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3년 7월] #44. 어필이란 놀이공원에 입장하며 - 김주광 변호사

2023년 7월 12일

저는 놀이공원을 좋아합니다. 롤러코스터, 바이킹, 회전목마, 여러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좋지만 사실 제가 더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그 놀이기구를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언젠가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기다리며 웃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우습게 바꾼 노래와 율동을 함께 했던 그 순간은 제 삶에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가 되었고, 그때부터 저는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필은 제게 놀이공원 같은 곳입니다. 로스쿨 1학년 첫 여름방학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어필은 늘 방문하는 게 기대되고 설레는 곳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낸 휴가에 어디를 갈까 하다가 어필을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매일매일이 그렇기는 어렵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기대되는 신기한 직장이기도 합니다.

이제 입사한 지 막 3개월 정도가 되어가는 어필에서도 놀이공원의 놀이기구처럼 기다려야 할 일들이,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난민인정이 아니라 면접을 보기까지도 1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일들은 흔해 보입니다. 한 난민 당사자분의 기초생활보장급여 신청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신청할 때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았던 신청인데, 난민인정을 받은 분이신데, 또 난민인정자에게 기초생활보장급여 제도가 보장되어 있는데, 박해 때문에 본국을 떠나 한국에서 삶을 꾸리게 되신 그 간단하지 않은 복잡한 사연 때문에 현 상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 행정복지센터를 나와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번역기를 통해 서로 대화를 하다보면, 입장 전 걱정했던 언어장벽이라는 대기줄은 이 놀이공원에 있는 대기줄 중 상대적으로 그렇게 긴 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앞에 기다리고 있는 그 놀이기구가 무서워서 줄이 빨리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내 차례가 된 놀이기구에 마음에 준비를 하지 못하고 올라 타기도 합니다. 미리 잘 준비해서 멋지게 말했어야 했는데 판사님 앞에서 절어버린, 더듬어버린 그 재판을 법정을 나와서도 털어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나도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들이 무서운데, 재판에서의 진술을 두려워 하시던 난민 분께서 제가 함께 해서 더 이상 무섭지 않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어떤 답변을 드려야 되나 주저하게 됩니다.

그래도 감사한 건 그 놀이기구들을 혼자 기다리는 것, 또 혼자 타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기다렸던 시간을 뒤로 하고 두려움에 도망가고 싶어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는지, “이 사건은 됩니다”라고 해주는 어필 멤버의 말이 들립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무섭지만 기다림 끝에 누릴 수 있을지 모를 그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은 망쳐버린 것만 같은 변론에 대한 하소연인 제 재판후기에, 어필멤버들이 댓글로 달아주는 애정어린 응원을 보며, 마음을 다 잡고 다음번에는 좀 더 멋지게 다시 타 보자 결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법정에 앉아 제 사건의 차례를 기다리는 건, 꼭대기를 향해 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긴장됩니다. 저보다 더 떨리고 긴장되실 당사자 분들께서 이 롤러코스터에 같이 타고 계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은 더 용기를 내 그 시간을 마주쳐 봅니다.

난민, 이주민 분들께서 본국에서 겪으신 박해들, 한국에서 마주치게 되는 막막한 현실과 기다림들을 생각하면 제가 어필을 과연 놀이공원으로 바라보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어필을 만나 난민, 이주민 분들의 기다림 속에도 함께 하는 그 행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후원자님들께서 소중한 마음을 모아 사주신 자유이용권을 받아 이제 막 입장한 어필이지만, 언젠가는 제게도 많은 놀이기구를 타고 난 후 놀이공원에서 퇴장해야 할 순간이 오겠지요. 기다리기가 쉬운 순간만 있지는 않겠지만, 많은 기다림이 있은 후 그 놀이기구들을 타는 그 때 조차도 어려운 순간들이 많겠지만, 놀이공원을 나오며 함께 기다리며 울고 웃었던 행복한 순간들을 흐믓하게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항상 어려운 저 자신도 그 놀이공원을 나왔을 때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김주광 작성)

최종수정일: 2023.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