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3년 11월] #48. 세상을 푸르게 하는 작은 빗방울처럼 - 최갑인 변호사

2023년 11월 1일

안녕하세요 올해 4월부터 어필에 합류한 최갑인 변호사입니다.

어필에 합류하기 전 저는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장애인권 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학대피해장애인분들을 조력하면서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장애인고용공단‘,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같은 여러 기관들과 협력하고 복지제도를 활용하여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필에 와서 이 땅의 이주민, 난민들은 ‘국민’이 아니기에 더 취약한 지위에 놓여져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9년 어필에서 실무수습을 하던 시절에 본국에서 방송앵커로서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대하여 비판하며 “부패한 자가 두려워해야죠 부패를 드러내고 악한 자를 알리는 사람이 두려워하면 안되죠” 라고 용기있게 행동 했던 A씨의 난민면접 동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면접 과정에서 난민사유와는 관계없는 사적인 질문들을 받아야했고, 정작 난민사유인 박해에 대한 이야기에는 ‘여기는 당신 인생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모든 순간에 ‘하대’가 깔려 있었습니다. 변호사 동석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이렇다면 변호사 동석을 받을 수 없는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태도가 어떨지 자연히 그려졌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겨워하던 A씨의 허리 치료를 위해 함께 병원에 갔다가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걷는 길. A씨는 앞뒤로 팔을 크게 흔들며 ”한국에 오고나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맺힘 없는 아이같은 웃음. 따듯한 식사를 함께했던 그 날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A씨는 난민인정을 받아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은 희미해져가고, 고통받는 이들과 무언가 함께하는 것들은 사치가 되어버리는 각자도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어필에서 일한다는 것은 당사자분들의 깊은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지인들조차 무심히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어필 윤이나 운영팀장님의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라는 말이 묘한 힘이 되어줍니다. 어필을 후원해주고 계신 후원자분들, 어필에서 오랜시간 일해 온 크루들, 청춘의 한가운데에서도 어필에 지원해서 타인의 고통을 기꺼이 마주하는 인턴분들. 어쩌면 모두가 이상한 사람들인 것 같아 생각을 하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작은 빗방울이 세상을 푸르게 하듯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강하게 하듯이" - 이상은 ‘둥글게’ 중에서

각자도생의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좁은 길을 가는 사람, 세상을 푸르게 할 작은 빗방울 같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닐까. 세 겹 줄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함께이기에 어필은 기쁨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음을 느낍니다.

모두의 존재에 감사드리며. 사랑을 담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최갑인 작성)

최종수정일: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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