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민주주의포럼(EADF) 2015 연례 미팅 참가기

2015년 9월 12일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대만민주주의기금(TFD)의 초청으로 매년 위 기금의 운영위원회 참여국에서 돌아가며 열리는 동아시아민주주의포럼(East Asia Democracy Forum)에 참여하였습니다. 하루가 꼬박 소요되는 일정으로 인해 2박3일의 출장을 요했던 위 포럼은 도쿄에서 400km이상 서북쪽으로 떨어져 동해에 접하고 있는 조용한 일본의 해안 도시 가나자와(Kanazawa)시에서 열렸습니다. 

도쿄를 경유한 후 자그마한 지역공항이자 유사시 동해쪽으로 전개하는 일본 항공자위대 6항공단이 주둔하는 고마츠 공항을 통해 시내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리무진을 타고 도착한 가나자와시는 태평양 전쟁시 아무런 폭격을 받지 않아 에도시대의 전통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며 일본 3대 정원중 하나로 불리는 겐로쿠엔(兼六園)이나 가나자와 성(城)과 같은 관광지도 갖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대만민주주의기금(TFD, Taiwan Foundation for Democracy)은 대만의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연구활동과 사업을 지원하는 기금으로서 대만정부의 지원으로 2003. 6. 17.에 설립되었습니다. 

공식 웹사이트 : http://www.tfd.org.tw/opencms/english/

 

▲가나자와 지도

▲가나자와 성(城)과 겐로쿠엔

동아시아민주주의 포럼 일정표

사실 어필의 이일변호사는 대만민주주의기금의 목적과 활동상, 그리고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동아시아민주주의포럼(EADF)의 내용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알진 못했고, 올해의 주제가 “Immigration와 Democracy”라는 정도만 알고 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포럼에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참 좋은 시간을 보내게 돌아왔습니다. 

이번 포럼에는 대만, 일본, 몽골, 홍콩, 한국에서 온 이주인권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그야말로 ‘쟁쟁한’ 참가자들 30여명이 모였습니다. 포럼은 독특하게도 마에다 도시이에라는 14c경 생존한 일본 다이묘에게 봉헌된 오래된 신도사원에 모여 포럼을 진행했는데, 현재도 사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로 전통혼례를 여는 곳으로 사용된다고 하였는데, 이런 곳에서 국제회의까지 개최한다는 것이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세가지 세션의 내용 개략 

오전 일찍부터 포럼은 인간의 이동, 그리고 동아시아에서의 문화적 교류라는 키노트 스피치에 뒤이어 이주와 인권 사이를 탐구하는 세 가지의 세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 세션1 : 이주정책과 민주주의의 발전 

첫번째 세션은 이주정책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주제였습니다. 삿포로 대학의 Kazuhiro ASANO 교수, 몽골의 CENTER FOR HUMAN RIGHTS AND DEVELOPMENT의 대표인 Urantsooj GOMBOSUREN, 대만 Chung Cheng 국립대학의 Kuang-Hui Chen 교수가 발제를 맡았습니다.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던 몽골과 대만의 이주영역 상황이 흥미로웠습니다. 몽골의 경우 공식통계와 비공식 통계가 매우 다른데, 비공식적으로 몽골엔 800,000명 정도의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600,000명이 중국인이며, 북한, 남한, 베트남 등 다양한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있어서 전체 노동의 15%정도를 이주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몽골의 노동가용인구의 15%정도가 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 한국, 일본등으로 가는데 미등록 체류자 신분으로 일하는 상황도 설명하며, 주로 한국으로 간 이주노동자들이 사회보험에서 배제되고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며 저임금으로 일하는 문제, 성착취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일들도 지적하였습니다. 

▲Kuang-Hui Chen 교수 

Kuang-Hui Chen 교수의 발표 중에서는, 2014년 현재 50만명을 넘어가고 있다는 이주노동자들, 특히 대만에서는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여성들과의 결혼이 예전부터 많아 소위 결혼이주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큰 이슈인데, 중국 본토에서 온 어머니를 둔 자녀들이 학교에서 중국의 스파이라는 무서운 경멸을 받으며 자라난다고 하는 부분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 이일 변호사는 옆자리에 앉은 몽골의 우룬수치 대표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3년전쯤 한 국제 세미나에서 ‘필규’ 변호사를 만났다고 이야기하시는 말에 반가워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 점심식사는 해야겠지요?

2) 세션 2 : 이주, 이주노동자, 지역안보

점심식사 이후 열린 두번째 세션에서는 일본 Chiba institute of science의 Yoshito KOEDA 교수의 약간의 일반적인 내용으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이주를 개관하는 발제에 뒤이어 홍콩에 거점을 두고 있는 노동단체 China Labor Bulletin의 대표인 Dong-Fang Han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Dong-Fang Han은 천안문 사태 때 구금되었다가 미국으로 피신하고 이후 중국으로 돌아와 노동운동을 하다 홍콩으로 추방된후 현재도 홍콩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주로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는 2009년 7월 5일에 있었던 소위 우루무치 사태에서 위그르족이 독립을 요구하며 발생한 중국 한족과 위그르족 사이의 충돌 과정을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며 중국 당국의 공식적 발표로만 위그르족 197명이 사망한 위 사건으로 인해 현재도 우루무치 자치구는 준계엄상태이며, 위그르족과 티벳 장족의 경우 중국정부에 의해 테러분자로 간주되어 사실상 출국이 매우 어렵고 국내에서도 호텔등 일반 사회시설을 이용하는데에 있어서도 많은 차별을 받고 있는 점, 위그르족에 대한 중국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터키 내에서도 반중국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실상을 설명하며, 인종적 차별이 있을 경우 모두가 패자(敗者)가 된다는 점을 감동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Dong-Fang Han

