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공익법센터 어필은 한 중국 어선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에 해당하는 노동조건에 2020년 4월, 한 중국 어선에서 인도네시아 선원들이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에 해당하는 노동조건에서 일하다 총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바다에 수장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다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취약성을 잘 보여주는 롱싱 629호 사건의 몽가베이 기사를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이 글은 Mongabay의 허가 하에 번역 후 공유되었음을 밝힙니다. / 원문링크: https://news.mongabay.com/2021/09/worked-to-death-how-a-chinese-tuna-juggernaut-crushed-its-indonesian-workers/amp/?__twitter_impression=true / 권이현, 윤소원, 김린지, 박지향 자원봉사자 번역 ).
원문의 기사가 길어 3편으로 나누어 포스팅되어 있습니다:
① [롱싱629호 사건 보도] 죽을만큼 일했다 : 중국의 거대 참치 기업은 어떻게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짓밟았는가 – 1
② [롱싱629호 사건 보도] 죽을만큼 일했다 : 중국의 거대 참치 기업은 어떻게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짓밟았는가 – 2
보편적 관할권
2020년 4월 26일, 한국 변호사 김종철은 핸드폰으로 놀라운 비디오를 받게 되었다. 이날 오전 촬영된 영상에는 롱싱 629호의 또 다른 갑판원인 이펜디 파사리부씨가 부산의 한 병원으로 향하는 승합차 뒷좌석에서 심각하게 기침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러부터 몇 주 전, 남은 16명 중에 더 많은 선원들이 아프게 되었다. 이제 계약 파기보다는 죽음의 위험이 더 두려워진 선원들은 다 같이 육지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처음 선장은 오직 공허한 약속들만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선상 반란을 협박하자 선장은 드디어 그들을 항구로 가는 다른 DOF 연승선으로 환승하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아리는 항구에 도착하지 못했다. 숨을 쉬기 위해 헐떡이던, 부은 몸의 그는 중도에 사망했고 바다에 묻히게 되었다.
4월 24일, 드디어 선원들이 부산 항구에 내렸을 때, 그들은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정복된 것을 알게 되었다. 마스크 등 개인 위생복을 입은 직원들은 입국 허가 검사를 하고 코로나 검사를 한 후 그들을 인도네시아로 가기 전 2주동안 자가 격리를 위해 라마다 호텔로 데려갔다.
김 변호사는 한국 어선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더 나아지게 할 것을 요구하는 데에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도울 수 있는대로 돕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또한 기회를 보았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 부산을 거쳐가는 이주어선원들은 많지만 보통은 하루나 이틀 후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롱싱 629호의 선원들은 그렇게 빨리 떠나지 못했다. 그의 노력이 한국에서 진짜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했던 김 변호사에게 이는 바다에서 죽음을 겨우 면한 선원들과 이야기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21살의 나이로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 아침에 사망한 이펜디를 돕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그의 유족들은 부검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텔 와이파이로 김변호사는 다른 선원들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에 열정적이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세계가 들을 지에 대한 자신감은 없었어요,” 김 변호사가 회상했다.
그 다음 며칠 동안 선원들은 한국어-인도네시아어 통역사를 통해 김 변호사에게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에 김 변호사는 한국 해양경찰에 수사를 요청했지만, DOF의 어선들이 한국 수역을 이미 떠났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김변호사는 그래도 한국 정부가 행동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선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그는 최근 한국 형법에 신설된 조항을 인용하며 ‘보편적 관할권’을 통해 인신매매 가해자들이 한국 국적 여부, 한국 영토에서 발생한 사건인지 여부와 관계 없이 법집행관들이 수사할 수 있으며, 선원들은 인신매매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변호사는 원래 보편적 관할권을 성착취 목적 인신매매를 처벌하기 위한 도구로 보았지만 이제 그는 이 상황에도 보편적 관할권이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 변호사는 “그들은 인권 침해를 당했지만 어선을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노동 착취를 넘어선 인신매매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변호사는 또한 이 이야기를 MBC에 제보했다. 5월 5일, MBC는 이 보도를 아리의 시체가 바다로 던져지는 핸드폰 촬영 영상를 포함해서 주요 뉴스 프로그램에서 방영했습니다. 그 다음날 이 보도가 퍼지기 시작하며 인도네시아어를 하는 한 한국인 유투버가 그의 인도네시아 청중을 위해 이 사건을 소개했다. 25세의 이 유투버는 그의 영상에서 “노동 환경이 노예 제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몇백만 조회수를 받았고, 인도네시아에서 이 사건이 유명해지고 몇몇 국회 의원들이 가해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데에 일조했다.
