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난민신청자에 대한 일률적 소변채취, 제3국범죄경력조회의 인권침해 확인

2019년 2월 8일

 
 
난민, 개인으로 불릴 수 없는 집단에 관한 편견과 혐오의 생산 주체인 정부 
 
한 사회에서 소수자(Minority)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여러 지표들 중 난민의 자리와 관련하여 곱씹어 볼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말할 권리’가 공동체 안에서 부여되어 있는가. 한국사회에서 난민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말을 건넬’수 있는 권위가 부여되어 있지 않습니다. 듣기만 하고, 기다려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개인으로 불릴 수 있는가’. 난민들은 여타 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다양성 이 내포된 개인으로 불리지 않고 다양한 편견이 누적된 집단으로만 불리게 됩니다. 말할 수도 없고, 인간도 아닌, ‘집단으로서의 난민’.  
 
작년 한해, 주로 난민, 무슬림, 이슬람에 관한 소위 ‘가짜 뉴스(Fake news)’가 다양하게 만들어지면서 ‘집단으로서의 난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누적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일이 다수 발생하였습니다. ‘혐오를 조장하는 가짜 뉴스’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복잡한 것이지만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한국 정부 자체가 난민에 대한 ‘집단적 혐오’를 조장하는 주체였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서의 물성을 지닌 소위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피신하자, 한국정부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난민들이 제주도 밖으로 심사가 종료될때까지 나갈 수없도록 하는 출도제한을 걸어버린 것입니다. 난민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최초로 전국적 의제로 떠오른 이때 정부가 ‘보호해야한다’라는 입장이 아닌,  ‘제주도를 나갈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발표함으로서, 암묵적으로 ‘난민은 수상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는 사람들이며, 위험하다’라는 ‘낙인(烙印, Social stigma)을 찍어버렸고, 국민들에게 난민의 ‘첫 인상’은 이렇게 시작되어 버렸습니다. 
 
예멘 난민신청자에 대한 사실상 강제였던 소변채취와 제3국 범죄경력조회에 드러난 정부의 시각 – 인권위 진정 경위 
 
난민들은 ‘잠재적 범죄자다’, ‘안보를 저해하는 집단이다’라는 막연한 편견이, 난민에 대한 ‘첫 인상’을 부정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형성해가고 있을 무렵, 법무부는 14세 이상 예멘 난민 전원에 대하여 ‘동의서’를 받고 마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 소변채취, 그리고 과거에 체류했던 제3국에서의 범죄경력조회를 하기 시작합니다. 예멘 국적자들에게 난민 또는 인도적 체류지위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일부에 대해 이를 거절할 적법한 근거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는 ‘난민은 위험하고 잠재적 범죄자다’라는 편견을 정부 역시 갖고 있고 이를 강화하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멘 난민들은 누구나 마약을 할수도 있고, 범죄를 제3국에서 저질렀을 수도 있다’라는 낙인 말입니다.  
 
이게 왜 문제냐구요? 정부의 행정은 섬세해야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일일 경우 더욱 조심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가능성’을 근거로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앞으로 이런 조치가 발동된다고 해봅시다. ‘마약범죄가 점차 늘어나고 있고 누구나 마약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14세 이상은 모두 학생은 학교에서, 일반인은 두달에 한번씩 주민센터에 출석해서 소변채취를 해야합니다’. 당연히 부당하고 누구도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겠죠.’ 아니면 외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상상해볼까요? ‘어떤 A국에 한국 국적자가 여행을 간다고 해봅시다. 그 나라 출입국당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남성들은 몰카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크고, 병역을 마치면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운 위험한 사람들이니, 관련 범죄에 연루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SNS계정 내용을 전부다 공개해야 입국을 허가하겠다’. 당연히 부당하겠죠.  
 
그런데 이런 일이 똑같이 일어나고, 이를 거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행정조사는 누구에게나가 아니라 ‘혐의에 관한 객관적 근거’가 있을 경우에만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말의 가능성’만을 이유로 정부의 행정력이 다양한 적법절차와 영장주의, 통제 없이 진행될 경우 가부장적 독재국가로 회귀하게 되고, 특히 ‘외부자’들을 적으로 돌리며 이와 같은 일을 진행할 경우 수십년에 걸쳐 조금씩 이뤄져온 인권의 진전도 하루아침에 후퇴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종전 기무사령부의 위법한 민간인 국내사찰, 해외정보수집도 이와 같은 가치관 아래서 이뤄졌던 것 아니던가요? ‘혹시 모른다. 적성국가인 중국에 다녀왔으면 혹시 모르기 때문에 들여다 봐야 한다.’ 테러방지법의 통과도 같은 맥락 아니었던가요? ‘혹시 모른다. 다 들여다 봐야 한다. 지금은 비상사태다.’ 그렇다면 영장은 왜 필요한가요? 적법절차는요? 이와 같은 싸움은 ‘반이민정서’에 기댄 우파 정치세력의 의제확장, 전제적 정부의 국민통제 강화추진등의 배경을 등에 업고 전세계적으로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예멘 난민신청자들이라면 ‘누구나’ 일률적으로 소변채취를 해야하고, 제3국 범죄경력조회를 해야한다던 법무부의 실무자들은 일부의 강경한 목소리를 업고 잠재적 가해자인 난민과 잠재적 피해자인 국민이라는 허구적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당연히 해야될 일이고,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필은 난민네트워크의 활동으로 인권위에 인권침해에서 구제해달라는 진정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정결정의 요약 
 