이후 이어진 대만 Shih Chien대학의 Shang-Luan Yan 교수는 학술적 입장에서 동아시아 전체의 이주상황을 규범, 통계 중심으로 개관하였는데,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이주노동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려는 국제적 노력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ILO와의 협력이 이루어진 거의 유일한 긍정적 사례로 한국의 고용허가제(EPS)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질의응답시간에 이일 변호사는 한국 내에서 고용허가제가 어떤 폐혜를 낳고 있고 어떤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지를 자세히 코멘트 하려고 준비하였는데, 갑자기 열정적인 대만 활동가분들께서 교수님의 접근이 지나치게 학술적이라면서 발표내용과 달리 이주노동에서 브로커는 인신매매자로 용어를 써야하고, 대만의 실제 인권옹호 활동들은 이주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 국가나 인신매매자가 개입하지 않는 직접 고용을 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하시는 한편 ,재일조선인 활동가 분께서 KOUDA 교수에게 일본에서 만연하고 있는 혐오발언(Hate Speech)에 대한 해결책을 뜨겁게 질문하시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감히 질문을 더 붙일 수 없었습니다. 

3) 세번째 세션 : 다문화, 선주민, 그리고 인권

세번째 세션시간에는 일본 국방대학의 Rintaro YAMANAKA 교수, Mongolia Women’s Fund의 Bolor Legjeem 대표, 대만 Chenchi 국립대학의 Da-Wei Kuan 교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흥미로웠던 발표는 지역차원에서 지금 참가국 중 한군데서도 가입하지 않은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을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결론을 맺은 Bolor Legjeem 대표의 발제에 이어진 대만 Da-Wei Kuan 교수의 발표였습니다.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대만 산악지역에 그렇게 많은 소수부족들이 살고 있었는지 이전에는 전혀 몰랐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산악지대의 소수부족들의 토지가 강제로 수용된 이후, NGO들은 선주민들의 소유권, 문화적 권리등에 대해서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오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에서, 대만 활동가들은 질의응답시간에 일본 정부가 ‘일본에는 하나의 종족 일본인만 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오며 부정해온 아이누 족의 권리옹호 문제등까지도 강조하며 일본 측 참석자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포럼을 마무리하며  

처음으로 참여해본 대만민주주의기금의 동아시아민주주의포럼은 동시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일어로 발표하는 발표자는 영어로, 영어로 발표하는 발표자는 일어로 순차통역이 불가피한 점, 지정토론자가 배치되지 않아 사실상 토론이라기 보다는 짧은 주제발표들의 연속이어서 협의내용을 도출하는 형태의 토론은 아니었던 점, 민주주의라는 주제의 폭이 너무 넓고, 논의 방식에 따라 참가자의 국적을 둘러싼 관계들도 감안하면 상당히 치열한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는 주제인데 지나치게 일반적인 논의만 다룬 점등은, 일반 참가자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활동을 함께 지역차원에서 전개하는 네트워크는 아닌 점을 고려하더라도 아쉬운 점은 사실 있었습니다. 점증하는 아베정권의 폭주에 세계대전의 경험을 겪었던 타국가들의 긴장감도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논의하자고 치면 그와 같은 예민한 주제도 테이블 위에 올라가지 않을 순 없었겠지요. 

▲대만의 Kuang-Hui Chen 교수와 재일조선인 2세로 활동하고 계신 박실 선생님. 박실 선생님은 재일조선인 강제지문 날인 거부 소송에서 최초로 승소하시고, 일본적을 취득한 이후에도 조선성을 쓸 수 있도록한 소송에서도 승소하신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최근 손녀딸이 당하고 있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혐오 발언들을 이야기하시면서 눈물지으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참여자들이 10-20년 이상 인권분야에서 뼈굵게 활동해온 활동가들일 뿐 아니라, 실제로도 각국에서 국제규범에 부합하게 이주노동 분야에 주력하고 있는 분들이셨기에 여러 분야에서 전혀 몰랐던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 것도 있었고, 그 외에도 앞으로 실제로 관계를 형성하여 어필의 국내 활동, 그리고 해외의 활동에도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활동가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수확이었습니다. 

돌아보면, 한국측 참가는 많지 않았지만 한국은 여러 세션에서 자주 언급되는 나라였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주로 받아들이는 나라로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왜 권리보장이 그렇게 미흡한가’,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을 왜 비준하지 않는가’, ‘고용허가제의 현황은 어떠한가’. ‘인신매매와 관련하여 팔레르모 의정서에 관한 노력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등에 대한 발표, 질문 등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가능한 설명 범위 내에서 좀더 열심히 제 개인 의견을 피력했어도 좋았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한국에서도 더 가열찬 활동으로 한국에 이주해온 분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노력하여 구체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것이 국제적 차원의 활동에 더욱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필도 국내의 여러 이주단체들과 연대하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활동을 펼쳐야겠지요? 한국에 남은 숙제가 많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느꼈습니다. 이상으로 어필 이일 변호사의 동아시아민주주의포럼 2015 연례 미팅 참석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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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계속 되었던 기나긴 세션 이후 참가자들이 함께 연회장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식사와 술자리가 구분되어 있는 한국 문화와 달리 술이 기본이 되고 조그마한 안주들을 계속해서 곁들이는 일본 회식문화도, 몇 차례 예전 경험을 살리고 나니 이젠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저녁밥을 먹으니 이제야 살겠습니다 🙂

▲ 가나자와 역

▲ 가나자와 역에서 고마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제주 바다를 닮은 동해 바다 

(어필 이일 변호사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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