이 이야기가 헤드라인을 장식하자 한국 정부는 김 변호사의 리포트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안경찰이 아직 자가격리 중이었던 선원들과 독자적으로 인터뷰를 했고, 사건을 검찰에게 넘겼다. 하지만, 조사가 계속되기 위해서 인도네시아인들은 한국에 머물러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하던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투표를 했다. 리즈키 파우잔 알비안은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거의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투표했다. 5월 초에 그들은 부산에서 떠났고 한국 당국이 수사할 기회가 사라졌다.
갑판원들이 부산에 있는 동안 연락을 주고 받았던 인도네시아 어업 노동자 조합, SPPI의 한국지부장 아리 푸르보요는 그들이 “충격을 받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배에서 친구들이 죽는 것을 보았으며 한국에 머무르는 것이 심리적 부담으로 부담이 됐다”고 전했다.
‘돈이 없다‘
부산에 도착한 선원들은 그들이 드디어 그들의 은행 잔고를 확인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 때에서야 그들은 그들이 계약서에서 공제를 합의한 금액을 제외하더라도 약속된 임금의 11%만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명은 13개월 일한 것에 대해 120 달러 밖에 받지 못했다. 송입업체와 연락이 닿은 이들은 모두 같은 설명을 들었다: DOF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2019년에서 2020년까지 DOF에 대해 채권자, 서비스 제공자, 공급자가 제기한 수십개의 소송으로 미루어보아 DOF는 횟감 참치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한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이미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DOF가 돈을 못 낸 것은 선원 뿐만 아니라 그들을 파견한 송출업체들에게 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사뮤엘 판자이탄은 전직 선원들이 해양 산업에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송출업체를 최근에 개업한 전직 선원이었다. 그가 사업가로서 한 가장 첫 번째 일 중 하나는 DOF에게 노동자를 공급하는 피지의 송입업체를 운영하는 중국인 여성 후 줄리안과 계약을 맺는 것이었다. 사뮤엘에 따르면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도, 전화통화한 적도 없고 메세지로만 연락했다. 그는 “나는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녀와 전화를 해 본 적도 없다. 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거절을 당했다”고 말했다.
후의 송입업체인 Orient Commercial and Trade는 세프리와 아리를 파견한 업체, 조니 카시얀토가 설립한 업체를 포함한 여러 인도네시아 송출업체로부터 선원들을 받아 DOF로 보냈다. Orient는 또한 DOF에게 미끼 물고기를 공급했고, 우리의 조사팀이 본 은행 기록에 따르면, 홍콩에 있는 통장으로 수고비를 지불받고 있었다.
