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며 짓다, 정의를 │ 20년 3월] 오래된 미래 : 빼앗긴 숲을 위해 싸우다 – 정신영 변호사

2020년 4월 2일

지난 겨울 저는 인도네시아의 파푸아 섬에 있는 셀릴 마을이라는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마을은 꽤 멀었는데요, 서울에서 자카르타까지 7시간을 간 뒤에 자카르타에서도 두 번이나 환승을 하고 9시간이 걸려 도착한 도시에서 차를 타고 4시간을 간 뒤,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 야간행군 1시간, (악어가 우글거린다는 강을) 작은 배를 타고 또 1시간을 가서야 마을에 도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셀릴 마을 사람들은 본래 숲과 강에서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며 자연이 주는 만큼을 누리며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국 기업이 마을 사람들의 숲을 팜유 생산을 위한 플랜테이션으로 바꾸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마을에서는 만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증언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불도저가 마을 뒤의 숲을 밀어버린 후에야 플랜테이션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회사가 숲에서 묘목만 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울창한 숲이 팜 플랜테이션으로 바뀌리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후에도 공청회가 열린 적이 있지만, 그곳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통지하고 회의 참석자의 명단을 받아 간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민들과 회사의 갈등이 심각해졌을 때에는 이 자리에 군인들이 참석하여 총을 쏘며 위협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공청회를 열고 있기 때문에 개발의 모든 과정을 마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숲이 플랜테이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도 문제이고, 이후 부족 간의 갈등, 대규모 산림파괴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깨끗한 물을 구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강이 깨끗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강물을 생활용수로 쓰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플랜테이션이 들어온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강의 색과 냄새가 바뀌었고 물고기들이 많이 죽는 것을 보고 강물이 더러워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집 앞에 있는 커다란 드럼통에 빗물을 모아 쓰거나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길어 쓰고 있는데 건기에는 이마저도 부족하여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여러모로 저희를 환대해주셨습니다. 망기스라고 불리는 망고스틴 나무를 탈탈 털어 먹도록 내어주시고, 전통 식량인 사고를 구워주시기도 하였는데, 무엇보다 저희가 신세를 진 댁의 안주인인 마마 에디타가 저희가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통을 채워 놓아 주셨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마마 에디타는 숲이 사라지기 전의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숲에 2~3주씩 지내면서 사냥을 하며 풍성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냥할 동물들도 물고기들도 없어져서 예전과 같이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마마 에디타는 숲을 파괴하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을 상처 내는 것과 같은 죄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마마 에디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그동안 글로 배우고 머리로만 이해해왔던 생태적 삶이 이런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마 에디타와 같이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토착민들 (indigenous people)의 땅과 숲을 자본은 내버려 두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은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풍부한 자원을 지닌 토착민들의 숲과 땅을 집요하게 찾아내어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삶의 터전과 역사, 문화를 파괴해오고 있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이런 일들이 많이 발생해왔는데 이에 대해 끈질기게 싸운 결과 유엔에서는 2007년 토착민의 권리 선언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Indigenous Peoples)을 채택하여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점을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자본과 같은 힘은 없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과 역사를 지키려는 토착민들의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리누스는 이러한 운동을 셀릴 마을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입니다.

리누스는 마마 에디타의 동생으로 마마 에디타와 남편이 숲에서 수렵 채집한 것들을 바탕으로 번 돈으로 대학 교육까지 받은 마을의 인재였다고 합니다. 리누스의 부족은 한국 기업이 플랜테이션으로 만들어버린 숲의 주인이었지만 이를 다른 부족에서 팔아버렸기 때문에 회사에 숲을 빼앗긴 일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를 해왔습니다. 숲을 지키기 위해 시위를 주도하기도 하고 회의가 열리는 사무실을 봉쇄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군대에 의해 총격 위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리누스는 물러서지 않고 지역 단체와 협력하여 ‘어머니 숲’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밤에도 어둡지 않은 도시에 돌아와 꼭지만 비틀면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이 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도시인들에게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고 음식은 슈퍼에서 사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수도의 상수원이 있는 것이고 음식도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우기 때문에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셀릴 마을 사람들에게는 물은 강에서 주는 것이고 음식은 숲에서 주는 것이라는 것이 명백한데 그래서인지 근원에 대한 감각(sense of origin)이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셀릴 마을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편, 언제 어디서든 돈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이미 시간과 장소에서 뿌리 뽑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숲에 뿌리를 내리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를 그리는 일과 맞닿아 있기에, 이들의 싸움에 힘을 보태고 애쓰기를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공익법센터 어필 정신영 대표 작성) 

최종수정일: 2022.06.19

관련 활동분야

한국기업 인권침해 피해자 관련 글 더 보기