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3년 7월] #43. 시선을 배우다. - 김영훈 인턴

2023년 7월 5일

안녕하세요?

이제 어필에서 함께한지 4개월 차를 맞아가는 24기 인턴 김영훈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공부하고 있습니다. 어필 입사 면접에서도 들었고, 또, 다른 NGO 활동가분들과 알게 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어떻게 경제학도가 이곳에 오게 되었나’ 라는 것입니다. 학부생의-그나마 성적도 그리 좋지 못한-얄팍한 지식수준으로 어쭙잖게 말해보자면, 경제학은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에 관심이 많은 학문입니다. 미시경제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파레토 효율의 법칙은 1:99 의 자원 배분 상태를 ‘최적’의 상태로 인정하며, 과연 그 배분 상태가 공정한지에 대해선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형평성’에 대한 질문의 부재, 또는 공백이 저를 이 곳 까지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효율성’ 이란 가치만 있진 않으며, 또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어필에 발을 딛게 되었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난민/이주민 이슈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그리하여 난민/이주민에 대해 공부하고 또 알아가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난민에 대한 처우는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처참했습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일 변호사님이 변호하는 러시아난민 당사자분의 재판에 방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제게 주어진 책무는 달리 없었고, 그저 ‘잘’ 방청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에 대해 무지한 제가 보아도 무엇가 분명히, 단단히 잘못 되어있음은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고인 난민당사자를 이송할 때 보호소 관계자들은 그를 하대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그의 면전에서 ‘F***ing Russia’ 라며 욕설을 했습니다. 물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겠다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 대해서도 쉽사리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변호인이 말 그대로 바로 옆에 있는데 담당 공무원이 당사자에게 욕설을 하고, 하대하고, 물도 못 먹게 하고, 또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이 현실이 과연 2023년의 대한민국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했습니다. 입사 후에 몇 차례 출입국 공무원들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를 어필 내부 교육 등을 통해서 접하였지만, 고백하건데 저는 그 참상을 말로만으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현장을 저의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뒤늦게 분노했던 저의 모습을 보고 부족한 공감능력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사회의 형평성의 추를 맞춰보고자 입사하였지만, 실상은 형평성은 고사하고 절대적 인권조차 처참히 짓밟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현실은 녹녹치 않고, 때로는 이렇게 거대한 세상 속에서 펼치는 우리의 작은 날개짓에 대한 회의를 시선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비록 난민 사건 승소건의 대부분을 현재 어필에서 만들어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숫자 자체만 보면 어쩌면 작은 날개짓으로 보일 것입니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요. 하지만 비록 그 속도는 느릴 지 몰라도, 12년이 넘게 이어진 어필의 작은 날개짓으로 인해 분명 세상은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날개짓’에 보다 많은 시민분들이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이 것은 그리 허황된 꿈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작년 강원도에 있었던 ‘강릉 산불’ 재난사태, 그리고 현재까지 발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시민들이 선뜻 도움의 손을 내밀었던 것은 그들의 아픔에 ‘공감’ 하였기 떄문입니다. 그들이 겪는 고난이 그들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며, 같은 ‘시민’ 으로서, 또는 같은 ‘인류’로서 손길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난민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본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 그것도 그리 환영받지는 못하는 나라에 오는 것은 난민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본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와서 이산가족 신세를 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한번만 들어본다면, 저는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소송과 신청을 분명 방법 중 하나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소송과 신청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핍박 받고 있지 않으며, 안정적인 거주공간이 있어서 내일 쫓겨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고도 잠에 편히 들 수 있는 저는, 이 사실만으로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여기 까지만 해도 참 감사한데, 저는 첫 직장생활을 어필에서 할 수 있다는 행운까지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 4개월 간 너무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리서치 스킬,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많이 배웠지만, 사실 가장 많이 배웠고, 또 배웠던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타인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시선’ 입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고 내 일처럼 생각할 수 있는 그 ‘시선’. 어필이 아니었다면 배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필의 성원을 보면서,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열심히 헌신하게 만들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아직 100% 결론을 내진 못하겠지만, 그리고 각기 서로 다른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어쩌면 믿을 수 있고, 또 진심을 아는 동료가 곁에 있기에, 그리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서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또 이를 굳게 믿고 있기 떄문에, 지금의 어필의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남은 2개월간, 더욱 많이 배우며 어필의 날개짓에 함께하겠습니다.

최종수정일: 202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