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0년 2월] #1. 혼자 하실 수 있어요! 저희가 옆에 있을게요 – 박서연 인턴

2020년 3월 5일

어필에서 일하게 되면, 난민분들이 직접 사무실을 방문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전화나 문자로도 많은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변호사님들이 난민 신청 절차 등의 법률적인 부분을 조력한다면 저는 리서치와 더불어 난민 분들이 보내주시는 증거를 모으고 번역하거나 내방 날짜를 잡는 등 여러 행정적인 부분을 조력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NGO들의 경제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시거나 정부 기관에서 문서를 발급 받으시는 상황에서 “이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신 해주세요.” 하는 부탁을 종종 받게 됩니다. 이런 일들 중에는 실제로 제가 대신 해드릴 수 있는 일들도 있지만 가능한 한 난민 분들께서 최대한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일례로, A씨의 경우 출입국 방문 시간을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하셔야 했습니다. 며칠 전 지역 출입국외국인청에 찾아가셨고 미리 예약을 해야 방문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으셨다고 했습니다. A씨는 출입국 직원이 써 준 링크를 저에게 찍어서 보내주시면서 자신은 이런 걸 할 줄 모르고 한국어도 모르니 예약을 대신 좀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대신 해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문득 인터넷이 익숙한 제가 예약을 대신 해드렸으면 훨씬 빠르겠지만, 출입국 온라인 예약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용하실 일이 많을 것 같았고 스스로 하실 수 있는 일을 그 때마다 제가, 또는 다른 인턴들이 대신 해드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필 식구들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 급하게 예약을 하셔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 이번 한 번만큼은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최대한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페이지를 훑어보니 A씨의 모국어인 영어로도 예약을 할 수 있고 크게 어려워보이는 부분이 없기에 일단 혼자 해보시고 헷갈리시는 부분이 있으면 저한테 전화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A씨께서 저한테 또 대신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지만 대신에 제가 전화기를 옆에 놔둘테니 하시다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전화를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항목을 하나하나 같이 채워가면서 순간 ‘내가 해드릴 걸 그랬나’ 싶었지만 처음 몇 개를 함께 채우고 나니 그 다음은 스스로 채워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I can do the rest by myself! Thank you very much.”라고 말씀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또 난민분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절차의 빠른 진행을 위해 어필 측에서 출입국에 전화 한 통만 해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희도 마음같아서는 전화 한 통으로 절차를 몇 주 씩 앞당기고 싶지만 저희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없어서 그렇게 말씀드리면 알았다고 하시고는 며칠 후에 또 전화를 주셔서 “아직 해결이 안 되었다. 출입국에 말 좀 잘 해줄 수 없냐”고 부탁하시곤 합니다. 처음에는 이와 같이 매번 반복되는 부탁이 솔직히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난민분들이 오신 나라들에 대해 COI 리서치 (Country of Origin, 출신국)를 하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필의 찾아오시는 분들 중 대다수는 본국의 사법 체계가 엉망입니다. 우리 나라의 여러 행정 절차 역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이분들이 오신 나라들의 경우 경찰이 대놓고 범죄를 눈감아 주고 눈 앞에서 뇌물이 오고 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금전 수수 없이는 사건이 접수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본국에서 성폭행을 신고했지만 가해자가 경찰에 연줄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조차 접수가 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위의 A씨 역시 부모님이 A씨의 눈 앞에서 살해당하였지만 부모를 살인한 무리가 전, 현직 군인이었기에 A씨는 신고는 커녕 부모님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채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여권도 공무원인 친구의 지인에게 돈을 찔러주고 발급받은 후 간신히 본국을 탈출해 한국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이 어필 같이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정부에 말 한 마디만 해주면 일이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업데이트가 있으면 당연히 저희 측에서 먼저 연락을 드릴 거라고 말씀을 드려도 본인 케이스의 진행 상황이 궁금해 매일 같이 전화를 주시는 분들도 때때로는 난감하지만, 공무원과 경찰을 계속해서 찾아가 재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 국가에서 오신 것을 감안한다면 조금은 더 공감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출국 명령이 떨어졌는데, 본국으로 돌아가면 당장 박해를 당할 상황이라면 과연 나라고 차분히 전화를 기다릴 수만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타국에 오셔서 무력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종종 보았습니다. 본국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 – 이를 테면, 우리 나라처럼 전자 정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는 선진국들 중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 언어, 문화적 장벽 등으로 인해 본국에서는 혼자 척척 해내셨을 일도 시작해보시기도 전에 주눅이 드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길어지는 소송과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 역시 이러한 무력감에 일조합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하시면 기쁜 마음으로 도와드릴 수 있지만 자신감을 북돋아 드리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혼자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B씨께서 자녀의 체류연장 때문에 전화를 주셨습니다. 법원에 가서 소계속증명서를 떼서 출입국에 제출하시면 된다고 설명해드리니 자신은 한 번도 법원에 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걱정이 앞서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법원 주소와 가셔야 하는 층, 그리고 발급 받으셔야 하는 문서 이름을 영문과 한글로 적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드리고 너무 걱정하시지 않을 수 있도록 다른 난민신청자 분들도 혼자서 문제 없이 문서를 발급 받으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다음주 초, 수화기 너머 들리는 B씨의 목소리는 한층 밝았습니다. 법원에 가서 문자를 보여주셨더니 바로 필요한 문서를 발급받으실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There was no problem!” 이주민 지원센터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셨냐고 여쭤보니 출입국에 제출하는 것까지 모두 혼자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B씨가 정부 기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필요하신 문서, 서비스를 기관에 가서 당당히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셨으면 합니다. 또한, 여러 기관의 직원분들도 난민분들과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더라도 난민분들께서 직접 하실 수 있는 일들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이해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필 박서연 인턴 작성)

최종수정일: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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