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4년 1월] #50. 여러분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김유정 인턴

2024년 1월 3일

여러분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뜬금없이 받으신 거창한 질문에 ‘무슨 소리야?’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힘들거나 지치는 일이 있을 때면 도망칠 수 있던 SF 소설의 세계가 저에겐 숨을 토해낼 수 있는, 저를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나 현대 한국형 SF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포칼립스 세계에서의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향해 건네는 손길’ 때문에 저는 자주 다시 숨 쉬게 됩니다. 이러한 구원자 플롯은 고전적으로 사용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배경이 세상이 모두 멸망한 아포칼립스 세계라는 점에서 눈물 여러 방울을 훔치게 하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구원의 손길을 받은 사람이 선인이든 악인이든 혹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의 세계가 순식간에 전환되며 재정의되는 과정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렴풋이 닮아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구원의 이야기처럼 저를 살도록 하는 다른 곳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공익법센터 어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서 저만의 아가미를 만들어 두었던 것이 놀랍게 여겨질 정도로, 손길에 손길을 건네는 단체가 있더군요. 나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소설을 읽으며 여러 차례 그려왔던 일이기에 인턴에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직접 경험한 어필은 생각보다 더 많은 손길을 내밀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었습니다. 어필에 있는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존재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소설에서는 쉽고 빠르게 이루어졌던 과정들이 이곳에서는 생각보다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성사되기도, 혹은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현실의 벽은 확실히 높더군요.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두드려보는 어필의 손길이 있기에 2023년 뜻깊은 소식들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드라마틱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소설, 드라마 그리고 영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에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길고 긴 여정 끝에 만들어내는 어필의 발자취에 더욱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우리는 모두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그마한 희망에 많은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쪽짜리 아가미를 가지고 땅 위에서 살아보려 했던 제게 어필이 반대쪽 아가미로서 존재해 주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1월이 되었습니다. 어필에서의 시간도 곧 제 인생의 부분으로 남고 추억해야 할 곳이 될 테지요. 그때까지 저는 최선을 다해 어필 구성원들의 일상을, 분투를, 그리고 알려야만 하는 이야기들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열심히 수행해 보겠습니다. 2024년에는 부디 저를 살게 한 어필이 여러분의 일상 속 탈출구도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벌써 그리운 어필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공익법센터 어필 25기 인턴 김유정 작성)

최종수정일: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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