시작은 좋았지만 사뮤엘에 따르면 2019년 초, DOF에 선원을 공급하는 송출업체에게 지급되는 돈의 유통이 심각하게 감소했다. 그의 고객들은 DOF가 수고비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항의하려고 했으나 자신의 영향력이 적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제 갓 시작한 그의 사업을 살리고자 여러 해외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DOF를 임금 사기로 고발하며 연락해보기도 했으나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했다. 중국에 있는 변호사는 그에게 중국에 있는 회사를 고소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세프리의 사망 한 달 전인 2019년 11월, 사뮤엘은 그의 선원 4명을 태우고 있는 세 척의 어선이 사모아에 정박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전화로 그는 그의 선원들에게 DOF가 그들의 임금을 안 주고 있다고 알렸고, 지역 정부가 가끔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에 그러하듯 어선들을 억류하리라는 희망에, 그들에게 경찰서에 알리라고 했다. 며칠 후에 어선들은 떠나기로 결정한 사뮤엘의 선원들을 두고 다시 바다로 나아갔다. 그 중 한명이었던 이반은 그가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여권을 달라고 선장에게 빌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 시점에 롱싱 629호를 포함한 DOF의 태평양과 대서양 선단 선원들은 그들의 어선의 행동이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2019년 9월 쯤 어선들은 참치들을 찾으러 다니지 않고 바다에서 가만히 있기 시작했다. 선원들에 따르면 거의 1년간 2020년 5월 롱싱 629호 선원들을 돌려보낸 후에도 계속 그랬다고 한다.
위성 사진 또한 선원들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갑판원들은 배가 서태평양을 떠돌아다니면서 참치 낚시는 거의 하지 않았으나, 상어 낚싯줄을 던지며 많은 상어를 잡았다고 밝혔다. 선장들이 가끔 모여 술을 마실 때 인도네시아인들은 왜 그들이 정상 운행을 멈췄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중국인에게 설명을 요청했을 때 얻은 것은 보아하니 DOF가 일종의 혼란을 겪고 있음을 전하는 서툰 영어와 손짓뿐이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돈이 없다’는 사실은 이해했습니다”라고 서 자바 출신인 러스나타(39세)가 말했다.
2020년 8월, 마셜 제도 영토 근처의 국제 해역 태평양에 모인 DOF의 배들이 중국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몇 주 만에 그들은 서해의 중국 산둥반도 끝에서 도착했다. 갑판원들은 몇 달 만에, 몇몇은 2년 만에 처음으로, 해안과 멀리 솟아오르는 산들을 볼 수 있었다.
배들은 거기서 입항하지 않은 채 열흘 동안 그곳에 정박했다. 유조선이 어선의 연료를 채우기 위해 왔을 때에서야 루스나타는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155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의 비퉁 항구로 가는 2 척의 DOF 연승선에 모여 탔다. 도착 후, 방역보호복으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싸여져 있는 직원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루스나타는 그들이 DOF 어선 중 한 척에서 해안 경비선으로 2 개의 커다란 물체를 옮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보다가 문득 그것이 시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원들을 만나기 위해 비퉁으로 날아간 사뮤엘 판자이탄 및 일부 송출업체들은 DOF가 급여를 지불할 때까지 인도네시아가 두 척의 주낙어선을 억류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사뮤엘의 말에 따르면 어선들이 도착하기 전에 인도네시아 외교부의 시민보호국장인 주드하 누그라하가 송출업체들에게 중국의 대사가 DOF가 2021년 2월 또는 3개월이 지나기 전에 임금을 지불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니 어선들을 억류하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드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코멘트해달라는 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다.) 2020년 말 DOF의 대서양 선단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선원 88명의 송환을 도운 다카르 소재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의 세디나 케이타 또한 현지 인도네시아 대사로부터 DOF가 임금을 2월 말까지 지불할 것이라고 중국이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사뮤엘은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지난주, 그는 후 줄리안의 회사 Orient Commercial and Trade을 포함한 총 3개 기관으로부터 총 1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돌려받아야하며 선원들에게 지불하기 위한 돈을 위해 빚을 져야만 했다고 밝혔다.
