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어필에서 일하게 된 지 1년이 되어갑니다. 이번 ‘비틀거리며’ 글을 적으며 이 시간들이 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전까지 2023년 난민인정률 ‘1.46%’라는 통계는 그저 스쳐지나갔던 하나의 수치일 뿐이었지만, 어필에 있으며 그 숫자 너머에 수많은 사람의 절박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깊이 마주하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 군부쿠데타 반대시위에 참석한 A씨는 10년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 받고 떠밀리듯 피난을 떠나야했습니다.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한 박해의 위험은 분명히 난민 사유에 해당하여 난민 지위가 부여되어야 함에도, 법무부는 열악한 ‘인도적체류지위’ 결정만을 하였습니다. 어필의 조력으로 난민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으로 온 이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부모님 두 분의 임종도 장례도 지킬 수 없었던 그에게 “얼마나 힘들었어요 저도 아버지께서 몇 해 전에 소천하셨어요”라고 건네자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습니다.
이 사람은 꼭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난민인정 승소 판결’을 확인한 순간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승소 소식을 전하는 전화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안도감이 저의 마음에도 온전히 다가왔습니다.
불쑥 냉담한 말들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가장 힘이 센 것은 ‘자기 중심성’인 것일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자기 자신을 넘어설 때 나온다’는 문장을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어필 후원자분들, 어필 동료들, 어필함께 청년변호사벗들, 자원봉사자분들, 이주민들의 억울한 사연에 귀기울여 보도해주시는 언론인분들, 이주인권을 연구해주시는 연구자분들을 떠올립니다.
낯선 땅에서 취약한 지위에 놓이는 이주민들. 계약서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수개월을 참다 한 문제제기에 대한 결과는 불명의 민원에 의한 단속이었고 오히려 ‘계약서 미비’로 취업 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하여 ‘출국명령’을 당하는 것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출국명령 취소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에 큰 희망 없이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에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했을까요. 이건 우리 사회가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요”라는 판사님의 한마디에 깊은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기계적 법 적용이 아니라 법의 목적과 그 너머의 사람을 보는 법률가들도 존재한다는 것. 예기치 못한 순간에 힘을 얻으며 보내는 어필에서의 날들이 마치 생명이 새로이 풍성히 소생하는 5월 이 봄과 같이 느껴집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기쁜 믿음으로 계속 길을 걸어갑니다.
“언젠가 무엇이 우릴 또 멈추게 하고 가던 길 되돌아서 헤매이게 하여도
묵묵히 함께 하는 마음이 다 모이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을까”
- 김동률 ‘동행’ 중에서
(공익법센터 어필 최갑인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