2018. 12. 12. 인권위 제2침해구제소위에서는 당연하게도, 아래와 같이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실시한 소변채취와 제3국 범죄경력조회는 ‘자유로운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인권침해이며, 따라서 당연하게도 ‘범죄혐의가 있는’ 용의자에 대해서만 실시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인권위 진정 결정문 : “난민신청자에 대한 소변채취 및 제3국 범죄경력 조회” 요약문 및 전문 링크 
►관련기사 : 2018. 12. 15. SBS “[단독] 인권위 “예멘 난민 무차별 마약검사·전과 조회…인권침해” )

1) 피해자들에 대한 소변채취 관련 피진정인이 난민신청자인 피해자들에 대하여 난민법에 의거한 난민제한 사유에 해당 여부를 조사하지 아니하고 출입국관리법의 입국금지 대상자 또는 강제퇴거 대상자에 해당하는 마약류중독 여부를 조사하기 위하여 소변검사를 10세 이상의 난민신청인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실시한 것은 그 목적이 법률에 근거하지 아니한 것이고. 업무수행상 불가피한 경우라고 보기 어려움. 또한 동의절차 역시 난민심사기관과 난민신청자라는 관계에서 자유로운 동의로 볼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동의 절차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2항을 위반한 것이므로 이는 피해자들에게 보장된 헌법 제10조의 일반행동의 자유권을 적법절차 없이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고,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의 자유를 침홰한 것임  
 
2) 제3국에 있는 기관에 개인정보 제공 관련 소변채취 과정과 마찬가지로 난민신청자의 동의가 자유로운 동의라고 보긴 어려울 뿐 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개인정보보호법」제1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자’, ‘제공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등을 명시하지 않고 동의서를 요구한 것은 적법절차를 위반한 것으로서 이는 「헌법」제17조의 보장하고 있는 사생활의 비밀의 자유를 침해한 것임.  
 
3) 권고부분 가. 피진정인1에게, 향후 난민신청자에 대하여 소변검사와 제3국 국제범죄 이력조회는 범죄혐의가 있는 용의자로 제한하여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 나. 법무부장관에게, 난민심사를 담당하는 소속기관들에 대하여 향후 이 사건과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난민신청자들의 개인정보의 수집 및 제3자 제공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동의절차를 준수하도록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입니다만, 이미 대부분의 심사 절차가 종료되고, 이같은 인권 침해를 회복할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내려진 것은 심히 아쉽습니다. 다만, 향후 이와 같은 결정은 행정당국의 막연한 의심, 편견등에 근거해 특별한 기준 없이 ‘동향조사’라는 명목으로 이뤄져 ‘사생활의 자유’를 막연히 침해했던 방문조사와 같은 관행의 변화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판단합니다. 
 
향후의 정부의 역할 제언 – 혐오의 몸통 중 하나였던 정부 
 
확장되는 정부의 과도한 팔과, 탈법적 운용에 맞서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연대의 목소리 속, 가장 취약한 소수자인 난민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확인하기 위한 연대 역시 예외적으로 제외되지 않고 계속 되어야 합니다. 난민들 역시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며, 오히려 난민의 인간다운 삶을 옥죄는 제도를 걷어내고, 정착을 위한 지원과 연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가짜 뉴스의 확산, 혐오 방지에 관한 원론적이고 당연한 메세지들을 반복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난민들에 있어서 정부 스스로가 난민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낙인을 찍는 활동을 해왔던 것을 자성하고, 난민들과 국민들을 서로 갈라, 혐오세력의 뒤에 숨어 싸움을 부추기지 말고, 난민들에 대한 보호입장을 명확히 천명하며, 모두가 함께 사는 ‘한국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당연한 역할을 맡아서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작년 한해 한국 사회를 갉아먹었던 난민혐오의 몸통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 안엔, ‘난민의 자리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최종수정일: 20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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