후는 이메일을 통해 사무엘의 에이전시에 약 10,000달러의 빚을 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2018년부터 임금 지급을 중단한 DOF에 책임을 돌렸다. “지속해서 돈을 지불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 DOF 가 2021년 6월에 결국 임금을 지불했으나 아직도 그의 송입업체에 90,000 달러 가량의 채무가 있다. 그는 이를 여러 파트너 인도네시아 송출업체에 분산했다. 후에 따르면, DOF는 그에게 모든 돈을 갚았다는 입장이라 그가 채무를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롱싱 629호 선원들은 결국 그들의 송출업체들에게 배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많은 다른 선원들은 그들이 바다에서 일한 것에 대한 그 어떤 임금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루스나타는 그의 송출업체가 인도네시아에서 목돈인 11,000 달러 이상을 빚졌다고 했다. 전직 건설 노동자였던 루스나타는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서 돈을 모으려고 바다에 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일을 찾을 수 없었고, 친척들과 어업 노동조합 SPPI에서 지원금을 받아 살 수 밖에 없었다. 어업 노동조합의 회장 일리아스 판게스투에 따르면 비퉁을 통해 송환된 선원 중 절반 정도만이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국 정부와 정치적 협의를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들의 시민을 보호하지 못했어요,”라고 사뮤엘이 말했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지 못하게 해주세요‘
인도네시아에서 롱싱 629호의 비극은 특히나 중국 어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공론화했다. 뉴스 기사 보도 통계에 따르면 2019년 3월부터 2020년 11월 사이 8개의 다른 중국 회사 소유의 19 척의 어선에서 적어도 30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사망했다. 그중 19명은 부종과 호흡곤란의 증상을 동반한 알려지지 않은 질병으로 사망했다.
롱싱 629호에서의 학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행동하는 촉진제가 되었다.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터진 2020년 5월, 일주일 만에 어선과 연관된 3-4개의 송출업체 사업자들이 체포되었다. 이는 고용 사기에 따른 인신매매로 4.5 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 조니 카시얀토, 선원들을 질 낮은 물과 음식, 과도한 노동시간 및 수장으로 그들의 계약에 위배되는 상황에 놓이게 한 혐의로 1년간 감옥에 가게된 PT Lakemba Perkasa Bahari의 CEO 무아파르 카다피를 포함한다. 지난 1년 반동안 다른 중국 어선에서의 사망 사건과 연관된 최소 7명의 송출업체 사업자들이 체포되었다. 어선원을 착취에서 보호하는 활동을 하는 SAFE Seas Project의 대표 노노 수마르소노에 따르면 이는 전례 없는 대대적인 인도네시아 송출업체 단속이다.
송출업체협회의 회장 델 아구스에 따르면 해외 어선들이 포함된 이 스캔들때문에 인도네시아 송출업체들이 악마화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2017년 이주민 보호법에서 요구하는 송출업체를 감시하기 위한 새로운 법의 제정을 주장하는 이들 중 하나이다. 인도네시아 해양 정의 계획의 파디알 옥타비아니에 따르면 이 법은 1년이 넘게 불확실한 상태로 있다고 한다. 국무장관 대변인 팔도 말디니에 따르면 이 법이 아직 대통령에게 보내지기 위해 몇몇 부서의 승인을 기다리고 했다.
자카르타의 국제 노동 기구 프로그램 담당자인 이르함 알리 사이푸딘은 UN의 2007년 어선원노동협약을 포함하는 이 법은 인도네시아가 중국과 소통할 때 더 커다란 외교력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선원을 학대하는“배의 기국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맞은 법적 장치를 마련해두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동남아시아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이주노동자연합(SBMI)을 포함한 여러 기관들은 인도네시아가 송출업체를 처벌한 것이 잘했다고 생각했다. SAFE Sea의 노노 “비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 몇몇 송출업체들은 많은 송출업체들이 비슷한 관행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체포된 이들은 그저 운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인도네시아 송출업체들을 처벌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원양어업은 결국 본질적으로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에 해외 송입업체와 선주들 또한 책임을 져야 한다.
어업노동조합의 대표 일리아스 판게스투는 롱싱 629호 사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죄를 지은 이들, 차별을 행한 이들은 우리 사람들이 증류된 물을 먹는 동안 본인은 생수를 마신 중국인들입니다. 죄를 지은 것은 DOF인데 처벌받는 것은 송출업체들입니다. 문제는 저기(중국)에 있는데 왜 저기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것인가요?”
