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3년 6월] #42. 점과 점을 잇는 과정들 - 홍성연 인턴

2023년 6월 21일

저는 어필에서 찾기 어려운 ‘T’입니다. MBTI 설명 글에 따르면,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분석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며,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모든 ‘T’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과정보다는 목적지에, 틈틈이 여유를 즐기는 것 보다 일과 시간의 효율만 생각하며 달려왔습니다.

인턴 시작하고 대망의 첫 번째 전화 응대 당번을 맡은 날, 옆에서 도와준 인턴 영과 함께 사이다방에서 4시간 넘게 머리를 맞대며 전화 내용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첫 출근날 받은 전화 응대 차트를 외우고 왔지만, 첫마디부터 차트와 다른 내용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당황했었습니다. 이번에는 누가, 무슨 사연으로, 어떤 감정 상태로 전화하실까 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더 두렵고 당황스러웠을까요?  응대 차트를 정확히 파악해서 적절히 대응 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 사이사이의 짧은 몇 마디를 통해 상대방이 저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생각하며 융통성 있게 대응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천천히 배우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 달 전에 저는 아직도 보호소에 계신, 저와 동갑인 난민 A분과 처음으로 통화를 했습니다. 특별히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야 했기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 아닌, 그냥 단순히 대화 자체를 하기 위해서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3분 안에 끝날 수 있었던 전화 통화였지만, 가장 전형적인 “how are you?”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20분을 훌쩍 넘겼습니다. 별내용은 없었고, 평범한 두 20대 여자의 소소한 대화였습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힘든 생활에도 불구하고, ‘A’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전화 통화입니다. 

2주 전에는 난민의 어린 자녀분이 피해자로 참석한 학교폭력위원회에 통역으로 참석했습니다. 제가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통역 관련 부분에서는 최대한 대비를 하였지만, 긴장하는 아이를 보니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바비 인형을 좋아하고 한국말이 서툰 어린아이가 초면인 여러 명의 어른에게 둘러싸여 외국말로 질문을 받고 있는 상황이란 것을 최대한 인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난민, 학교폭력의 형식적인 부분을 떠나서, 그 상황에서 당연할 수밖에 없는 불안과 걱정에 공감해 주고, 이 아이의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도록 도와주는 마음으로 통역에 임해봤습니다. 

제가 어필에서 인턴을 시작한 지 4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 저는 참으로 다양한 난민분을 만났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공감도 했지만, 화 나고 짜증나는 상황에서는 서로가 답답해서 지치기도 했습니다. “난민 인정”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전 후의 과정은 예측하기조차 어려워서 더욱 힘든 길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무시하고 목표에만 집중한다든지, 감정을 무시하고 효율에만 집중하다가는 둘 다 잃을 수 있겠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러 사안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작과 끝을 위해 포컬포인트 (focal point)는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이었습니다, 마치 음표 사이의 간격들이 멜로디를 만들어 내둣이, 진심과 공감으로 만들어진 과정들이 합쳐져서 진정한 포컬 포인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아가, 난민분들의 서류 상의 ‘난민지위’와 ‘비자 상태’도 꼭 이루어야 할 목표이지만 그걸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색깔과 정체성 (identity)을 유지도록 도와주어야만 최종에 이루어 낸 난민 지위와 비자 상태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색깔을 유지하고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한번 꿈꿔보며 여기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남은 2개월 동안에도 열심히, 진중히 좋은 과정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24기 인턴 홍성연 작성) 


최종수정일: 2023.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