 찾아내고 직접 국제금융기구에 진정을 제기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수출신용기구(Export Credit Agencies)에 대한 논의도 많이 이루어졌는데, 수출신용기구는 국제적인 대규모 개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거나 기업들이 민간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보증보험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수수출신용기구가 OECD 가이드라인의 적용을 받아야하는 상업활동을 하는 기관인지 아니면 공적기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한 입장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수출신용기구는 기업이 아닌 공적기구이기 때문에 OECD 가이드라인이 적용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반면, 공공기관으로서의 투명성을 요구하면 은행이기 때문에 비밀유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출신용기구는 프로젝트 지원시, OECD 가이드라인이 아니더라도 사업자가 사회환경기준에 대해 검토를 하도록 요구하는 공동이행방안(Common Approach)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이행방안의 대상이 되는 프로젝트는 지원 기간 및 금액과 사업 대상지역에 한계가 있어 소수의 특정 사업에만 적용이 되기 때문에 수출신용기구의 대부분의 사업에 적용되는 사회환경기준은 없는 상황입니다. 공동이행방안에 대해서도 현재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이 협상 과정 또한 시민사회의 참여가 공식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채 불투명하게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한편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기업 책무를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운동이 인권실사 의무화법 제정으로 힘이 실리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다른 형식의 법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역외관할권이 있는 기존의 반부패 법안의 모델을 따라 공급망 전반에 대해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실사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우리 몫의 싸움
기업과인권 네트워크에서도 NCP가 과연 효용성이 있는 절차인가에 대해서는 오래 고민을 해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NCP를 활용해왔습니다. 법원은 시간과 비용도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외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권위도 마찬가지로 외국에서 일어난 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해 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 일어난 기업의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유효한 구제절차가 되지 않습니다. 유엔 메커니즘은 인권전문가들이 검토를 하기 때문에 적절한 관점에서 결론이 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권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사건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NCP는 해외에서 기업이 가이드라인 위반을 한 것에 대해 피해자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반 구제절차이기 때문에 기업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절차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NCP를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총회에 참석한 댐 붕괴 피해 당사자가 하는 말이 기억이 남았는데, 조정 과정이 시작되면 양보를 해야 하는데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고 양보할 것이 없기 때문에 조정이 잘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OECD Watch가 만들어질 때부터 일했던, 매일같이 OECD 가이드라인을 연구하고 활용방법을 고민할 것 같은 활동가 또한 OECD라는 기구 자체가 신자유주의 정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구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결국 NCP가 모든 일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면 실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OECD Watch 총회까지 가서 한 이야기가 NCP와 헤어지자는 이런 기운 빠지는 것인 결론인가 싶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국 NCP의 상황에 대한 발표를 듣고는 많은 참가자들이 충격 받았다거나 고생했다 등의 코멘트를 주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이 페루에서 땅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K-드라마를 사랑하는...) 토착민 활동가의 말이었습니다. “우리 NCP만 엉망인 줄 알았는데 한국 같은 나라에서도 NCP가 엉망이라니 왠지 위로가 됐어요”라는 솔직한 코멘트를 듣고는 계속되는 기각과 합의 실패가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당장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magic bullet 같은 것을 찾고 있다면 지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겠지만 결국 우리에게 힘이 되는 것은 지구 저편이건 이편이건 착취 당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싸워가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며 우리는 또 NCP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는 방법으로 우리 몫의 싸움을 감당해 나갈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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