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 3월부터 어필과 함께하게 된 (반짝반짝)윤이나 운영팀장입니다. 어필에서는 ‘나나’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저는 윤근휴 행정팀장님과 함께 회계와 행정적인 업무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인수인계하시느라, 고생하신 윤근휴 행정팀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아직은 추웠던 3월, 코트를 입고서 내가 추워서 떠는건지, 긴장감 속에 떠는건지... 덜덜 떨며, 첫 출근을 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 떨림이 마치 어제와같이 선명한데, 벌써 어필에서 봄, 여름을 보내고 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네요.
어필에 와서 어깨너머로 보고, 듣는 사건들은 모두 제 마음을 늘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간접적으로 사건을 접하는 저도 이렇게 슬픈데, 난민분들을 직접 상담하고, 서면을 작성하고, 재판할 동료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그리고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지를 생각하면 어필에서 마냥 행복하게 웃고 떠들 수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건에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늘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데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이일 변호사님과 함께 퇴근하고 있었고, 이일 변호사님께 걸려 온 전화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통화를 듣고 온 날 밤.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3살 아동을... 구금했다니...’
전화는 몽골의 커뮤니티 단체에서 한 몽골 부자(父子)의 강제 구금·송환에 대한 도움 요청이었습니다. A씨는 2020년 6월 한국에서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을 홀로 키우며, 대학병원에 밀린 병원비를 분할로 갚기 위해 미등록 체류하여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산후우울증으로 가족을 떠났고, A씨는 아들의 음식을 사러 잠시 외출하였다가 무면허로 잡혀 수원출입국에 구금되었습니다. 3살 아들은 지인에게 맡겨있다가 다시 아버지가 구금이 되어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고, A씨는 아픈 아들을 돌봐줄 수 있는 위탁기관이나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였지만, 수원출입국은 이를 거절하고, 구금에 동의하라는 서류를 강요하였고, 끝내는 함께 구금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름을 넘게 구금되어 있다가 아픈 아들을 대학병원에 진료를 보게 해주겠다고 데리고 나와서는 핸드폰을 빼앗고,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돌려주면서 본국으로 강제송환을 시켜버렸습니다. (자세한 사건 내용은 어필의 승소요정 이종찬 변호사님께서 작성한 토론문을 참고해 주세요.) 저는 이 사건의 아주 작은 부분을 도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원법원에 증거보전신청으로 받은 CCTV를 보고, 구금된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CCTV를 보고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차가운 쇠창살 아래에 빳빳한 모포를 덮고 있는 3살 아이... 사무실에서 눈물이 덜컥 났습니다. 보름이 넘는 날짜의 CCTV가 있었지만, 모든 날짜를 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단, 하루! 아니, 1시간! 아니, 1분이라도 이 영상을 본 사람들은 모두 영화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힘들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영상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어른들 사이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이의 모습들이 담겨있었습니다. 그 영상들을 이일 변호사님께 드렸고, 많은 언론에서 취재요청이 쏟아졌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2조 제1호에서는 ‘당사국은 자국의 관할권안에서 아동 또는 그의 부모나 후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인종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무능력,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에 관계 없이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을 함이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각 아동에게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3조 제2호에서는 ‘당사국은 아동의 부모, 후견인, 기타 아동에 대하여 법적 책임이 있는 자의 권리와 의무를 고려하여, 아동복지에 필요한 보호와 배려를 아동에게 보장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적절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는 위 협약의 정신을 아동복지법에 그대로 구현하여, 아동이 자신 또는 부모의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 유무, 출생지역 또는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도록 필요한 시책을 강구할 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동복지법에서는 시도지사 또는 시장, 군수, 구청장에 대해서는 보호대상아동을 발견하거나 보호자의 의뢰를 받은 때에는 보호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제15조 제1항), 시도지사 등 보호조치 의무가 있는 자 외의 자가 보호대상아동을 발견하거나 보호자의 의뢰를 받은 때에는 지체 없이 시도지사 등 보호조치 의무가 있는 자에게 보호조치를 의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제15조 제2항).
이렇듯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아동복지법’ 등 효력이 있는 다자조약 및 실정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은 조약 및 실정법에서 국가기관 등의 책무 또는 의무를 다소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국가기관 등은 그 규정을 이행하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실천 없는 구호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아동복지를 구현하기 위해 힘쓰고 외친다고 하더라도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보호받지 못한다면 그 구호는 허무한 고요 속의 외침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 사건을 접하고서 아픔을 가지고 이 나라에 태어나 잠시나마 이 나라에 살았던 한 아동에 대해 우리나라가 보여준 모습에 경악했고, 아무리 구호들이 가득한 조약과 법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추상적 규정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한 명의 아동도, 그리고 이주민도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서도 불이익한 대우를 받지 않고 살아가길 소망해봅니다. 어떠한 인간도 소외됨 없이 한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제적 연대의 정신 속에서 잘 양육되기를 바라봅니다. 화려한 구호보다 작은 실천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정의의 최전선에서 마음과 정성을 쏟아내는 동료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제가 채울 수 있는 빈자리를 든든하게 지킬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필의 비틀거림에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도 함께 할 수 있어 저는 오늘도 영광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