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4년 2월] #51. Eat together, stick together - 박지향 인턴

2024년 2월 7일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9월부터 어필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켈리입니다. 출근하는 첫 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인턴으로서 근무하는 마지막 달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최근 어필 구성원들은 켄 로치 감독의 신작 영화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를 단체로 관람했습니다. 영국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폐광촌에, 어느 날 시리아 난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TJ’는 난민 ‘야라’에게 과거 광부들이 힘든 시기를 같이 버티면서 되뇌었던 말을 알려줍니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 영화 초반에 서로를 경계했던 기존의 주민들과 난민들은, 시간이 지나 함께 식사를 하며 어려운 시기를 버틸 힘을 얻습니다. 

위 설명을 읽고 영화 줄거리가 다소 동화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드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eat together, stick together”이야말로 주변의 소외된 이웃과 공존하기 위해 제일 필요한 태도이자, 오히려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그 동안 어필에서 난민 분들과 마음을 나누었던 순간에는 늘 ‘음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10월에는 어필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체류하실 수 있게 된 난민 A씨께서 식사를 대접하셨습니다. 저희는 아랍어를 못하고, A씨께서는 한국어가 서투셔서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어려웠으나, 밥을 먹는 행위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A씨께서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고향 음식으로 식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A씨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배불러서 더 안 먹어도 된다고 재차 말씀드렸는데도, A씨께서는 디저트까지 푸짐하게 준비해주셨습니다. 

작년 12월에는 난민 인정을 받았으나, 영주권 취득을 거부 당하신 난민 B씨께서 사무실에 찾아오셨습니다. B씨의 소송 준비를 위해 상담이 진행되었고, 저는 통역자로서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소송과 관련한, 다소 진지하고 딱딱한 대화가 이어졌고, 상담이 끝나고 나서야 B씨께서 긴장이 풀리셨는지, 저희가 준비해둔 호두과자를 드셨습니다. 호두과자를 한 입 드신 후 표정이 한결 편해지셨고, 그때부터 B씨께서 현재 한국에서의 생활,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신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작은 호두과자였지만, 그 호두과자는 B씨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 고마운 간식이었습니다. 

올해 1월에는 난민 C씨의 난민 면접을 동석자로서 함께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이어지는 난민 면접은 그 길이만으로도 지치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C씨께서 면접 도중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힘들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쉬는 시간에 저는 C씨께 괜찮으신지 여쭈었는데, C씨는 아무 말 없이 애써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러곤 저를 근처 카페로 데려가 커피 한 잔을 사주셨습니다. 짧은 쉬는 시간 동안 C씨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나란히 앉아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마신 시간이 C씨께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난민’, ‘보호소 구금 외국인’, ‘강제노동 피해자’라는 존재들이 멀게 느껴지고, 특히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더욱 어려운 존재로 다가옵니다. 저 또한 어필에서 이분들을 실제로 뵙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직접 뵙게 되었을 때도, 어떤 말을 건네 드려야 할지,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조심스러워서 제대로 된 대화도 못 해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선 일화들처럼, 그런 순간들에 ‘함께 먹는 행위’와 같이, 그 어떤 것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어색한 공기가 풀리고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마음이 통하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제가 어필에서 얻었던 가장 소중한 배움이자 교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상의 따뜻함, 그리고 사소한 다정함들이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필에서의 근무가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힘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어필에서 얻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저는 열심히 주변 이들과 같이 먹고, 같이 단단해지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25기 인턴 박지향 작성)

최종수정일: 20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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