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3년 6월] #41. '우리의 얼굴들', 6.17 난민영화제에서. - 문찬영 연구원

2023년 6월 7일

종소리가 울리면 문을 열고 마주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처음보는 것은 얼굴이겠죠.

오늘은 어떤 분이 어필을 찾아와주셨을까. 일정이 있으신걸까. 어떤 언어를 하시려나.

먼걸음해주신 손님의 얼굴을 보며 눈을 마주칩니다. 어색한 인사를 한 후 몇마디를 나누고 나면, 어느 정도 용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여 찾아오신 난민분일 경우, 좀 더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지요.

이름이 뭐에요?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본국에 어떤 일이 있었나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난민분과 친밀함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역시, 사람은 얘기를 해봐야 알 수 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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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부터 이럴 수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필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을까요. 모든 것이 서툰채 허둥지둥하던 저는, 누군가 어필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분의 얼굴을 잠깐 보고 난민분이라 생각한채 상담하려 했지만, 곧 그분이 회의하러 오신 손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저 전형적인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저의 편견적 오판으로 인하여 발생한 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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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저는 새삼 깨달았습니다. ‘난민의 얼굴’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누군가의 얼굴만을 보고 그가 난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난민이라면 가져야할 얼굴이 있는 것도 아니죠. 어느 순간 난민이 아니었던 제가 난민이 된다고 해서 제 얼굴이 바뀌지 않듯, 난민과 난민이 아닌 사람의 얼굴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각기 다른 생김새를 지니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얼굴은 우리가 모두 같은 인간임을 상기시켜주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난민/비(非)난민'이라는 경계를 넘어 진심으로 누군가의 눈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나’는 ‘너’를 알고, ‘우리’가 되가는 여정을 걸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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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얼굴들(Faces of Us)’

제8회 난민영화제의 주제는 위와 같은 취지에서 선정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난민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들’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난민영화제의 취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주제라 생각됩니다. 그저 낮설기만 한 타국의 타인으로 여겨지는 존재들–하지만 분명히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우리와 함께 어우러지며 새로운 ‘우리'를 창조하는 귀한 동료들. 얼굴을 맞대고 보면 너무나 닮은 점이 많은 우리들일텐데 그저 그럴 기회가, 장소가 부족한 현실에서 소통의 다리를 놓아드리고자 시작한 난민영화제는 올해 8년차를 맞이합니다. 관객분들이 ‘영화'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하여 난민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연대의 손을 내밀어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올해 난민영화제는 3편의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아 난민 ‘하림'(<아포리아>), 공항난민 ‘나보스키'(<터미널>), 그리고 우크라이나 난민 3명(<도도무>)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는 그들의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후 GV를 통하여 다양한 난민 당사자, 변호사, 그리고 활동가와 직접 소통할 기회도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특별히 어필을 비롯한 난민인권네트워크 단체들의 부스 프로그램을 통하여 교육, 문화교류, 전시, 그리고 체험 등을 경험해보실 수 있어요. (자세한 프로그램 및 예매 방법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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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토요일, 메가박스 성수

기나긴 판데믹으로, 그리고 바쁜 일상으로 인해 마주보지 못했던 우리의 얼굴들.

어필, 그리고 이 사회의 취약한 이주민을 응원해주시는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감사한 날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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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를 빌러 성공적인 행사를 위하여 밤낮 없이 일해주신 워킹그룹 스태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힘겨운 여정임에도 함께 길을 밝혀주셔서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낌니다. 감사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문찬영 연구원 작성)

최종수정일: 202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