2020년 말, 인도네시아의 외교부 장관이 중국측과 만나 중국 어선에서 발생하는 인도네시아인 사망 사건의 증가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두 국가가 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법 집행 관련 정보 공유 등을 포함한 법적 공조 협약을 맺었다고 외교부의 주드하는 말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송출업체들을 처벌한 것과 다르게 중국은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해 혐의가 제기된 기업들을 수사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지 확실하지 않다. 중국의 외교부와 자카르타의 대사관은 이에 대한 코멘트 요청에 대답하지 않았다. 동아시아 그린피스에 따르면 중국은 중국 어선에서의 인도네시아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그 어떤 공식 보고서도 발행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해양부 조정 차관, 바실리오 디아스 아라우조는 “롱싱 629호 사태와 관련된 관련자들과의 조정이 아직 더 필요한 상태”라고 지난주 우리에게 말했다.
바실리오에 따르면 그의 부서는 해양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난 6월 중국의 외교부와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그는 이 양해각서가 “중국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선원 및 어선원들을 보호할 정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행동의 문제라고 한다. “지금은 이 합의를 현실화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와 중국 정부가 밟아 나가야 하는 전략적 단계에 대해 협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식적으로 중국은 아직 DOF의 어선에서 이주민들이 학대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5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이 기업의 노동 관행에 대한 자체 조사를 인용하며 DOF로 부터의 수입을 금지한 후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 웬빈은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선원들에 대한 학대’라고 부르는 것들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롱싱 629호 사건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작년 언론에서 이 문제가 과장되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관련 기업은 해당 선박에서 근무하는 인도네시아 선원들을 즉시 확인했으며, 그들은 모두 학대는커녕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롱싱 629호의 갑판원이었던 리지키 파우잔 알비안은 지난달 “다롄으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629명의 승무원 중 누구도 그들과 연락한 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부인할 거라고 예상할 수는 있죠. 다롄은 큰 회사니까요.”
2020년 12월, 합병이 진행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1년 이상 지속한 후, 간장 제조업체인 Jiajia Food는 DOF 인수 계획이 종료되었다고 발표했다. 중국 법원은 2019년 11월부터 각종 소송으로 DOF 등 리 젠유 소유의 기업에 속한 수천만 달러의 자산을 동결한 것으로 밝혀져 여전히 법체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원고는 중국 최대 조선회사 주요 기업부터, 미지급 임금으로 회사를 고소하는 DOF 중국 승무원 수십 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롱싱 629호의 선장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명백한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DOF는 아직 완전히 문을 닫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DOF의 다롄 사무실에 들른 한 관계자는 사무실이 아직 열려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기업주 중 한 명이 올린 공지문에 따르면, DOF가 가까운 시일 내에 최대 10척의 보트를 더 인수할 생각이라며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유다 프라타마와 누르를 포함한 롱싱 629호 갑판원 중 몇 명은 인도네시아 해역을 비행하는 화물선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들 중 누구도 외국 어선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리즈키 파우잔 알비안은 동자카르타에 위치한 하숙집에 살고 있다. 그는 COVID-19 환자가 치료받는 시설에서 배달 서비스 및 저녁 청소를 하며 부모와 자녀에게 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
그는 DOF의 배에서 겪었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다시 외국 어선에서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는 그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적절한 기관, 적합한 배를 찾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세프리의 여동생 리카는 세프리의 마을, 세르당 메낭에서의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롱싱 629호의 비극 이후 마을 사람들이 더 이상 외국 어선에 일자리를 얻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가 함께 있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프리의 사촌이 익명으로 말했다. 세프리, 아리와 함께 센트럴 자바에 있는 승무원 에이전시에 등록한 그는 결국 일자리를 얻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출항했고 나는 두 번째로 배치가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갈 생각이 없다.”
가족은 세프리의 죽음에 대해 기관으로부터 약간의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리카는 보상은 동생을 다시 데려올 수는 없다며, “가능하면 세프리만이 희생자가 되게 해라.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놔두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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