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0.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는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산재보상급여의 취소를 구하는 청구를 기각하면서 외국인 선원은 내국인 선원과 다르게 처우할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는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서울고등법원 2023. 10. 20. 선고 2021누59610). 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법원이 국적을 이유로 법정근로조건, 즉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베트남 국적의 N씨는 어선에서 꽃게, 대게, 오징어, 새우 등을 잡는 일을 했다. 배를 타면 바다에서 5-6일 정도 조업 후 육지에 와서 어획물을 판매하고 다음날 새벽에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5-6일 정도 조업하는 것을 반복하였다. N씨는 조업 나갈 때 하루 6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일했다. 휴일은 따로 정해지지 않고 기상악화로 선박출항이 불가능한 경우 쉴 수 있다고 했으나 부상당하기 전 약 1달의 근무기간 휴일을 가져본 적이 없다. 2020. 5. 4. N씨는 오전 7시 고기잡이 그물의 쇠줄을 감는 작업을 하던 중 쇠줄에 손이 감겨 우측 견갑골 골절, 우측 엄지 절단 등의 부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N씨는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을 운영하는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를 상대로 산재보상급여를 청구했는데 수협은 월 1,862,240원을 승선평균임금으로 적용하여 급여를 산정하였다. 그런데 2020년도 선원 최저임금 고시에 따르면 선원 최저임금은 월 2,215,960원이고 어선원의 재해보상 시 적용되는 승선평균임금 최저액은 월 4,583,140원이다. N씨가 적용받은 승선평균임금이 법령에 따른 어선원 재해보상 승선평균임금 최저액의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함은 물론, 선원 최저임금에도 수십만원 미달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에 N씨는 재해보상급여가 잘못 산정되었다며 그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N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는 N씨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외국인 선원은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이 이주어선원 최저임금 차별에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 주된 이유는 이주어선원은 표준근로계약서 양식에 따라 근로계약을 체결하는데, 표준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사용자는 숙식과 송환비용을 부담하여야 하고 임금 산정 시 이러한 비용부담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표준근로계약서는 국가정책으로 추진된 외국인력도입제도에 따라 이역만리 타국에서 어선원으로 일하기 위해 한국에 온 선원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들이 부담하는 막대한 송출비용, 여권 등 신분증 압수, 열악한 숙소, 임금체불, 산재 등의 숱한 인권 및 노동권 침해를 막지도 못하는 장치인데, 이를 이유로 법정근로조건인 최저임금 차별이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게다가 선원 최저임금 고시는 숙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국제노동기구의 ‘공정한 구인을 위한 원칙과 지침’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구인에 소요되는 비용과 여행경비를 포함한 관련 비용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즉 숙식비는 관련 법령상 최저임금에 산입해서는 안 되고, 송환비용은 사용자가 마땅히 부담해야 하는 것임에도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이유로 최저임금조차 적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고용 및 근로조건에서의 차별은 차별을 받는 집단을 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하여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같은 노동시장에 속하거나 진입하려고 하는 다른 노동자들의 협상력, 경쟁력과 근로조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선원법 제5조에 의해 준용되는 근로기준법 제6조가 성, 국적, 신앙과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근본적 이유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그 동안 수차례 헌법과 노동법의 근간을 이루는 위와 같은 법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2007. 8. 30. 선고 2004헌마670, 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6다53627, 대법원 1995. 12. 22. 선고 95누2050 판결, 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5두46321 판결 등 참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로마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법을 저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같은 쟁점으로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들이 있고(그 중 서울행정법원의 한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한 상황이다),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가 제기된 상황이다. 마침내 법과 원칙을 확인해주는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
2023년 12월 1일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
난민인권센터
대경이주연대회의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선원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경주이주노동자센터 (민주노총 경주지부 부설), 나오미센터, 성요셉노동자의 집, 이주민센터 동행, 이주와 인권연구소)
아시아의 창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W31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모두를위한이주인권문화센터, 부천이주노동복지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순천이주민지원센터,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원불교서울외국인센터, 의정부EXODUS, 이주민센터동행,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파주샬롬의집, 포천나눔의집이주민지원센터,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희망의친구들, (사)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삶의집, 함께하는공동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자평등연대(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공공운수노조사회복지지부 이주여성조합원모임,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녹색당,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성공회용산나눔의집, 민변노동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사)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센터친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주민법률지원센터 모모
한국이주인권센터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 <마중>
첨부문서
- 1. 2023년12월1일 국제 노예제폐지의 날 기자회견 취재요청서
관련 글
- 2023년 11월 29일
- 2023년 1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