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3년 12월] #49. 뒤돌아봄의 미학 - 이소운 인턴

2023년 12월 6일

국제학부라는 곳에서 대학 공부를 했다고 소개하면, 가장 자주 들어본 질문은 “거기선 뭘 배워?” 입니다. 

사랑하는 학문에 대한 뭉툭한 질문에 느끼는 조금의 서운함은 차치하고, 물론 수학과에선 수학을 배우고 철학과에서는 철학을 배우는데 국제학이라는 것은 뭐냐는 본질적인 궁금증이겠지요.

“국제적인 모든 걸 다 배운다”고 답하면 너무 대충인 것 같지만, 사실입니다. 정치, 경영, 외교, 경제, 법 분야의 학문적 원리와 국제적 해석법을 배우고, 세상의 사례에 적용합니다. 학부동안 매주 천페이지가 넘는 논문읽기와 토론을 해내기도 하고 수많은 법리를 적용하여 국제사법재판소 판례를 해석해보기도 했지만, 없어지지 않던 답답함의 원천은 아무래도 그 모든 것이 과거지향적이었기 때문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생으로서의 기초적인 도리를 다하려면 당연히 헤쳐나가야하는 과정인데도, 조급하니 그 마음은 배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이렇게 계속 뒤돌아보기만 하면 소용돌이처럼 흘러가는 이 세상을 언제 바꾸나 하는 어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학도에게 어필은 꿈의 직장입니다.

인턴으로서 전공 수업에서 배웠던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계셨던 난민신청자 분들께 연락드리기도 하고, 조력을 위해 각종 인권 보고서와 국제 언론을 파헤칩니다. 또 실제로 함께 일하시는 변호사님들의 조력을 받아 난민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사실 수 있게 된 순간들을 보며 국제법의 위력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더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어필이라는 공동체에 함께 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바꾸는 변화는 뒤돌아봄으로 시작함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자전거의 도시 코펜하겐에서 잠깐 교환학생을 할 때 덴마크 친구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모든 시민이 환경적으로 좋은 습관을 가지는지 묻자 돌아온 답변을 기억합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어디에나 있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며 싸고 편하니까. 환경에 좋다는 것은 덤이고.“

사실 뒤돌아봄에 필요한 덕목은 여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있고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어야 하듯, 이웃에 대한 관용과 뒤돌아봄에 대한 참을성이 있으려면 그 관용과 참을성이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 초년 시기에 어필에 몸담았기에,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생각합니다.

2023년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필에서의 순간들도 기억합니다.

서로의 승소 소식에 옆에서 천마디의 말보다도 따뜻한 눈빛을 보내시는 장면, 작은 배려도 꼭 소리내어 고맙다고 표현해주시는 순간들, 서면을 제출하실 때마다 자료조사에 힘쓴 인턴과 연구원에 대한 인정을 아끼지 않으시는 모습들에서 우직한 여유와 참을성을 배웁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자전거 도로가 많이 없지만, 어필은 그 길을 닦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길이 모두에게 이로운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긴 글을 마칩니다. 💌

(공익법센터 어필 25기 인턴 이소운 작성)

최종수정일: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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